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는 내 친구가 아니었다

퇴사 3부작 #1

by 온빛

나는 지금까지 두 번 퇴사했다. '이직'이라고 쓰면 커리어 관리 잘하는 사람 같지만, 사실은 '도망'이었다. 그것도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린 그런 도망.


더 재밌는 건, 두 번째로 도망친 그 회사에 지금 다시 다니고 있다는 거다.


사람들은 묻는다. "미쳤어? 도망치듯 나온 회사를 왜 다시 가?" 나도 가끔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대답은 간단하다. 이번에는 다르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두 번 도망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문제는 회사가 아니라 내가 회사를 대하는 방식이었다는 걸.




#필터 없이 털어놓던 시절


첫 회사는 나쁘지 않았다. 따뜻한 사람도 있었고, 친절한 얼굴로 칼같이 이기적인 결정을 하는 상사도 있었다. 뭐, 어디나 그렇듯이.


나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잘해주는 상사에게 마음을 열었다. 필터? 그런 거 몰랐다. 회사 얘기, 사람 얘기, 억울한 얘기는 물론이고 "오늘 점심 뭐 먹지" 수준의 생각까지 전부 털어놨다.


그 상사는 늘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줬다. 공감했고, 위로했고, 가끔은 같이 분노도 해줬다. 나는 완전히 착각했다. '와,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해. 회사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마치 '심리적 안정감'이 있었달까. 나는 그 사람 앞에서 편했고, 솔직했고,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줬다.




#회식 자리에서 들은 한 마디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됐다. 그 상사가 나를 '건방지다'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고? 팀 회식 자리에서였다. 술이 조금 들어간 다른 선배가 농담처럼 던진 말. "야, 너 팀장님이 너 건방지대." 웃으면서 한 말이었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잘 듣는 얼굴 뒤에 있던 속마음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그 사람에게 내 솔직함은 '신뢰의 표현'이 아니라 '주제파악 못 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나는 관계를 쌓는다고 생각했는데, 상사는 그냥 신입이 떠드는 걸 참아주고 있었던 거다.


그때 처음 배웠다. 솔직함은 미덕이 아니라, 때로는 무기가 된다. 특히 회사에서는.




#그날 이후 만든 규칙


감정 컨트롤 실패. 퇴사 결정.


회식 자리에서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정상적으로 일할 수가 없었다. 상사를 볼 때마다 '이 사람은 나를 건방지다고 생각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웃으면서 공감해 주던 모든 순간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결국 3개월을 더 버티다가 퇴사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강력한 내부 규칙 하나를 만들었다.


상사에게는 절대, 절대, 절대 속마음을 말하지 말 것.


공감해 주는 것처럼 보여도, 윗사람의 편견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한 번 꽂힌 이미지로 나를 오래, 아주 오래 기억한다. 마치 초등학교 때 코딱지 파다 걸린 것처럼.




#회사에서의 관계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때의 나는 일을 못해서 무너진 게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법을 모르고 일해서 무너졌다는 사실을.


첫 번째 퇴사에서 깨달은 것: 사람을 믿는 방식이 너무 단순했다. 따뜻함을 보이면 같은 온도로 되돌아올 거라 생각했고, 공감을 받으면 이해받는다고 착각했다.


회사에서의 관계는 감정의 교류가 아니라 역할의 교차라는 걸, 그땐 몰랐다. 상사는 친구가 아니다. 아무리 커피를 같이 마셔도.


그 상사가 나쁜 사람이었을까? 아니다. 그 사람도 그냥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신입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당히 공감해 주고, 그러면서도 '이 친구 좀 건방지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다. 그게 회사다.


내가 착각한 건, 그 사람이 나를 '이해'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나를 이해한 게 아니라 그냥 들어준 것뿐이었다. 이해와 경청은 다르다. 나는 그 차이를 몰랐다.




#그래서 배운 것


첫 번째 퇴사에서 배운 교훈:

- 상사에게 속마음을 말하지 마라

- 공감은 이해가 아니다

- 회사는 감정을 나누는 곳이 아니다

- 관계에도 거리가 필요하다


이 규칙을 가지고 나는 두 번째 회사로 갔다. 이번에는 절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런데 두 번째 회사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무너졌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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