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집으로 가는 길

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by 온벼리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중학생이 된 은주는 육지로 나와 학교에 다녀야 했다. 은주도 이제 부모와 떨어져 외지 생활을 시작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은경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은주는 혼자 자취를 해야 했다. 방을 얻어 주기는 했지만, 순자는 걱정이 앞섰다.

어릴 적부터 혼자 밥 해 먹고 육지에서 병원도 다녔던 기특한 딸이지만 자취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밤을 혼자 보내야 했고 때로는 혼자이면 안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순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친구 희선이의 엄마 현숙은 은주에게 하숙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희선이네 집은 하숙집도 아니었고 하숙생을 들여 본 적도 없다. 현숙의 눈에 은주는 싹싹하고 조용하지만 야무진 아이였다. 은주가 혼자서 지낸다니 안쓰럽기도 했고, 희선이와 같이 방을 쓰며 지내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에 하숙생으로 들어오라며 선뜻 제안한 것이다. 순자는 친구 집에서 하숙한다니 반갑고 다행이다 싶어 현숙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희선이는 사랑받으며 자란 티가 나는 유쾌한 아이다. 현숙은 낙천적이고 털털한 성격에 농담까지 잘하는 여유 있는 사람이다. 희선이네 집은 대천 시내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방 세 개 딸린 아파트다. 은주는 희선이네 가족 사이에 끼어 덤으로 사는 것처럼 지냈다. 희선이와 같은 방을 쓰고, 희선이가 라면을 먹고 싶어 하면 같이 라면을 먹고, 밥 먹을 때도 숟가락 하나만 더 얹어놓고 소리 없이 스며들어 그들의 일부처럼 지냈다.




하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4월의 끝 무렵이었다. 현숙이 아침밥 준비로 분주할 때 안방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아침 식전부터 누가 너므 집이 전화를 혔쌌는댜?"

현숙은 투덜거리며 물 묻은 손을 바지에 얼른 닦고 안방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슈? 이? 이! 그류. 뭔 일 있슈? 이!! 이... 어이구! 어이구! 워쩐댜... 이... 그류."

"은주야! 전화 받아 봐라..." 현숙은 굳은 표정을 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은주를 불렀다. 은주는 현숙의 얼굴빛을 살피며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고이도에 사는 재성이 고모 영희였다.

재성이는 영희의 큰아들이고, 영희는 영배의 막내 여동생이다. 영희는 자신에게 나긋나긋했던 오빠 영식을 꽤 따랐고 영배의 형제 중에서 가장 사이가 좋았다.


"은주야... 재성이 고몬디... 느이 아빠가... 돌아가셨다......" 밤새 많이 울었던 영희의 목소리는 이미 잠겨 있었다.

"얼릉 아침 배루 섬이 들어와라... 은경이 헌티두 전화혔응깨. 같이 들어와."


영희는 은주네 집에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사람들의 분주함이 시끄러웠다. 은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영희는 얼른 섬으로 들어오라는 말만 짧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은주는 무언가에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우왕좌왕하자 현숙은 은주의 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옷가지를 챙겨 가방을 어깨에 메 주었다. 어항으로 가는 아침 버스에 은주를 태우며 현숙은 말했다.

"학교다 가는 내가 전화 헐텡깨... 걱정허지 말구 아침 배 출발허기 전이 얼른 가."




목요일 아침이라 여객선 터미널은 휑했다. 터미널 안쪽 의자 끝에 은경이 앉아 있었다. 은주는 고이도로 들어가는 승선권을 끊고 말없이 은경의 옆으로 가 앉았다. 은경이 먼저 은주에게 말을 걸었다.

"어젯저녁에... 아빠가 위독하시다구 재성이 고모가 전화했는데... 너두 전화받았냐?"

"응! 나는 아침에 전화 받았는데... 아빠 돌아가셨데..." 은경은 놀란 눈으로 은주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승선하라는 방송을 듣고 일어나 말없이 배에 올랐다. 여객선 선실에 들어가 앉아 배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기름 냄새가 가득한 선실은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선실에는 둘 뿐이었다.


은주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슬픈 일이니 울어야 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슬픔이 와닿지 않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물속 깊이 가라앉은 것 같은 답답함에 숨이 막혔다. 말없이 선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배가 출발하기 직전 중년의 두 여자가 부산스럽게 선실로 들어왔다. 다른 섬의 사람들이다.


여자들은 은주와 은경을 빤히 보더니 무언가를 짐작하고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어제 고이도서 사람 죽었다드만 쟈들이 그 집 딸내미들 인가비네!"

여자들의 대화는 은경과 은주를 향하고 있었다. 둘은 기분이 나빴지만, 여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워쩌다 그렸댜? 선착장이서 그렸다드만?"

"배가 선착장이 이만~치 걸쳐 있었댜~ "

한 여자가 배가 석착장에 걸쳐있던 각도를 손으로 묘사하며 말했다.

"배가 왜 그 모냥이 됐댜?"

"술을 많이 먹구 배를 몰었댜~"

"이이~~"

술이라는 말 한마디에 여자는 대충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그 모냥 인디 시동은 걸려 있구 사람은 안 보이드랴."

"얼라~ 그려서! 워쩌케 찾었댜?"

"배가 앞이 이만치 들렸응깨. 물속이 빠졌겄지 허구 물속이 들여다 봤나벼. 긍깨 거기 있었다는 겨!"

"얼라~~"

"시동이 켜져 있응깨 수구레는 계속 돌었을 거 아녀?

수구레에 줄이 감겼는디 또 발이 거가 껴 있었다는 겨! 그려서 뭇 나온겨! 그걸 끄집어냈댜!"

"끄집어냈는디 뭇 살구 죽은겨?"

"끄낼 적부터 의식이 없었댜! 병원이 싣구 갔는디 죽었다드만!"

"어이구~ 아침부터 초상 치르구 있겄네!!"

"쟈들은 지 아베 죽었응깨! 핵교두 뭇 가구 초상 치르러 가는 게지!"

"어이구~ 불쌍혀서 워쩐댜..."


여자들에게 영식의 죽음은 남의 일이었다. 불쌍하다고 말은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그저 남의 일. 그들은 둘의 대화가 은경과 은주를 더 비참하게 만들 거라는 것은 알지 못한다는 듯 주저 없이 떠들었다.


불과 하루도 되지 않은 일을 다른 섬사람이 어쩌면 저리 잘도 아는 것인지. 안타깝지만 놀라운 불구경이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하기 좋은 뉴스거리일 뿐이었다.


대화를 듣는 내내 은주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여자들의 입을 통해 영식이 죽어가던 현장과 냉정하게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은주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은경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이미 고개 숙여 울고 있었다. 은주는 그제야 영식의 죽음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슬픔은 거대한 파도로 밀려와 은주를 삼켜 버렸다.

'아빠가 정말 죽었구나!'

'우리 아빠가 그렇게 죽었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둘은 고이도에 도착할 때까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고개 숙인 채 흐느껴 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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