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들이 지켜낸 것

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by 온벼리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며칠 뒤 뒷장벌 선착장에서 무당은 굿을 준비하고 있었다. 흰 고깔을 쓰고 흰 두루마기에 흰색 버선을 신고, 허리에는 흰색 천을 칭칭 감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으로 차려입은 무당은 대나무 가지에도 흰색 종이를 묶어 세워두었다. 제사용 음식을 한 상 차려놓고 징 소리에 맞추어 날뛰기 시작했다. 수연이를 위로하고 바다에 빠진 넋을 건지는 넋 건지기 굿이라 했다.


은주는 시작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지켜봤다. 길려가 굿을 자주 했기에 익숙할 뿐 은주는 굿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은주가 수연이의 넋 건지기 굿을 지켜보고 있는 이유는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수연이는 교회를 다녔던 아이다. 그런 아이의 넋을 위로한답시고 굿판을 벌이는 꼬락서니가 은주는 탐탁지 않았다. 은주는 수연이를 대신해 팔짱을 끼고 멀찍이 서서 굿을 지켜봤다.


은주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확신과 자부심은 없었지만, 굿을 보는 내내 유난스럽게 거슬렸고 심기가 불편해 오만상을 찌푸리고 서 있었다.

굿이 끝나자, 무당은 제사 음식은 나눠 먹어야 한다며 구경하던 아이들에게 알록달록한 사탕과 한과들을 나눠주었다. 은주는 단호하게 무당의 손을 뿌리치고 멀찍이 물러섰다. 그러고는 사탕이라고 눈이 돌아가 속도 없이 덥석 받아 들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향해 혼잣말로 욕을 했다.

"등신 같은 것들. 아무리 사탕이라지만 그걸 처먹구 싶니?"

손을 붙들어 사탕을 쥐여 주려던 무당과 게걸스럽게 받아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화가 치밀어 괜스레 무당과 아이들을 번갈아 가며 째려봤다.


무당은 허리에 둘렀던 흰 천을 풀어 제사 지낸 밥그릇을 돌돌 말아 묶었다. 밥그릇을 묶은 천을 길게 늘어뜨려 배에 올라타더니 수연이가 빠졌던 선착장 주변으로 배를 몰아 빙빙 돌면서 낚시하듯이 천을 끌고 다녔다. 바다에서 떠돌고 있는 넋을 건지겠다는 것이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저기 천 안이 머리카락이 나오믄 혼이 건져진 거랴!"

"꽁꽁 묶어 둔 속이서 머리카락이 나온단 말여?"

"그렇당깨! 진짜 저 속이서 머리카락이 나온댜!"

"거 속이 머리카락이 워쩌케 들어가?"

"긍깨 귀신이 곡헐 노릇이지"

"나오나 안 나오나 보믄 알겠지~"

머리카락이 정말 나왔는지 나오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들리는 말로는 나왔다는 말도 있고 아니라는 말도 있었다. 사람들의 말을 들은 은주는 또 혼잣말을 했다.

"흥!! 보여줘도 안 믿어!"

아무도 은주의 생각에 관심 없었고 보여주려 하지도 않는데 은주는 괜히 혼자 단호했다.


은주는 자신도 모르게 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교회를 다니고부터 제사상에 절하지 않았고 제사 음식도 먹지 않던 은주는 수연이를 위한 굿을 보며 화까지 냈으니 말이다. 침을 뱉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그럴 배짱은 없었다. 그저 아이답지 않은 확고함이 있었을 뿐이다.




서낭당 옆 당나무에는 오색 천을 꼬아 감아 두었고 가지에는 천을 매달아 길게 늘어뜨려 놓았다. 서낭당 기와 밑에는 제사상이 있고 제사 때 쓰던 물건들도 남아 있었다.


섬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뱃일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굿을 했다. 바다에서 실종된 사람은 시신조차 찾기 쉽지 않았다. 시신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굿을 했고, 또 넋을 건진다며 굿을 했다.


더 오래전에는 바다에서 사고가 나지 않게 해 달라며 겨울만 되면 뇌물을 바치는 제사가 마을 정기 행사로 정해져 돼지를 잡는 온 동네잔치였다.


길려는 무슨 일만 있으면 굿을 했다. 토끼고기를 먹고 아팠을 때도 굿을 했고, 남편이 중풍으로 누웠을 때도 굿을 했고, 젊어서부터 수 없이 굿을 했다. 굿을 해서 얻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불편해서 굿을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굿을 했다.


사람들도 마을에 무슨 일만 있으면 무당을 불렀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굿이라도 해야 마음이 풀리는 모양이다.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굿을 한다지만 그들이 정작 지켜낸 것은 그들의 마음뿐이었다.


섬에서는 제때 치료받지 못해서 죽는 사람, 별일 아닌 일로 죽는 사람, 물에 빠져 죽는 사람, 뱃일 나갔다가 실종되는 사람, 어린 나이에 죽는 사람, 여러 가지 이유로 젊은 나이에 죽는 사람이 많았다.


은주는 섬에서 사는 13년 동안 많은 죽음과 대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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