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벼락같았던 너의 순간

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by 온벼리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을 산 중앙에는 서낭당과 커다란 당나무가 있다. 당나무 옆을 지나 바다로 내려가면 수영하기 좋은 해변이 나온다. 서낭당이 있는 당산 너머에 있다고 해서 그 해변을 당 너머라 불렀다.

당 너머로 내려가는 길은 험하고 가파르다. 나뭇가지들을 붙잡고 조심스레 내려가도 수북하게 쌓인 솔잎은 미끄럽기만 했다. 쉽지 않은 내리막길이지만 하얗고 고운 백사장에 잔잔한 파도까지 갖춘 고이도의 해수욕장이다.


은주는 섬사람이지만 수영할 줄 모른다. 물이 무서워 얕은 당 너머에서만 물놀이했다.


6학년 여름방학 중이었다. 은주는 친구들과 당 너머에서 물놀이하고 있었다. 집순이였던 은주도 제법 컸다고 밖으로 자주 놀러 다녔다. 물놀이라고 해봐야 무릎 깊이에서 어기적거리며 기어 다니거나 허리 깊이에서 튜브를 타고 둥둥 떠다니는 게 전부였다. 은주는 튜브가 있어도 절대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찜통 같은 더위는 선풍기 바람마저도 뜨겁게 만들었다. 햇빛은 바다에 반사되어 더욱 강렬하게 살갗을 태웠다. 섬의 여름은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 달아올라 있었다. 물놀이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날이었다.

뜨듯하게 데워진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일어나면 살랑 부는 바람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은주는 튜브에 누워 잔잔히 떠다니며 여름방학의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마을에서 방송하는 소리가 당너머까지 메아리치며 울렸다.

"아! 아~ 어~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다~"

"뒷장벌 바닷가서 물놀이 허던 수연이 학생은~은~ 지금 즉시 집으루 돌아오기 바랍니다~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다~"

"고! 수! 연! 학생은 부모님이 찾구 있응깨~깨~ 지금 즉시 집으루 돌아오기 바랍니다~다~"


뒷장벌은 여객선과 고깃배들이 드나드는 선착장이 있는 곳이고 은주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다. 어촌계장 춘식의 목소리가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자, 동네 사람들도 수연이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근데 왜! 수연이를 방송으로 찾지? 어디 간 거야?"

이상한 일이었다. 은주는 고이도에서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을 들어본 적이 없다. 고이도에서 아이를 잃어버리거나 아이가 길을 잃는 일도 없었다. 조금만 찾아다니면 어디 있는지 뻔히 알 수 있는 작은 마을에서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은 낯설기만 했다. 그것도 6학년이나 되는 다 큰 아이를 말이다.


이후로도 춘식은 세 번을 더 방송했다. 아직도 수연이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모양이다. 은주는 더 이상 물놀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흠뻑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쥐어짜며 질벅거리는 슬리퍼를 끌고 당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고이도에서 물놀이할 때는 수영복이나 갈아입을 옷 따위는 필요 없었다. 물에서 놀다가 그대로 집으로 가 씻으면 그만이었다. 젖은 옷을 입고 다녀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은주를 순자는 유난스럽게 반겼다.

"은주 왔니? 워디서 놀다 온겨?"

"당 너머에서 수영한다고 했잖아!"

"워디 딴디는 안 가구 당너머서만 놀다 온겨?"

"응! 왜?"

"너 수연이는 뭇 봤니?"

"수연이는 왜? 수연이 당너머에는 안 왔는데. 아까 방송으로 수연이 찾던데? 오늘 하루 종일 수연이 한 번도 못 봤어. 근데 수연이를 왜 찾어?"

"수연이가... 수영 허다 없어졌댜!"

"그게 무슨 말이야? 수영하다 어딜 가?"

"저기... 뒷장벌 선착장이서 애들이랑 수영 혔다는디... 잠수헌다구 물속이 들어가 가꾸는 안 나왔댜. 어디 갔는지 모르니깨 방송혔겄지!"


은주는 왠지 불길하고 불편했다. 멍하니 앉아 있자니 물놀이로 피곤했던 은주의 눈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방 한가운데 앉아 꾸벅꾸벅 졸다 그대로 누워 잠들어 버렸다.




"은주야! 일어나 봐! 이? 왜 그려!! 이? 일어나 보랑깨! 뭔 꿈을 꾸는디 잠꼬대를 그렇게 심허게 혀!!"

순자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은주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응? 왜!! 뭐!! 내가 뭐!!"

"자믄서 뭔 잠꼬대를 그리 요란하게 혀? 얼릉 일어나 봐!"

"몰라! 나 꿈 안 꿨는데!! 내가 잠꼬대했어?"

잠이 덜 깬 은주는 눈도 다 못 뜬 채 흘러내린 침을 쓱 닦았다.

"왜 케 팔을 허우적 대구 자믄서 막 소리 쳤쌌구 그려?"

은주는 무슨 꿈을 꿨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하지만 유난스러울 정도로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은주는 평소에도 잠꼬대를 가끔 한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떠들거나 팔을 휘휘 저으며 율동을 한다고 은경은 자주 놀렸다.


잠이 깬 은주는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순자에게 물었다.

"엄마! 근데... 수연이는 찾았어?"

자는 내내 수연이 생각으로 불편했던 은주는 순자를 보자 수연이 행방부터 물었다.

은주의 질문에 순자는 순간 멈칫했다. 은주는 눈을 크게 뜨고 순자의 표정을 살폈다. 순자의 표정은 불편해 보였고 뭔지 모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순자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한참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죽었댜!"

"어? 뭐??"

"아까 물속이 있는 거 건져 냈는디 죽었댜!"

"왜? 어? 물에 빠져 죽었다고?? 수연이 수영 잘하는데??"

"몰러... 잠수헌다구 물속이 들어갔다는디 안 나왔응깨 빠져 죽었겄지! 빈혈 때미 정신을 잃었을 수 두 있다구 허드만... 에휴~ 어린것이 워쩐다니..."


수연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가 크고 덩치도 좋았다. 겁이 없어 깊을 곳에서 수영도 잘하고 남자아이들과 잠수 내기를 할 정도로 수영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뒷장벌 선착장에 밀물이 들어차면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는 꽤 깊었다. 낚시하거나, 수영을 아주 잘하는 겁 없는 남자아이들이나 다이빙을 하면서 노는 곳이었다. 은주가 당 너머에서 튜브를 타고 기어 다니는 동안 수연이는 뒷장벌에서 잠수하며 놀았던 것이다.



한 아이는 심판을 보고 수연이와 아이들은 잠수해서 바닥에 손을 찍고 나오기 경쟁하고 있었다. 심판의 구령에 맞춰 아이들은 동시에 잠수를 시작했다. 같이 잠수한 아이들은 모두 물 밖으로 나왔는데 수연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물속으로 들어가 찾아보았지만, 물속 어디에서도 수연이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던 아이들은 새파랗게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한 아이가 근처 배에서 일하고 있던 수연이의 삼촌 정수를 발견하고 다급하게 불렀다.

"삼촌! 삼촌!"

"왜 그려!"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상이 되어 정수에게 소리쳤다.

"수연이가 물속이 들어갔는디 안 나와요!"

"뭐라는 겨? 뭔 소리여! 울지 말구! 제대루 말혀 봐!!"

"수연이가 잠수헌다구 물속이 들어갔는디! 안 나온다구요!!"

"이? 뭐여? 안 나와? 물이서 안 나온다구? 에이씨 미치구 환장 허네!! 워디! 워디서 그렸어! 어디!!"

아이들은 일제히 수연이가 잠수한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요! 여기!"

"애들 다 나왔는디 수연이만 안 나왔어요."

정수는 아이들이 가르쳐준 곳으로 뛰어들어 물속 깊이까지 들어가 찾기 시작했다. 그사이 아이들은 다른 어른들에게도 알렸고 순식간에 선착장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뭐여? 왜 그려? 왜 다들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동동거리구 그려 싸?"

"수연이가 읎어졌댜!"

"뭔 소리여?"

"물속이 들어갔다는디 읎어졌댜!"

"워디 놀다가 집으루 갔나 비지~"

"아녀! 잠수헌다구 물속이 들어갔는디 안 나왔댜~"

"그려? 어이구 워쩐댜? 혹시 모릉깨 어촌계장헌티 애 찾는다구 방송이라두 혀 보라구 혀! 얼릉!"

정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닷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몇 명이 더 물속에 뛰어들어 수연이를 찾기 시작했다.

잠수하던 정수가 바닷속에 있는 수연이를 발견했다. 반가움도 잠시였다. 수연이는 두 눈을 뜬 채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있었고 긴 머리는 물결을 따라 사방으로 나풀거리고 있었다. 순간 정수는 소스라치게 놀라 가까이 가지 못하고 물 밖으로 허겁지겁 나와 버렸다. 조카였지만 물속에서 펄럭이는 수연이의 머리칼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고 자기 발목이라도 덥석 잡을 것만 같은 공포에 정수는 잠시 이성을 잃고 말았다.



정수는 물 밖으로 나와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자신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이런! 써글!! 정신 차려!!"

놀란 마음이 진정된 정수는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건져 내겠다 마음먹고 다시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수연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물속의 조류는 수연이를 한자리에 두지 않았다. 한참 잠수하던 정수는 이러다가 수연이가 먼바다로 떠내려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 밖으로 나와 배를 몰고 그물을 내려 주변 바다를 훑기 시작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수연이의 엄마는 선착장에 주저앉아 숨이 넘어가도록 통곡했다. 사람들도 안타깝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 선착장 밖까지 배를 몰던 정수의 그물에 수연이가 걸려 올라왔다.

선착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인하 목사는 수연이를 선착장 바닥에 눕히고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인하는 제발 살려 달라며 고통스럽게 중얼거렸다.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술을 20분이 넘도록 계속했지만, 수연이의 숨은 돌아오지 않았고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피가 나왔으니, 가망이 없다며 이제 그만하라고 인하를 말렸다. 인하는 수연이 옆에 주저앉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목 놓아 울었다.


은주는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야 수연이를 건지려 했던 정수의 이야기와 살려보겠다고 인공호흡을 했던 이인하 목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세상모르고 자는 동안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말을 들은 은주는 자신이 큰 잘못이라도 한 듯 죄책감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졸였을 긴박한 순간에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미안했고, 옆에 없었던 것도 미안했다. 같이 슬퍼하지도 못했고, 도와주지도 못한 것이 미안했다. 은주는 모든 것이 미안했다.


아무것도 몰랐고, 알았다 하더라고 은주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슬프고 미안했는지도 모른다.


수연이는 열세 살에 벼락같은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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