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바다 별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은주의 국민학교 선생 중에는 그림을 가르쳐 준 선생도 있었고, 노래를 가르쳐 준 선생도 있었다. 학원 따위가 있을 리 없는 작은 섬에서 돈도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쳐 준다는 것은 아주 감사하고 특별한 일이었지만 은주는 그림에도 노래에도 흥미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욕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옳다. 잘해도 칭찬 한번 받지 못하고 자란 탓에 무언가를 열심히 하거나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지를 않았다. 선생의 권유로 독창 대회도 나갔지만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했고 수학경시대회에 나가서도 아깝게 상장을 타지 못했다. 은주는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숙제를 할 때도 전과의 답을 그대로 베껴 쓰기 바빴고 일기를 쓰는 것도 귀찮아 매일 똑같은 내용을 성의 없이 지렁이 꼬부랑 글씨로 후다닥 해치워 버렸다. 그렇다고 노느라 바빠서 공부를 등한시한 것도 아니다. 은주는 주로 집에서 놀았기 때문에 하루가 길었고 시간도 남아돌았다. 성적표에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자주 쓰였다. 왜 노력해야 하는지 몰랐고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다.
학예발표회에서 은주는 독창 대회에 나갔던 곡 '춤추는 갈매기'를 부르기로 했다. 자그마한 교실 두 개를 터서 행사가 있을 때면 강당으로 쓰곤 했다. 은주는 6학년이었고 학생회 부회장이었다. 회장은 일등을 하던 친구 헌이다. 고이 국민학교는 학년당 한 학급에 전교생은 100명도 안됐고 스물한 명이 1학년을 같이 입학해 졸업반인 지금 같은 반 친구들은 열한 명이 전부다. 은주는 아이들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회장이든 부회장이든 어떤 것도 반갑지 않았지만 시키니까 그냥 하기로 했다. 은주는 무대공포증이 있었다. 국어시간에 일어나서 책이라도 읽으라 하면 눈앞이 하얘지면서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려 글씨가 보이지 않았고 더듬거리며 책을 읽었다. 앞에 나가 발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상황이 되면 공황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노래를 부를 때는 다행히 부담이 덜했고 공황상태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자신 있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독창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은주가 부회장은 한 것은 지능이 반 아이들보다 조금 높았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학생회장의 아빠는 학부형 회장이었고 부회장의 아빠는 학부형 부회장이었다. 영식과 헌이의 아빠는 고이 국민학교를 같이 졸업한 동갑내기 친구였고 어릴 적부터 라이벌이었다. 영식은 그런 친구가 회장 자리에 떡하니 앉아 있으니 학교에 올 때마다 자존심이 상했다. 은주의 지능지수는 헌이보다 높았지만 은주는 복습은커녕 숙제마저 대충 했고, 헌이는 집에서 엄마의 도움을 받으며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하필이면 아빠의 라이벌의 아들인 헌이에게 매번 성적으로 졌던 것이다.
은주는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며 특별히 마련된 임원 자리에 앉아 있는 영식을 바라보았다. 딸이 독창을 부르는 순간에도 시무룩하게 앉아있는 영식의 모습을 은주는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슬퍼 보였다. 영식은 은주에게 자신의 배우지 못하고 힘들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해 자주 이야기는 했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나 친구들과의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은주가 영식의 그런 모습이 자존심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영식을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영식은 은주가 기특하기는 했지만 여자 아이라 가르쳐서 뭐하나 하는 마음이 있었고 은주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