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삶을 담담하게 대하는 법

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by 온벼리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은경은 친구 현희와 대천에서 자취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기관지가 좋지 않았던 은주는 열한 살에 갑자기 병세가 나빠져 다시 병원에 다녀야 했다. 혼자 배를 타고 나와 병원에 들렀다가 토요일이니 은경의 자취방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다.

주인집 마당 한편에 있는 자취방은 두 평 남짓한 작은 방과 부엌이 있었다. 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고 부뚜막의 미닫이문을 열면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은경과 현희는 자기 전에 다 꺼져가는 연탄 위에 새까만 새 연탄을 얹고 뚜껑을 닫았다. 텔레비전을 보다 밤늦게 잠이 들었다. 새벽쯤 은주는 머리가 아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부엌문 바로 옆에 누워있었던 은주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계속된 신음소리에 짜증 난 은경이 참다못해 화를 내며 벌떡 일어나려던 순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눈앞은 핑 돌아 어지럽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파왔다. 은경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현희를 깨웠다. 둘은 부엌으로 나갔다. 부엌에는 매캐한 연탄가스가 가득했다.

연탄을 갈 때는 아래 연탄의 불이 남아 있을 때 새 연탄을 갈아줘야 하는데 이미 다 타버린 연탄 위에 새 연탄을 넣은 것이 문제가 됐다. 불이 제대로 옮겨 붙지 않은 새 연탄은 불완전 연소가 되면서 일산화탄소를 밤새 내뿜었다. 연탄가스는 부엌에 가득 차고 방 미닫이문의 헐거운 틈 사이로 흘러 들어와 방안까지 들어차면서 자고 있던 셋은 모두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것이다.



몸이 약하고 예민했던 은주는 몸의 이상을 빨리 감지했고 끙끙거리며 앓고 있었다.

현희는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갔고 은경은 은주를 마당으로 끌고 나왔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은주는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구토하기 시작했다. 문 바로 앞에서 자고 있었던 은주는 은경과 현희보다 더 많은 연탄가스를 마셨고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동치미 국물이 연탄가스에 좋다며 장독대 항아리를 열어 동치미 국물을 한 대접 떠다 은주에게 마시라고 주었다. 정신도 몽롱한데 짭짤한 동치미 국물을 들이켜니 구토가 더욱 심해졌다.


주인집 아주머니의 연락을 받고 순자와 영식은 급히 배롤 몰고 대천으로 올라왔다. 새벽인데도 어찌나 빨리 왔는지 은주는 금세 달려온 엄마 아빠가 반가워 그 와중에 물었다.

"어? 엄마! 아빠! 왜 이렇게 빨리 왔어??"

"괜찮여? 워디가 워디가 아프냐?"

"머리 아프구! 어지럽구! 토할 것 같애!"

"어이구~ 내 새끼 워쩐 일이여~"

은주를 살피는 순자와 다르게 마음이 급했던 영식은 대뜸 은주를 업었다.

"아! 뭐 헌다나? 얼릉 병원이 가야지!! 얼릉 업혀! 얼릉!"

영식은 은주를 업고 순자는 은경과 현희를 붙들고 동네 작은 의원 응급실로 뛰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엉덩이 주사를 두 대 맞고 링거도 꽂았다. 한참 자고 일어났지만, 머리는 여전히 아프고 속도 메스꺼웠다. 이미 오후였다.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의사가 은주 침대 옆으로 와 말했다.

"검사 결과 나왔는디요. 큰 문제는 읎겄네요! 다행이여! 빨리 발견혀서! 며칠만 입원혀서 주사 맞구 수액 맞으믄 건강에는 지장 없을 규. 크게 걱정 안혀두 되겄네! 괜찮여! 이만허기 다행이지!"

의사의 말에 영식과 순자는 안도의 긴 숨을 내쉬었다. 순자는 누워있는 은주의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이구~ 괜찮다니 깨 다행이다! 다행이여! 큰일 나는 줄 알었네!"


은경과 현희는 한 병실을 쓰고 빈자리가 없어 은주는 다른 병실을 쓰기로 했다. 순자는 병실을 오가느라 바빴지만 어쩐 일인지 아까부터 영식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영식은 일찍부터 술에 취해 있었다. 순자는 다른 병실 사람들을 통해 영식이 밖에서 울고 있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으이구~ 느의 아베는 여까지 와서 왜 또 저런다니?"

"왜? 아빠 어디 있어?"

"밖이서 울구 있다드라!"

"어?? 왜?? 아빠가 우리 아프다구 울어?"

영식이 운다는 소리를 처음 들어본 은주는 깜짝 놀랐다.

"물러... 모르는 사람 붙잡구 신세 한탄혀 감서 울구 있다더라. 어이구~ 뭇 살어!!"




새벽에 전화를 받은 영식은 최고 속도로 배를 몰아 어항에 도착했다. 택시 기사를 닦달해 어항에서 20분 거리인 대천에 10분 만에 도착했다. 영식은 다 큰 자식까지 잃고 싶지 않았다. 은주를 등에 업고 뛰려니 다리가 바들바들 떨려왔지만 정신 차리고 응급실까지 최대한 빨리 가야 했다.


오후 늦게서야 괜찮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불 붙일 생각도 없이 담배를 물고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괜찮다고 하니 긴장도 풀리고 이제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영식은 가슴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묻어 두었던 아픈 감정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빨리 술이라도 한잔해야지 진정될 것 같았다. 아침부터 밥 한 끼도 먹지 못했지만, 빈속에 술을 들이켰다.


혼자 앉아 외로이 술을 마시려니 잊고 싶은 기억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고통 속에서 죽어간 영일이, 살갑게 한번 대해주지 못하고 차갑게 떠나보낸 영복이, 부끄러워 무시만 했던 웃말 어머니, 중풍 맞아 더욱 까칠했던 아버지, 한 번도 따뜻하게 안아 준 적 없었던 어머니,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죽은 첫째 아들까지 여섯 명의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영식이었다. 오늘 두 딸까지 잃을 뻔했으니, 자신에게 일어나는 가혹한 시련이 기가 막혀 오늘은 술을 마셔도 마음이 달래 지지 않았다.


영식은 병실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병원 후문 입구에 주저앉아 혼자 중얼거리며 눈물을 닦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러 나온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울고 있는 영식의 곁으로 와 앉았다. 남자는 사는 게 다 그렇다며 영식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영식은 낯선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꺽꺽거리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밤이 늦도록 영식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남자는 옆자리를 지켰다.

영식은 낯선 이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음의 보따리를 풀어놓고 고통스러웠던 시간과 마주하며 삶을 담담하게 대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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