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첫 번째 생일잔치
순자는 아이들의 생일을 챙겨 주거나 축하해 준 적이 없었다. 첫째는 가짜 돌상을 대여해 돌사진만 찍어주고, 막내아들의 돌잔치와 돌사진을 찍어 준 것이 전부다. 물론 아들의 돌잔치는 길려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최근 아이들 사이에서 생일잔치가 유행이었다. 잔치는 엄마의 손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엄마들 사이에서도 아이들 잔치를 해주는 일은 고민거리였다. 생일잔치에 다녀온 아이들은 자신도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어 했고, 초대받은 아이는 또 그 친구를 초대해야 하는 것이 예의다 보니 다른 엄마들에게 눈치가 보여 순자도 생일잔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돌잔치조차 해보지 못한 은주는 태어난 지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생일을 축하받게 되었다.
신이 난 은주는 초대장을 만들고 글도 고심하며 꾹꾹 눌러썼다. 어차피 초대장을 받지 않아도 반 친구들 모두 우르르 몰려올 것은 뻔했지만 그래도 몇몇 친구에게는 초대장이라는 것을 줘보고 싶었다.
순자는 일찍부터 잔치하듯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은 소시지를 넣은 미니핫도그를 만들고 갖가지 튀김을 만드느라 부엌은 기름 냄새가 가득했다. 집 앞 승진이네 슈퍼에서 과자와 사이다, 그리고 초코파이도 샀는데 소풍 갈 때보다 더 많은 간식을 봉지 가득 들고 오는 순자 옆에 매달려 은주는 폴짝대며 신나게 따라왔다.
제사를 지낼 때나 쓰던 큼직한 상을 꺼내고, 널따란 접시에 과자를 종류별로 듬뿍 담아내고, 케이크 대신 초코파이를 겹겹이 쌓았다. 평소에 밥상이라 하면 아빠가 좋아하는 반찬들 위주의 밥상이 전부였는데 은주는 자기가 좋아하는 간식들로 상이 가득 차려지는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주인공이 되는 기분은 이런 거구나'
가슴이 벅차올라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고 존중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은주는 처음 알게 되었다.
안방에는 한 상 차려져 있었고 부엌의 요리도 거의 다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순자가 은주보다 생일이 늦은 은경에게도 생일잔치를 해 주겠다고 미리 약속을 해 둔 덕에 은경은 심술을 부리지 않고 과자를 몇 개씩 집어먹으며 잠잠히 구경했다.
약속 시간은 3시였다. 3시가 다가오자 시끄럽게 떠들며 몰려오는 친구들의 소리가 대문 밖에서 반갑게 들려왔다. 친구들은 은주의 이름을 부르고 들어오라고 허락해 주기를 기다렸다.
대부분의 집 대문에 문은 없지만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는 함부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이름을 부르며 기다렸다가 들어오라고 허락을 해주면 들어가는 것이 친구들 사이의 예의였다. 먼저 온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며 마루에 걸터앉아 깔깔대며 떠들고 있는데 마실 나갔던 할머니 길려가 집으로 돌아왔다.
마루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은주의 친구들을 본 길려는 싸리 빗자루를 찾아 손에 들고 친구들을 향해 매질이라도 하려는 듯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눔에 새끼들이... 어디 넘이 집이 와서 떠들구들 지랄이여!"
친구들은 갑작스러운 봉변에 어찌할 바 몰라 도망 다니느라 바빴다. 길녀는 마당으로 도망친 친구들을 오리 떼 몰이라도 하는 듯 빗자루를 휘두르며 쫓아다녔고, 우르르 도망 다니던 친구들은 결국 대문 밖까지 쫓겨나 쭈뼛거리다 모두 가 버렸다. 정 없고 살갑게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매정한 할머니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푸대접도 정도가 있지 초대받아 온 친구들을 어떻게 매질해 쫓아낼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은주는 길려의 돌발행동에 충격을 받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할머니가 애들을 빗자루로 때려서 다 내쫓았어~~ 으아~~ 어떻게 해~~"
은주는 오늘은 때를 써도 다 받아 줄 거라는 믿음으로 마루를 뒹굴며 집이 떠나가라 울어 제쳤다. 왜 왔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가축 몰듯이 내쫓는 길려의 몰상식한 행동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어이구... 엄마가 할머니 헌티 잘 말혀 볼 테니 깨... 그만 울어 이? 얼릉 나가서 친구들 다시 델꾸 와~"
순자는 길려에게 조용히 설명하며 마실 좀 더 다녀오라고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 넣어 주었다. 길려가 순순히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은주는 얼른 가까운 친구들의 집으로 먼저 뛰어갔다. 그날 은주의 생일잔치는 무사히 끝이 났다. 이후로는 한번도 생일잔치나 생일 축하도, 생일 선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