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영식은 국밥집으로 향했다. 병철은 뜨거운 국물을 호로록 소리 내며 들이키고 있었다. 병철을 발견한 영식은 슬며시 앞자리로 와 능청스럽게 앉았다.
"어이~ 여태 점심두 안 먹구 뭐였다?"
"이~ 영식이!! 니도 아직 점심 전이여? 잘됐네! 같이 먹구 집이 즘 들렀다 가!"
"내가 니네 집이 뭐 헌다구 가?"
"줄게 있응깨 좀 들렀다 가~"
"이 시끼! 싱겁기는... 담이 줘!"
"아녀! 봤을 때 줘야지! 밥 먹구서 바루 집이 갈 거 아녀?"
"이이~ 얼릉 먹구 이제 집이 가야지."
"그럼 가는 길잉깨 들렀다 가믄 될 거 아녀! 얼굴보기두 힘들구먼!"
"그려! 뭐 바쁘지는 않은디! 이모! 나두 국밥 하나 주쇼!"
병철이 사는 진산도는 고이도와 그리 멀지 않은 섬이다. 고이도 앞장벌에서 보면 진산도가 훤히 보일 정도로 가깝다. 진산도에는 중학교도 있고 중국집에 술집도 있다. 고이도보다 일곱 배나 큰 섬이다.
병철은 어항에서 오다가다 알게 된 친구인데 국졸인 데다 살아온 환경이 비슷해 금세 친구가 됐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두 여동생의 가장 노릇을 했던 병철은 마음이 약하고 순해 터져 사기를 당하고도 큰소리 한번 못 치는 머저리다. 영식은 자꾸 사람들에게 당하는 병철이가 안타까워 가끔 돈을 빌려줬다.
영식은 잠깐 들렀다 가겠거니 싶어 진산도 초소에 입항 신고도 하지 않고 배를 대충 묶어 두고 병철이를 따라갔다. 병철은 방에서 돈봉투를 꺼내 와 실실거리며 영식에게 내밀었다.
"잘 썼네! 빌린 돈 갚는 겨!"
"얼라~ 나중에 줘두 되는디! 근디 돈은 아까 어항이서 찾어서 주믄 되지! 뭐 헐라구 여기까지 오라구 혀!"
"아녀! 줄라구 진즉이 찾아다 놨는디... 바쁭깨 뭇 줘서 그러지~ 기다려 봐! 더 줄 거 있응깨!"
병철은 신이 나서는 부산스럽게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빌려 간 것만 주믄 됐지! 뭘 또 준다구 그려?"
"있어봐~ 어따 놨는디?? 내가 금방 찾어 줄 탱깨 기다려봐이~"
병철은 어머니가 기름집에서 짜다 놓은 참기름을 영식이 하나 줘야겠다며 챙겨 두었었다. 참기름 한 병 달랑 주자니 민망했는지 외삼촌이 가져다준 자연산 벌꿀도 꺼내 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큰 병에 담긴 담금주를 꺼내 놓았다.
"어이구! 돈 몇 푼 빌려줬다구. 뭘~ 이렇게 자꾸 꺼내 오구 그려? 그만 가꾸 와!"
"이거 봐! 내가 잡은 겨. 담근 지 3년 됐을 겨!"
"뭐여? 뱀이여?"
"내가 이 눔을 밭이서 잡었는디! 뱀술이 남자헌티 그렇게 좋댜~ 뱀술 먹어 봤나?"
"먹어 봤지 그럼! 워따~ 근디 이놈은 좀 크긴 허네~ 우리 집이두 담금주는 많어!"
"한 잔 헐 텨?"
"집이 가야 헌 다니깨 뭘 한 잔 허라구 그려?"
"에이~ 맛만 보믄 될 거 아녀!"
병철은 부엌으로 들어가 대접을 들고 나왔다.
"어이~ 이려서 집이 가겄어?"
"이히히히... 맛만 봐!"
"허허! 클났네! 집이두 뭇 가겄네! 그럼. 째끔 만 줘!"
칭칭 감아둔 고무줄을 풀고 비닐을 뜯자 오래 묵은 독하고 진한 향이 올라왔다. 병철은 사발로 듬뿍 떠서 영식에게 건넸다. 영식은 벌컥벌컥 한 번에 들이켰다.
"워뗘? 먹을 만 혀?"
"크~ 진허네! 어이구! 독혀!!"
"나두 한 잔 혀야지~ 자! 한 잔만 더 혀!"
"한 잔만 먹는 다니깨"
"나두 한 잔은 먹어봐야 헐 거 아녀! 처음 땄는디! 의리 없이 니만 먹을라구?"
"어이~ 얼른 집이 가야 허는디."
"그려! 딱 한 잔만 더 허구 가! 집이 가까웅깨 금방 갈 거 야녀~"
병철은 작은 쟁반에 김치와 젓가락까지 꺼내 들고 나왔다. 사발에 한 잔씩 따라 마주 않았다. 영식은 천천히 한 사발을 더 마셨다. 술이 들어가니 병철은 할 말이 자꾸 생각났다. 이래저래 구구절절 니 인생이나 내 인생이나 참 사는 게 어렵다며 서로를 위로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영식은 자기도 모르게 또 한 잔을 마셔버렸다. 사발로 석 잔이면 소주 한 병이 넘는 양이었다.
맛만 보려고 했건만 꽤 많이 마신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영식은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선착장에 대충 묶어놓은 배도 생각났다. 영식은 벌떡 일어났다.
"나 갈겨!"
"얼라~ 취헌 거 아녀? 얼굴이 벌건 헌디? 왜 케 술이 약혀? 그냥 가믄 안 되겠네. 좀 쉬었다 술 깨믄 가!"
"얼릉 간다구 배를 저 짝이 대충 대놨는디! 배를 빼야 헐 거 아녀!"
"그러믄 배만 빼구 좀 쉬었다가 술 깨믄 가!"
"어휴~ 집이 코앞인디... 쯧! 금방 가믄 되겄지! 나 갈 탱깨 나오지 말어."
병철의 만류에도 영식은 마루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었다. 참기름과 벌꿀이 담긴 봉지를 챙겨 들고 병철의 집을 나왔다.
급하게 배에 올라 고이도로 출발했다. 술을 좀 마시기는 했지만 아직 정신은 멀쩡했다. 집이 지척인데 별일이야 없겠나 싶었다.
출발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취기가 순식간에 올라오면서 알딸딸해지기 시작했다. 그놈에 독한 담금주를 마신 게 문제였다. 고이도 초소에 입항 신고를 할 때 순경이 술 마시고 운전했다고 출항 정지시킬 게 뻔했다.
"에이 씨! 그냥 한숨 자구 올걸 그렸나?
맛을 괜히 본다구 혔네!
병철이 저 눔에 새끼는 지나 처먹지 뭐 헌다구 담금주까지 꺼내 와 가꾸는... 에이 씨!! 출항 정지 먹으믄 며칠 일두 뭇 나가겄네!"
영식은 변명하듯 혼자 중얼거렸다.
선착장에 배를 댈 때는 배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접근한 다음 배를 고정하는 밧줄을 내려걸고 줄을 당겨 조금씩 밀착시켜야 한다.
술에 취해 속도 감각이 무뎌진 영식은 선착장에 다다랐는데도 속도를 완전히 줄이지 않았다. 멈추지 않은 배는 밀물로 잠겨있었던 선착장 위로 올라서 버렸다.
배 앞 바닥이 들리는 동시에 뒤가 잠길 정도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운전석에 서 있었던 영식은 순식간에 바다로 떨어졌다.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는 깊이였다. 하지만 배가 들릴 때 배 뒤편에 걸쳐 놓았던 닻이 떨어지면서 닻줄이 멈추지 않은 스크루에 엉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영식의 발목이 걸린 상태로 닻줄은 계속 엉켜 돌아갔고 발을 뺄 수 없을 만큼 빡빡해졌다. 단단히 조여진 닻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버둥대던 영식은 호흡하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멀리서 선착장에 배가 걸쳐 있는 것을 보고 성훈이 뛰어 내려와 배를 살폈다.
"신흥호믄 영식이 형네 밴디?
영식이 형~ 영식이 형~
배를 이모양으루 두구 워디 간 겨?"
아무리 찾아도 영식은 보이지 않았고 시동이 켜진 채 배가 선착장 위에 올라와 있으니, 큰일이 일어난 것은 분명했다.
"아무두 없는디 어쩐댜? 그냥 가야 되나?
물속이 빠졌나? 얼라~ 그럼, 큰일인디?
어이구 워쩐댜? 물 속꺼정 들여다봐야 되남?
물이 깊지두 않구먼 빠졌으믄 기 나왔을 텐디... 워째서 안 나온댜?
에이씨... 모르겄다! 일단 들어가 봐야겄네!"
발을 동동 구르며 혼잣말하던 성훈은 바다로 뛰어들어 영식을 찾기 시작했다. 스크루에 엉킨 닻줄에 발목에 감긴 상태로 의식 없이 늘어져 있는 영식을 발견했다. 영식을 잡아끌었지만, 엉킨 발목은 빠지지 않았다. 성훈은 배로 올라와 배에서 쓰던 칼을 찾아들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두껍고 단단한 밧줄은 쉽게 잘리지 않았고 숨을 참고 몇 번을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해 겨우 밧줄을 잘라냈다. 성훈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영식을 물 밖으로 멀찍이 끌어다 놓고는 영식의 집으로 힘껏 뛰었다.
사람들은 순자와 영식을 배에 태우고 급하게 병원으로 출발했다. 응급한 상황에 바다는 커다란 장애물과 같았다. 배를 타고 응급실로 가는 것은 노새가 끄는 수레를 타고 응급실로 가는 꼴과 다름없었지만 섬에 사는 이상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어항에 도착해 병원의 유료 앰뷸런스를 불러 대천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물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응급조치를 했다면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말과 함께 사망 진단을 내렸다.
순자는 영식을 처음 발견했을 때 인공호흡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훈을 원망했다. 성훈은 영식을 구했지만, 인공호흡을 제때 하지 않아 사람을 죽게 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순자와 영식을 태운 배는 어둠이 내린 바다를 가르며 고이도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