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동 이모집

소설 - 바다 별

by 온벼리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공릉동 이모집

둘도 없는 앙숙 같은 사이였지만 은경과 은주도 마음이 하나가 되었던 적이 한 번은 있었다.


은경은 국민학교 6학년 가을에 서울에 사는 막내 이모집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순자는 서울에서 공부를 하면 더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도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그것을 변명이었다.

순자는 은경의 성적에 크게 관심은 없었고 아이가 넷이니 돌보는 것이 벅차 여건이 될 때마다 아이중 하나를 친척집에 한동안 맡겼었다.


은주도 일곱 살 때 서울 상계동 큰외삼촌 집에 한 달간 맡겨진 적이 있었다. 외삼촌네 가족은 은주를 예뻐했지만 은주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 지내야 했다. 외삼촌 부부는 트럭 과일장사를 했다. 새벽에 나가 저녁에 들어왔고 팍팍한 살림에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사촌오빠와 언니는 학원과 독서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놀거리가 전혀 없는 빈집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 은주의 시간은 멈춰 버린 듯 더디게 흘러갔다. 태어나서 가장 지루한 시간이었다. 혼자 상황극을 만들어 일인 다역을 하며 놀았지만 그 마저도 지겨웠다.

아파트 텃밭에 심긴 봉선화를 따러갔다가 한 무리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야 봉선화 도둑. 이 도둑아! 이 꽃 우리가 키운 거거든? 네가 뭔데 우리 꽃을 따가는 거야?"

똘망진 여자아이 하나가 아이들을 대동하고 은주 앞을 가로막았다. 머뭇거리다가는 봉변을 당할 것 같아 잽싸게 뛰어 도망쳤다.

집에 아무도 없는 시간이면 발코니에 나가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제때 씻기는 하는지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으니 꼬질꼬질한 얼굴에 눈물자국이 가득한 것을 사촌오빠에게 들키고 말았다.

"엄마 보고 싶니? 집에 가고 싶어?"

은주의 마음을 알아준 오빠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참아 왔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서럽게 한참을 꺼이꺼이 울자 오빠는 어쩔 줄 몰라했다. 순자는 몇 달 정도 더 서울에 맡겨 두려고 했지만 그날 밤 서울에서 온 전화를 받고 은주가 운다는 것을 알았다. 은주는 잘 울지 않고 감정표현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아이인데 서글프게 울더라는 소식을 들은 순자는 어쩔 수 없이 은주를 데리러 올라와야 했다.


순자는 막내아들 민철이만 빼고 모두 한두 번쯤은 친척 집에 맡겼었다. 할머니와 고이도에 은경만 남겨두고 한 달 동안 원정 뱃일을 다녀오는 동안 은경은 홍역을 앓으며 헛것을 보기도 했고, 영식이 죽고 나서 대천으로 나와 식당을 할 때 5학년이었던 은진이를 고이도에 두고 외할머니에게 맡겼었다. 그때 은진이는 순자에 대한 원망이 컸고 이후로 순자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 했다.


은경의 서울로의 전학은 결코 은경의 공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은주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막내 이모네 집은 상계동 큰 외삼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릉동에 빌라 지하층이다. 이모부는 원양어선에 선원인데 1년에 한두 번 집에 다녀 갔다. 심심해하는 네 살 된 아들에게 은경이 도움이 되겠다 싶었던 이모는 은경을 데리고 있기로 했다.


겨울 방학 동안만 은주도 은경이 있는 이모집에 있기로 했다. 은경은 예전에 없이 반가운 얼굴로 은주를 맞으며 살갑게 굴었다. 은경은 은주에게 이모의 실체와 조카 현석이의 만행을 알려주었다. 이모는 우울증과 히스테리가 심했다. 스물세 살에 남편도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려니 외로움에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다. 네 살배기 현석이 에게 소리를 지르며 손지검을 했고 은경에게도 소리를 질렀다. 현석이는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 아주 활동적이고 정신없는 아이였다.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해 날마다 이모에게 맞았다. 손지검 하는 것을 처음 본 은주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현석이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초고음의 괴성을 목이 찢어져라 질러댔다. 현석이가 소리 지를 때 옆에라도 있으면 귀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집 밖으로 나오면 "누나~ 누나~" 외치며 따라다니다가도 집 안으로 들어오면 자기 영역이라는 듯 돌변했다.

놀아달라고 칭얼대는데 텔레비전에 정신이 빠진 은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현석은 거친 콧바람을 내쉬며 은주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등에 힘차게 꽂았다. 등이 뻐근하고 아팠다. 뒤돌아 보니 깊숙이 박힌 바늘 위로 피가 물들고 있었다.

"우와!! 뭐야?? 이거? 바늘이야?"

통증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네 살 아이가 사람의 등에 바늘을 꽂았다는 사실이었다. 대범하게 깊숙이 찔러 넣는 모양새가 처음이 아닌 듯했다. 현석이는 은경의 등에도 바늘을 꽂았었다고 했다. 은주는 현석이가 악마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은경은 밖에 나가서 논다고 현석이를 데리고 나오면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 도망 다니며 숨었다. 현석이는 누나를 부르며 찾아다니느라 애가 탔지만 은경은 현석이 눈을 피해 계속 숨바꼭질을 했다. 은경은 현석이가 얄미울 때마다 그렇게 약을 올렸다. 은주는 그런 은경이 안쓰러웠다.


현석이는 악마 새끼였고 이모는 마녀였다. 엄마는 언니를 왜 이런 곳에 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은주는 은경의 편이 되어 주기로 했다. 그리고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모의 히스테리에 화가 난 은경은 종이에 이모의 나체를 그리고 부위별로 자세하고 유치하게 욕을 써넣었다. 은경은 자신의 복수에 동참하는 은주가 있어 신이 났다. 낙서를 이모가 봤다가는 난리가 난다고 잘게 찢어 밖으로 나가 뿌리자고 했다. 주머니에 찢어진 종이를 넣고 어둑해진 빌라 주차장 공터로 나왔다.

은주는 은경이 시키는 대로 종이를 꽃가루 뿌리듯이 뿌리며 뱅글뱅글 춤을 추었다. 둘이라서 위로가 됐고 종이를 뿌릴 때마다 통쾌해서 깔깔대며 웃었다. 은경과 은주는 오늘의 복수에 만족하며 순대를 사 먹으러 빌라 밖으로 나갔다. 후문으로 나가 오른쪽 골목으로 돌아가면 멀지 않은 곳에 주황색 포장마차가 있었다. 은경은 익숙한 듯 포장마차로 들어가 아저씨에게 200원을 내밀었다.

"아저씨 순대 두 개만 잘라 주세요."

"소금 뿌려?"

"네!!"

아저씨는 순대를 어른 손바닥 길이만큼 싹둑 잘라 가운데 길게 캅 집을 내고 그 사이에 고춧가루가 섞인 소금을 솔솔 뿌려 은경에게 건넸다. 은경은 먹는 방법도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손으로 들고 뜯어먹으며 돼. 먹어봐 맛있어."

은주는 순대를 처음 먹어봤다. 순대는 따뜻했고 김밥을 통째로 들고 먹는 것처럼 뜯어먹는 재미도 있었다. 밤에 출출할 때면 골목에 나와 쪼그리고 앉아 순대를 뜯으며 이모와 현석이도 뜯었다. 막 썰어진 순대는 따끈하고 말랑했다. 순대도 따뜻했고 은주에게 내민 은경의 손도 따뜻했다. 온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고 은주는 순대를 좋아하게 되었다.


은주가 개학이 멀지 않아 고이도로 돌아가기 전날 밤 은경은 서글프게 울었고 그런 은경은 두고 가야 하는 은주의 마음은 먹먹했다. 한 핏줄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고 순자가 야속하고 미웠지만 은주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은경은 다음 해 중학교 1학년 봄이 되자 다시 대천으로 전학을 왔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순자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섬에는 중학교가 없어 육지로 나가 대천 자취방에서 친구와 함께 지내며 학교를 다녔다.


몇 달 만에 은경을 만난 은주는 반가워했지만 서울 공릉동에서 끈끈한 애정을 과시하던 은경이 아니었다. 대천으로 내려옴과 동시에 예전의 은경으로 돌아갔고, 사춘기를 겪으면서 이전보다 더 유난스럽고 강력하게 은주에게 짜증을 부렸다.

"야. 주댕. 니가 언제부터 나하고 친했다고 그러냐? 야 됐어! 나는 친구들 많거든."

은경은 아쉬울 것이 없다는 듯이 매몰차게 굴었다. 은경에게 은주는 여전히 앙숙이었다.

공릉동에서의 은경은 꿈과 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은주는 은경을 안쓰럽게 여겼던 지난 시간을 후회했다. 그리고 다시 언니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