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언덕의 교회로 올라가는 길 양옆으로는 가을이 오기 전부터 코스모스가 지천이다. 햇살과 바람이 마음껏 드나드는 들판에 코스모스가 풍성하게 꽃을 피웠다.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려면 다리가 꽤 아프다. 은주는 오늘도 언덕을 오르다 말고 서서 숨을 고르며 짜증을 부리고 있다.
"아! 힘들어! 길을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야?"
언덕을 오르는 길을 지그재그로 만들 만큼의 넓이는 아니었다. 가파르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힘들고 짜증이 나서 그냥 내뱉는 말이었다.
"아! 왜 케 길이 길어~ 교회는 도대체 왜 저기에 지어 놓은 거야!"
은주는 교회 가는 오르막길에서 다리가 아플 때마다 투덜거리며 멈춰 섰다.
언덕에 바람이 불면 빼곡히 자라난 코스모스가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그리며 일렁인다. 색색의 코스모스는 무질서하고 엉망으로 자란 듯 보이지만 길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오른쪽은 도랑이고, 왼쪽은 가파른 산등성이의 억센 들풀들이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은주는 멀고 힘들다는 핑계로 굼뜨고 느리게 올라가면서 제멋대로 피어난 코스모스를 만끽했다. 가늘고 길게 자랐지만 바람과 어우러지며 자유롭게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으면 한 송이의 코스모스가 되어 햇살을 향해 춤을 추고 싶어졌다.
마당에 심어 보려고 코스모스 씨앗들을 비틀어 바지 주머니 가득 넣었다. 그러고는 집에 와 옷을 벗어 놓을 때 까맣게 잊어버렸다. 씨앗들이 빨래에 엉겨 붙어 순자가 화를 내면 그제야 주머니의 씨앗이 생각났으니 '마당에 코스모스 심기'는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은주는 순자의 잔소리에도 모른 척 코스모스 씨앗이 다 떨어질 때까지 주머니에 넣어왔다.
교회 입구 한쪽 벽에는 널따란 신발장이 있었지만, 아이들의 신발은 항상 바닥에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맨발의 개구쟁이들은 구겨 신은 흙투성이 운동화를 아무렇게나 이리 휙 저리 휙 벗어던지고 뛰어 들어갔다. 목사 인하는 아이들은 맞으며 엉망인 신발의 짝을 찾아 하나씩 신발장에 정리하고 들어 왔다.
가끔은 똑같은 신발을 신고 온 친구끼리 바꿔 신고 갈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은주의 새 신발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예배 후 청소를 돕느라 마지막까지 남았는데 은주의 신발은 없고 허름한 슬리퍼 한 켤레만 남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슬리퍼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 은주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순자에게 투덜댔다.
"엄마! 나 또 신발 잃어버렸어."
"새 신발을 워째 자꾸 잃어버리고 그런다니?"
"그러니까~ 아~ 짜증 나!! 교회에서 나올 때 보니까 어떤 놈이 또 내 신발을 신고 가버렸어!"
"왜 지 신발이랑 너므 신발두 구분두 뭇 허구 신구 간다니?"
"아냐! 똑같은 신발 말고 이거 다 떨어진 슬리퍼 남겨두고 갔잖아! 이 슬리퍼 주인이 도둑놈이겠지!"
엄밀히 말하자면 도둑놈이 아니라 도둑년이었지만 은주는 년이라는 욕을 하는 것이 싫었다. 놈이라고 하면 왠지 욕 같지 않아 모든 욕을 할 때는 놈이라고 붙여서 말했다.
은주는 신고 온 슬리퍼에 화풀이하며 저 멀리 집어던져 버렸다.
"에이 씨! 분명히 도둑질해 간 거야!! 아~ 짜증 나! 또 어떻게 찾아~ 내 신발~~"
"에휴... 교회 갈 땔랑은 새 신발은 신구 가지 말어!"
순자는 자신이 데리고 간 교회였으니 괜히 미안했다.
순자는 옷은 물려 입혀도 신발 인심은 후했다. 아이들에게 운동화, 샌들, 구두까지 다양하게 사주었다. 덕분에 은주의 속상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쩌면 은경이 신발이 다 닳도록 밖을 드나드니 허름해진 신발을 물려줄 수 없어 은주도 새 신발을 신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은주는 일요일이면 예배 시간에 맞춰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교회에 갔다. 왜 가는지는 자신도 모른다. 신앙심이 불타거나 간절함 따위가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순자가 다니는 교회가 궁금해서 따라가 봤고, 같이 다니자고 하니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라 칭찬받고 싶어 같이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어른 예배 시간과 아이들 예배 시간이 달라 따로 다녀야 했다.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은주는 혼자서 잘 다녔다.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 생각이 없이 다닌 것은 또 아니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최소한 지켜야 할 것들은 지키려고 노력했고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믿었다. 필요에 의해서 가끔 본인의 의지로 기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왜 가냐고 굳이 묻는다면 은주는 자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갔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 힘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도 없었다. 찬양이나 예배 시간이 딱히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고, 은주의 세계를 뒤집어 놓을 만한 특별함도 없었다. 오히려 불편하고 귀찮은 것들로 넘쳐났다.
예배실 방바닥에 방석을 깔고 한참 동안 앉아 예배를 드리다 보면 다리에 감각이 둔해지면서 아려왔다. 겨울이면 난방이 되지 않아 발이 시렸다.
은주가 6학년이 되자, 같은 학년은 은주와 수연이 둘 뿐이었다. 목사인 인하는 은주와 수연이가 최고 학년이라며 둘만 번갈아 가며 대표 기도를 시켰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대충 눈치껏 파악은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난감했다.
발표 불안증이 있는 은주에게 대표 기도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기도를 미리 준비해서 읽는 것도 아니고 즉흥적으로 하라니... 밥 먹을 때 습관적으로 하는 기도나 아주 다급할 때 하는 일회성 기도 외에는 기도할 일도 없었고 하나님과 친하지도 않았다. 모든 사람이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머리는 멍하고 눈앞이 하얘지는 것 같았으니 대표 기도는 은주에게 고문 그 자체였다.
더군다나 수연이가 결석이라도 하게 되면 은주는 몇 주를 연달아 기도해야 했다. 그렇다고 기도 때문에 결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마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엉터리 기도에도 불구하고 목사 인하가 매번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교회 친구였던 수연이와는 성격이 너무 달라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수연이의 집에 몇 번 놀러 가보기는 했지만 친해지지는 않았다. 친구도 별로 없는 주제에 은주는 친구를 가려 사귀었다.
수연이는 자기 집과 친척들을 통틀어 유일하게 혼자서 교회에 다니는 아이였다. 혼자서 교회를 꾸준히 다니는 것이 신기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순전히 기도나 은주 혼자 해야 하는 일들에 부담을 덜어 준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친구들도 어쩌다 교회에 오기는 했다. 크리스마스 때나 추수감사절의 특별 행사가 있을 때 초코파이를 얻어먹기 위해 교회를 방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은주가 6학년인 지금은 이인하 목사와 그 가족이 내려와 목회를 하고 있지만 이전에도 여러 사람이 거쳐 갔다. 은주의 기도 부탁으로 밤샘 기도를 해 주었던 임종길 목사처럼 혼자 내려온 사람도 있었고 아기가 있는 젊은 전도사 가정이 오기도 했다. 벽지의 불편함 때문에 대부분 오래 있지 못하고 한 두 해 만에 돌아갔다.
1832년 독일인 칼 귀츨라프 선교사가 우연히 고이도에 도착했고, 25일 동안 머물며 선교를 하고 갔다는 이유로 주변의 큰 섬들에 없는 교회가 일찍부터 생겨났다. 그 특별한 뜻을 이으려고 먼 섬까지 들어오는 목회자들이 있었다.
교회에 딸린 방은 작고 불편한 데다 섬 내의 성도들도 몇 되지 않았으니 외롭고 힘든 선교지였을 것이다.
이인하 목사는 사모와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와 학교 앞 빈집을 구입해 정착했다. 아이들을 국민학교에 입학시키고 학부모로 동네 사람들과 어우러져 생활하면서 마치 귀촌 생활을 즐기러 온 사람들처럼 지혜롭게 섬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