잠들기 전 아이와 책을 읽는 것이 우리 집 하루의 마지막이다. 대개는 침대 머리맡에 따뜻한 조명이 켜지고, 엄마는 나긋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잘 밤이니 작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읽어줘야지 생각하면서도 나는 어느새 한 권 한 권 열과 성을 다해 읽고 있다. 큰소리가 나는 장면이면 내 목소리도 커지고 울고 웃는 장면이면 최대한 감정을 담아 하하하, 엉엉엉 할 수 있는 것을 다한다. 그러면 아이는 까르르 웃기도 하고 "어떡해~"하며 걱정하기도 한다.
그 반응이 좋아 더 최선을 다해 읽어주는 걸지도.
책을 읽는 시간은 아이와 내가 하루 중 유일하게 서로에게 집중하는 순간이다.
낮의 일을 묻기도 하고, 책 속 장면에 빗대어 “○○이는 어떨 거 같아?” 하고 대화를 이어간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 아이의 생각은 매번 새롭다.
어제는 공주가 되고 싶은 아이 이야기를 담은 창작동화를 읽었다. 아름다운 성에 들어가 공주가 된 주인공이 화려한 옷을 입고 모든 걸 마음대로 하다가, 밤이 되어 혼자 남으니 외롭고 무서워져 울음을 터뜨린다. 따뜻한 부름에 눈을 뜨니 놀다가 깜박 잠들어 꾸었던 꿈이었다.
“○○이도 왕자님이 되어 큰 성에 살고 싶지 않아?” 물으니 아이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 집은 여기잖아~”
"○○이는 집이 좋아?"
"응. 집이 좋아."
아이의 집이 좋다는 말에 나는 안도했다. 내심 혹여나 아이가 더 크고 좋은 집을 바랄까 걱정했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아이는 외할머니를 졸라 장난감 총을 하나 사 왔다. 실제로 경찰이 쓸 것 같지는 않은, 흰색과 파란색 반반에 경찰마크가 붙은 경찰총이었다. 잠자리, 경찰 이야기를 읽다 문득 물었다.
“○○아, 낮에 총은 왜 샀어?”
“필요하니까.”
“왜 필요해?”
“벽에 빛을 쏘려고.”
뜻밖의 대답에 내가 되물었다.
“빛을 쏜다고?”
“밤에 깜깜하면 위험하잖아. 벽에 빛을 쏴서 밝게 하면 안 무서울 거야.”
유쾌한 웃음이 났다.
아이에게 총은 위험한 도구가 아니라 어둠을 밝히는 도구였다. 묻지 않았다면, 나는 또 어른의 잣대로 섣불리 단정했을 것이다.
아이와 나누는 대화 속엔 늘 이렇게 뜻밖의 답이 숨어 있다.
나의 어쭙잖은 걱정과 어리석은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무너뜨려주는 강력한 마법의 언어들.
그 우문현답들이, 어쩌면 내가 잊고 지낸 순수함의 잔상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다짐해 본다.
아이와 함께 읽고, 묻고, 답하는 시간은 되도록 많은 날을 이어가자.
적어도 나로 인해 멈춰지지는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