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이런 날에는 좀 흐려도 돼

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by 온벼리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은주는 영식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참 부지런했다. 은주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염을 마치고 영식을 관에 누인 상태였다. 병풍 뒤를 들여다봤지만, 나무 관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은주네 집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향냄새는 즐겁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지휘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초상집은 이상하게 잘도 굴러갔다. 조문 온 사람보다 장례를 도우러 온 사람들이 더 많았다. 집 안팎은 쉴 새 없이 시끄러웠다. 은주는 손님이 된 것 같은 어색함을 느꼈다.


순자는 울다 지쳐 실신했고 아이들이나 장례를 신경 쓸 정신도 없었다. 영배와 영배의 형제들은 돌아가며 상주 자리를 지켰다. 살아 있을 때는 그리 냉정하더니 마지막 가는 길까지 차갑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날 때까지 영식의 아이들과 순자를 돌본 것도 그들이었다. 그래도 영 남은 아닌 모양이다.


부엌에서 전을 부치며 수군거리는 여자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물이 빠져 죽어서 깨끗하게 죽었다구 혔드만!"

"긍깨! 암말 말어야 혀! 깨끗허게 죽었다구 허니까 여기저기 구멍서 진물이 줄줄 흘러나오잖여!"

"이이~ 그렁깨~ 깨끗허게 죽었어두 깨끗허게 죽었다구 말허믄 안된다!"

"이이~ 그렇댜!"

어릴 적부터 익숙한 그들의 말투지만 은주는 섬사람들의 거칠고 매정한 마음 씀씀이를 접할 때마다 두드러기가 돋는 것 같았다.

은주는 그들의 것을 흡수하지 않고 결이 다르게 자란 것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그들과 같이 표현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은주는 겉은 새까맣고 깡마른 섬 촌년이었지만 속은 여느 섬사람들과 같지 않았다.


이틀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순자의 거친 울음소리가 종일 은주의 귀에서 맴맴 거렸다.




아침 일찍부터 상여가 집 앞마당으로 들어와 있었다. 알록달록 종이꽃으로 치장한 촌스러운 꽃상여다. 열댓 명의 남자들은 어깨에 흰 천을 둘러메고 상여를 들었다 놨다 반복하며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여꾼들은 젊은 남자 몇 명과 나이 든 남자 한둘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영식의 친구들이었다. 어릴 적부터 같이 뛰놀며 자랐고, 같이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 같이 술을 마시고, 노름하고, 남의 집 개를 잡아먹고, 영식을 호구로 여기던 친구들 말이다.


그들은 영식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상여꾼을 자청했다. 마냥 오래 살 줄만 알았던 그들은 친구의 죽음 앞에서 숙연해졌다. 어쩌면 자신에게도 죽음이 바로 뒤에 와닿아 있을 수도 있다는 아찔함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금세 일상으로 돌아가 습관대로 살게 될 것은 뻔했다. 영식도 그랬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그들의 침울한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놈의 새끼가 황망하게 왜 이리 빨리 갔냐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영식은 그런 친구들에게 멋쩍게 웃으며 술 한잔 따라 줬을 것이다. 잘들 살라고... 천천히 더 오래 살다 오라고... 말이다.


영식은 평생이 외로웠고,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도 받지 못하며 살았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 틈에서 인정받으려 노력했고, 호구로 여기는 친구들 틈에서 동등해 보이고 싶었다. 은주는 그런 영식을 바보 같다고 여겼지만, 오늘 영식이 가는 마지막 길을 보니 잘 살았다고 말은 못 해도 헛살지는 않았다고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 아빠가 살아온 방식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닌가 보다고... 사느라 고생 많았다고...




상여가 나갈 준비를 하자 어른들이 멀뚱하니 서 있는 은주에게 곡하는 법을 가르쳤다.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이렇게 허는 겨! 혀 봐! 상여 따라 갈라믄 이렇게 혀야 되는 겨!"

소름 끼치도록 듣기 싫은 소리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슬펐고 참으려 해도 울음소리가 새어 나올 것 같은데 인위적인 곡 소리를 내라니 은주는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자기 생각과는 달리 흘러넘치는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고 꾹 참고 있었다. 참는 것에 익숙했던 은주는 울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해 울지 못했다. 답답해하는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은주는 나지막한 소리로 곡하기 시작했다.


관이 상여에 실리고 앞에 선 소리꾼의 종소리와 상여 노랫소리에 맞춰 상여꾼들은 천천히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여가 움직이자, 순자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어이구~ 새끼들 두고 어딜 갈라구 그려~ 으어~어~ 나더러 어쩌라구 그려~ 뭇 가!! 뭇 간다구!! 가지 말어~ 으어어어~ 가지 말어~"

순자는 슬피 울며 상여에 매달려 잡아끌었다. 건조하고 형식적인 곡을 하던 사람들도 애절한 순자의 울음에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아무도 상여에 매달리는 순자를 제지하지 못하고 그저 기다렸다. 사람들의 곡소리도 점점 더 슬픔에 젖어 무거워져 갔다.


영식도 어느 집에 초상이 나면 상여를 메고 산을 오르곤 했었다. 자신도 언젠가는 꽃상여를 타게 될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생각보다 너무도 빨랐던 것이다. 영식의 나이 겨우 마흔하나였다.


상여는 좁은 골목길을 겨우 빠져나와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생전의 기억들과 작별 인사 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웃말 친어머니와 영복이가 살던 집을 지나 바닷가 자갈길을 한참 걸었다. 산으로 가는 좁고 가파른 초상골 입구를 천천히 올라 장지로 향했다. 빠른 걸음으로는 20분도 안 걸릴 거리를 상여 행렬은 한 시간이 넘도록 움직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좁을 길을 지나느라 상여는 더디 움직였고, 잠깐씩 쉬어가며 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다.


산은 벌써 수풀이 무성했고, 진달래가 붉게 피어 있었다. 4월의 봄 햇볕은 여느 봄날보다 따사로웠다. 바다 위 아침 햇살은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이렇게 슬프고 마음 아픈 날에도 햇살은 은주를 위로하며 여전히 따뜻하고 눈부시게 밝았다. 하지만 오늘 은주는 따사로운 햇살이 유난히 얄미워 속으로 생각했다.

'너는 왜 하필 오늘 같은 날에 속없이 찬란하니?'

'너무하네! 이런 날에는 좀 흐려도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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