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가슴에 묻고, 아무도 모를 곳에 묻고

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by 온벼리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영식의 어린 시절 섬에서는 빗물을 받아 생활수로 쓰고 우물물을 길어다 식수로 사용했다. 열네 살의 영식은 돈을 벌어야 했지만, 어린아이에게 일은 시켜 주는 사람은 없었다. 섬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물을 길어다 주고 푼돈이라도 벌어야 했다. 물지게 양동이를 가득 채우면 영식의 몸무게와 맞먹는다.

웃말 언덕 우물에서 물지게를 지고 좁고 구불구불한 흙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다 보면 얼마 가지도 못하고 내려놓고 쉬어가야 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지겹도록 같은 길을 오갔다. 발걸음을 재촉하면 출렁거리던 물이 흘러넘치니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몇 번만 오가도 온몸은 땀범벅이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깨는 무너질 듯 아팠다. 학교를 못 가는 것도 서러운데 어린 나이에 무거운 물지게를 지고 나르려니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 눈물짓는 날도 많았다.


열일곱이 되자 뱃일을 돕는 일꾼으로 써주는 집이 생겼다. 열일곱에게 품삯을 많이 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제법 벌이가 되니 여동생과 남동생의 학비는 벌 수 있었다.


성인이 되자 수협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대출을 받아 작은 배를 샀다. 첫 번째 배 이름을 신흥호라고 지었다. 신흥호를 타고 몇 년을 부지런히 일하며 은행 빚을 갚아나갔다. 오랜 시간 악착같이 모아 남들 같이 큰 배를 모는 선장이 되었다. 두 번째 배도 신흥호라 이름을 짓고 페인트로 직접 글씨도 썼다.




영식에게는 누나와 세 명의 동생이 있다. 누나는 일찍 결혼했고, 여동생 영임이도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결혼을 했다. 남동생 영일이는 며칠 전 대학교에 합격했다. 학원 한번 다니지 못했지만, 연세대학교에 합격했으니, 동생의 합격이 자랑스럽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뻐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느라 바빴다.

영일은 서울대에 가고 싶었지만, 사립대인 연세대만 붙었으니, 영식에게 부담이 될까 미안했다. 영식은 무슨 일이 있어도 졸업을 시켜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공부하라며 큰소리쳤다. 그런 영식이 영일은 든든하고, 고마웠다. 영일은 대학 등록을 마치고 학교 근처에 방을 구했다.


영일은 입학 전 설을 보내기 위해 고이도로 내려왔다. 때마침 고이도에는 청년회에서 개최하는 설맞이 콩콜대회가 있었다. 앞장벌에 자갈이 넓게 깔린 멸치 건조장 위로 커다란 천막이 쳐졌다. 천막 안으로 무대가 만들어지느라 시끄러웠고 관람용 플라스틱 의자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무대 위로 노래방 기계와 악기들도 들어왔고 콩콜대회 상품들도 진열되었다. 노래를 곧 잘했던 영식은 부산갈매기를 불러 예선전을 통과했다. 화려하게 준비된 마을 잔치에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고이도는 노랫소리로 쩌렁쩌렁하다. 대상으로 텔레비전을 받은 춘삼이는 이미 고이도를 대표하는 유명가수가 됐다. 콩콜이 끝나고도 분위기에 취해 여기저기서 술판이 벌어졌다.



한껏 들뜬 영일과 친구들도 술을 마셨다. 소주를 처음 마셔본 영일은 금세 만취되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뭐가 그리 즐거운지 친구들과 연신 껄껄대며 걷고 있었다. 좁은 길에서 비틀거리던 영일은 길가에 쳐 놓은 녹슨 철조망 옆으로 쓰러졌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철조망에 코를 찔렸다.

"영일이 저 시끼는 왜 지 혼자 자빠지고 지랄이여? 누가 민 것두 아니구만 자빠지고 그려! 크크크..." "에?? 너 이 시끼 코에 피나는디?"

영일의 콧잔등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 피난다구? 워디? 얼라? 진짜네? 에이~ 씨! 괜찮어~ 닦으믄 되지!!"

영일은 대수롭지 않게 옷소매로 피를 쓱 닦고는 일어났다.

"야! 이 시끼야! 집이 갈라믄 제대루 걸어야 앞으루 갈 거 아녀! 왜 자꾸 옆으루 걷구 그려 니가 박하지여?"

"박하지?? 내가 박하지여? 히히. 잘 봐라이~ 빤듯허게 가구 있다이~!"

영일은 또 비틀거리다 다리가 꼬여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 씨! 근디 왜 자꾸 땅이 뎀비는 겨!"

"우헤헤헤! 영일이 저 새끼는 또 자빠졌어! 야! 우리끼리 가자! 저 시끼 오늘 안이 집이 뭇 가겄다!"

영일과 친구들은 소란스럽게 골목길을 지나며 넘어져도 즐겁기만 했다.


점심때가 다 되도록 일어나지 못하는 영일을 깨우러 순자가 작은방으로 들어왔다. 자고 있는 영일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월라? 이게 뭐여? 콧잔등이 왜 피가 난댜? 워디서 이렇게 다쳐서 왔댜?"

순자는 가제 손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와 자고 있는 영일의 코에 피를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도련님! 일어나 봐유! 밥 먹으야지! 언제까정 잘라구 그류?"

"아이고~ 머리야~"

"어이구! 술두 뭇 먹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먹었간 그려? 코에 피 난 거 내가 닦아 줬는디! 코는 또 왜 그랬댜?"

"아... 물러유... 형수! 나 속 무지허게 쓰린디... 아이구 죽겄네!"

"죽이라두 끓여 줘유?"

"이... 형수가 최고네!"

과음으로 속이 좋지 않은 영일에게 순자는 죽을 끓여 주었다.




서울로 올라온 영일은 종식을 만났다. 종식은 영배의 첫째 아들이다. 종식은 영일의 조카였지만 나이가 훨씬 많으니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형이라 부르며 지냈다. 종식은 영일이 서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도와주었고, 같이 방도 구하러 다녔다. 이번 설에는 고이도로 내려오지 못했으니, 영일이 학교 입학하기 전에 밥을 먹기로 했던 것이다.


둘은 신촌에서 점심을 먹고 당구를 치러 갔다. 공부만 하던 영일은 뭐든 처음이라 당구도 마냥 신기했다. 당구공이 꺾이는 각도가 재미있다며 테이블에 바짝 붙어 공과 눈높이를 맞추어 허리를 숙이고는 당구공이 굴러가는 방향을 계산하며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당구 150을 치던 종식은 영일의 관심에 어깨가 으쓱해져 쓰리쿠션을 보여주겠다며 힘껏 공을 쳤다. 힘이 잔뜩 들어간 공은 테이블 밖으로 튀어 올라 영일의 코를 적확히 강타했다.

영일은 충격으로 뒤로 나자빠졌다. 코에서는 피가 흘렀고 순식간에 시퍼렇게 멍들고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당구공으로 맞은 자리는 하필이면 며칠 전 고이도에서 철조망에 찔려 다친 자리였다.

갑자기 영일의 얼굴 근육이 떨리며 경직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얼굴 전체가 마비되어 뒤틀리기 시작했다. 영일은 고통스러움에 소리 지르며 바닥을 굴었다.

종식은 급하게 영일을 차에 태우고 가까운 연세대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종식의 옆자리에 앉은 영일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했고 종식은 영일을 제지하면서 힘들게 응급실까지 갔다.


소식을 듣고 급하게 올라온 영식이 병원에 도착했다. 영일은 얼굴에서 시작된 경직과 경련이 이미 온몸으로 퍼져있었고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의사가 영식을 따로 불렀다.

"환자분이 당구장에서 당구공을 코를 맞았다고 하는데 당구공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고요. 코에 녹슨 쇳조각이 박혀 있었던 걸로 봐서 아마 며칠 전에 파상풍에 걸린 것 같습니다. 파상풍이 생긴 상처에 당구공을 맞고 경직이 시작된 것 같은데요. 코를 다친 걸 모르셨어요?"

"며칠 전이 술 먹구 넘어져서 다쳤다구 코피가 났는디... 그러구 말었는디?"

"원래 파상풍은 잠복기가 있어요. 잠복기가 짧을수록 예후가 좋지 않아요. 거기다! 녹슨 쇳조각이 하필 코에 그대로 박혀 있었으니, 파상풍이 더 심하게 온 것 같은데... 파상풍은 작은 상처로도 감염이 일어날 수 있고요. 파상풍균이 만드는 독소가 근육을 경직시키는데 통증이 어마어마합니다. 근육 경직이 온몸으로 진행되면 아주 미세한 자극에도 전신의 고통스러운 경직이 발생하는데 이런 증상은 심하면 몇 주 정도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통증이 어마어마한데 의식이 완전하게 유지되는 병이라서... 환자가 견뎌내기 힘들 거예요.

증상이 빠르게 진행되거나, 치료가 늦은 경우일수록 예후가 좋지 않고, 중증인 경우엔 사망률도 높습니다. 환자분은 둘 다 해당되고 지금 상태로 봐서는... 안타깝지만! 오래 못 버틸 것 같습니다. 음...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의 말에 영식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온몸에 힘이 풀려 걸을 수도 없어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마음을 다잡고 응급실로 돌아온 영식은 울며 영일의 손을 꼭 잡았다. 영일은 잠시 정신이 들었는지 영식을 보고 울며 말했다.

"형! 나 죽겄어!!"

"아녀!! 안 죽어! 죽으믄 안댜!!"

"형! 살려줘! 형! 나 즘 살려줘~ 나 죽기 싫어! 나 즘 살려줘!"

"안 죽어! 내가 죽게 안 혀! 영일아! 정신 차려! 이?? 정신 치리야 혀!!"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경직은 시작됐고 점점 심해져 목과 등이 수축하여 활처럼 뒤로 휘고 입에서는 거품이 나왔다. 영일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다급히 뛰어온 의료진 뒤에서 어쩔 줄 몰라 울며 벌벌 떨고 있던 영식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영식은 서울로 올라갈 때 순자에게 따라오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 했었다. 순자는 고이도에서 소식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 뒤에 영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일이 죽었다고... 영식은 장례도 없이 혼자서 영일을 화장했고, 연세대 교정에 뼈가루를 뿌리고 고이도로 돌아왔다. 며칠간의 기억이 고통스러웠던 영일은 몸살로 누워 일어나지도 못했다. 시간이 지나 몸은 회복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영일이 죽던 시간에 머물러 있었고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영식은 술이라도 마셔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죽고 싶었지만, 자식이 넷이나 되니 차마 죽을 수도 없었다. 영식의 시간은 엉망진창으로 흘렀다. 오랫동안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살아갔다. 시간은 덧없이 흐르고 흘렀다. 죽지 않고 견디고 살아내니 영원할 것만 같았던 슬픔도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다. 하지만 영식은 영일을 가슴에 묻고 나니 모든 일에 의욕을 잃었다.


영일의 일이 생겼을 때 은주는 두 살이었고 순자의 뱃속에는 은진이가 있었다. 순자는 은진이가 뱃속에 있는 내내 영식의 방황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엄마의 고통의 감정을 공유했던 은진이도 태어나 매일 이유 없이 울었고 국민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그 울음은 계속됐다.




은주네 반 친구들은 영복이가 은주의 삼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짓궂게 굴었다.

"야! 영복이가 니네 삼촌이라메?" "......" "영복이 바본데?? 야! 니네 삼촌은 왜 바보냐? 자기 이름도 모르지?"

"이~씨!! 그만해라!"

"얼레리꼴레리~ 은주네 삼촌은 바보래요~"

"너 죽을래?"

아이들은 은주가 받을 상처는 안중에도 없이 자기 입에 즐거우니 서슴없이 내뱉었다.

은주는 자기들보다 한참 나이 많은 삼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기분 나빴고, 놀림거리인 영복이 자신의 삼촌이라는 것도 싫었다.


남자아이들은 영복이와 마주치면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으로 변했다. 영복이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막대로 때리고, 돌을 집어던져 악당을 물리쳤다. 여자아이들은 기겁하며 도망갔다. 은주는 도망가지는 않았지만 영복에게 잘못 걸리면 머리채를 잡힐 수도 있으니 멀찍이 피해 다녔다.

아이들은 모여서 놀다가 영복이가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가 일제히 돌을 던졌다. 영복이는 도망치다 궁지에 몰리면 아이들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거나 때리고 밀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공격당하기만 하던 영복이도 이제는 아이들이 보이면 먼저 때리는 것이다.

아이들은 영복이를 조금 위험한 재밋거리로 여겼다. 영복이가 나타나면

"영복이가 나타났다~"

라고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도망가 숨었다가 다시 뒤따라가 공격했다.

한 놈이 붙잡혀 맞기라도 하면 맞은 놈은 울며 집으로 달려갔고, 나머지 놈들은 여전히 스릴을 즐기며 장난치기에 바빴다. 은주는 그런 아이들이 꼴 보기 싫었다. 영복이 삼촌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삼촌이라고 하니 남들에게 공격당하고 놀림거리가 되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영복이는 웃말에 사는 순례의 셋째 아들이고 영식의 막내 남동생이다. 영복이는 아기일 때 큰누나가 업고 다니다 떨어뜨려 머리를 다쳤다. 사지가 멀쩡해 보였던 영복이는 특별한 치료 없이 방치되어 자랐고 동네 바보가 되었다. 영복이는 꽤 건강했고 엄청난 식탐을 자랑했다. 체격도 남달라 누구든 힘으로 제압하기 쉽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아무 집 부엌에 불쑥 들어가 밥을 훔쳐 먹었는데 남은 밥이나 찬장에 넣어둔 음식을 꺼내 먹다가 매 맞고 도망쳐 나오는 일은 일상이었다. 매라고 해봐야 빗자루로 얻어맞거나 등짝을 몇 대 맞는 정도였지만 영복이는 말도 못 하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아이같이 앵앵 울면서 도망쳤다. 덩치는 컸지만, 지능은 아기 수준이었고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했다.


돌아다니다 대소변이 마려우면 길 한복판에서도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거나 바지에 그냥 싸기도 했다.

은주는 웃말에 사는 친구 집에 가는 길이었다. 두 명의 남자가 몇 미터 앞에서 걷고 있었다.

"아이구~ 드러~ 똥 밟았네! 아니! 언 노므 새끼가 길 한복판이다 똥을 싸 놨댜? 어이구~ 냄새두 지질맞네!"

"누구긴 누구여~ 길이다 똥 쌀 눔이 영복이 말구 누가 있남?"

"에이 씨! 썩을 눔에 새끼!! 왜 여따 똥을 싸 놓구 지랄이여! 드럽게 많이 두 처먹었네! 어이구~ 냄새야!!"

상황을 금세 알아챈 은주는 영복이라는 말 한마디에 괜스레 미안해져 얼굴이 달아올랐다. 은주는 자기가 싼 똥도 아니면서 영복이의 조카라고 아는 척이라도 할까 봐 고개를 돌리고 멀찍이 떨어져 후다닥 뛰어 앞질러 가 버렸다.


영복이는 남의 집 부엌에서 먹을 것을 찾지 못하면 마당에 널어놓은 생선도 집어 먹었다. 은주는 영복이가 덜 마른 복어를 그렇게 많이 집어먹고도 죽지 않더라며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피를 빼고 말린 복어는 독이 없어 먹어도 죽지 않는다. 그 사실을 그들이 몰랐다 쳐도 그들의 말에는 영복이가 복어를 먹고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영복이와 둘이 살았던 순례는 작은 체구에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할 줄 모르는 순하고 착한 사람이다. 영복이의 나이 서른세 살이었다. 순례는 연탄을 갈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졌고 발견됐을 때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혼자가 된 영복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자 순자는 자주 들여다봐야 했다. 아이넷에 뱃일도 바쁜데 통제 안 되는 영복이까지 챙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들은 종종 순자를 걱정하며 말했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둬! 뭐 헐라구 그 고생을 헌댜? 그냥 죽게 둬두 아무두 뭐라구 안 혀!"

"어이구~ 그려두 불쌍헌디 어찌 모른 척 헌댜~"

순자는 영복이를 집으로 끌고 와 밥을 먹이고 옷도 따듯하게 입혔지만, 입혀준 옷은 아무 데나 벗어던지고 맨발로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순자의 돌봄을 알고 영복이가 말썽을 부리면 순자에게 와서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겨울이 되자 영복이의 집에 연탄을 매일 봐줄 수 없었던 순자는 냉골인 방바닥에 짚을 깔아 주었다. 방에도 똥을 싸서 뭉개니 이불은 감당할 수도 없었다. 날이 추워지자, 영복이는 독감에 걸려 밖에 나오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고 겨울이 한창인 아주 추웠던 어느 날 영복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추운 겨울에도 외투는커녕 찢어진 얇은 바지 차림에 맨발로 돌아다녔으니 몸도 성할 리 없었다. 순례의 빈자리를 채워줄 사람은 없었다. 순례가 죽은 지 일 년 만의 일이다. 영복이의 죽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순자에게 말했다.

"잘된겨! 오히려 잘 됐지 뭘~ 그동안 고생혔응깨!! 어휴~ 헐 만큼 혔네! 마음 쓰지 말어!!"

죽음을 앞에 두고 위로한답시고 함부로 지껄이는 그들의 마음에 안타까움은 없었다.


영복이가 죽은 날 영식은 시신을 멍석에 말아 지게에 짊어졌다. 순자는 삽을 들고 영식의 뒤를 따랐다. 둘은 쓸쓸하게 산을 올랐다.


영식이 명절에 함께 산에 오른 은주와 민철에게 영복이 묘를 가르쳐 주지 않자, 은주가 물었다.

"아빠! 영복이 삼촌 묘는 어디 있어? 왜! 할머니 할아버지 묘 옆에 없어?"

"이... 저기 멀찌감치 묻었어. 알 거 읎어... 거기다는 성묘 안 혀두 댜!"


영복이는 평생 짐승 취급받으며 살다가 죽어서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혔고 사람들은 그를 기억 속에서조차 빨리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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