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아궁이 속 지폐
영식은 소주 한 병을 다 마시지기도 전에 취하는 주제에 매일 같이 술이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남동생이 죽은 이후 알코올 중독자처럼 밤마다 술로 마음을 달랬다. 낮에는 뱃일을 하고 밤이 되면 집 앞 승진이네 슈퍼에 딸린 방안에 들어앉아 친구들과 한잔을 하고 2차로 화투 노름을 한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적당히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영식은 노름꾼들 사이에 비비고 앉아 밤이 늦도록 화투를 쳤다. 판돈은 날이 갈수록 커졌고 하루 밤에도 거액의 돈이 오고 가며 희비가 교차했다. 영식은 희보다는 비에 속할 때가 대부분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돈을 벌어야 했던 영식은 열등감이 심했고 항상 뒤처져 있다는 생각에 사소한 승부에도 집착했다. 그러나 부족한 화투 실력에 약한 술 실력까지 더해져 놀음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젯밤에도 영식은 길어지는 화투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올 생각이 없었다.
아침에 은주는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밥 준비에 분주한 순자를 보려고 부뚜막에 걸터앉았다. 아궁이에는 어젯밤에 불을 지핀 흔적이 있었다. 은주는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 집게를 들고 타다 남은 잿더미를 뒤적거리다 푸른색 그림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엄마~ 아궁이에 이게 뭐야? 돈 아냐? 돈이 왜 아궁이에 들어있지? 다 탔어!! 이것 봐?"
은주는 타 다남은 만 원짜리 지폐 조각을 들고 가 순자에게 내밀었다. 아궁이에서 돈이 나왔는데 놀라지도 않는 순자를 보고 은주는 이상하다 생각했다. 순자는 아무 말 없이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그랬어? 왜 돈을 태웠데?"
엄마가 그랬냐는 말에 순자는 발끈하며 삼키려던 화를 거칠게 토해 냈다.
"엄마가 미쳤간? 뭐 헌다구 돈을 태운다니? 써글 눔에 느의 아베가 그렸지... 그런 짓을 헐만한 인간이 느의 아베 말구 또 누가 있간디? 으이구... 미치구 환장헌다... 어이구... 느의 아베 땜에 내가... 뭇 살겄다!!"
순자는 울화가 치미는 듯 울먹이며 말을 했다.
"왜? 왜? 왜 돈을 태웠데?"
은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해할 수 없는 영식의 행동을 빨리 설명이라도 해보라는 듯 순자를 재촉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허이구... 뱃일헌다구 바다서 멀미 허는디두 죽을 둥 살 둥 그 고생혀서 벌어온 돈을... 씨벌 꺼~ 그 눔에~ 모름을 헌다구 다 날리구~ 새벽에 겨 들어와 가꾸는... 돈 내노라구 지랄 지랄 혔쌌구... 기어이 찾아 내 가꾸는... 승질난다구~ 멀쩡헌 돈을 아궁이이다 저 지랄 허구 쳐 박었잖니!!"
"어이구~ 내가 그 눔에 승질머리 때미 워찌 산다니?? 뭇 살겄다 내가... 어이구..."
순자는 목이 메어 말을 더 이어 가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혼자서 한참을 울었다. 영식은 간밤에 들고나간 돈을 다 털리고 집으로 들어와 돈을 찾다가 순자와 싸움이 벌어졌고 홧김에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돈뭉치를 태워 버렸던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아궁이를 뒤적거리던 영식은 어젯밤에 타다 남은 돈을 아궁에서 끄집어냈다. 만 원짜리 지폐는 다 타지 않고 절반 넘게 타다 남은 것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타고 남은 조각에 불과했다. 영식은 간밤에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후회하며 아궁이를 뒤지고 있는 모습을 순자가 보기라도 할까 봐 얼른 끄집어낸 지폐 조각들을 챙겨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은주가 발견한 지폐 조각은 영식이 남기고 간 자투리 조각이었다. 안방 구석에 앉아 바닥에 지폐를 늘어놓고 있는 영식에게 은주가 다가가 물었다.
"아빠 뭐해? 그거 다 탔는데 어쩌려고?"
간밤에 일을 알고 있었던 은주는 왜 그랬냐고 차마 물을 수 없었다. 대신에 그걸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이거 불이 탄 거랑 찢어진 것두 은행이 가져가믄 새 걸루 바꿔준댜."
은주는 타 다남은 지폐도 은행에 가져가면 바꿀 수 있다는 말을 하며 횡재라도 한 듯이 기뻐하는 영식의 태도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영식은 은행으로 가져가 바꿔야겠다며 지폐들의 조심스럽게 비닐봉지에 넣어 돌돌 말아 잠바 안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이후로 아궁이에서 돈이 타는 일은 다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술과 노름은 계속됐고, 벌어온 돈을 탕진하는 남편의 꼴을 보고 있자니 순자는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여지없이 싸움이 벌어졌고 밤새 격렬했거나 치열했던 흔적들은 아침에도 안방 곳곳에 남아 있었다. 순자는 너희 아빠가 밤새 무슨 짓을 했는지 저희들도 보라고 하소연을 하는 듯이 영식이 벌여놓은 난장판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엄마! 밤에 아빠랑 또 싸웠어?"
은주의 물음에 순자는 그늘지고 퉁퉁 부은 얼굴로 깊은 한숨만 쉬었고, 민망한 영식은 아무 말 없이 본인이 저지른 흔적들을 치웠다. 싸움은 대부분 영식의 일방적인 화풀이로 마무리가 되곤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사람을 때리지 않고 물건을 부수고 던지는 방법으로 화풀이를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