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바다 별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은경은 중학교 1학년이었고 육지에서 친구 현희와 자취를 할 때 일이다. 주말에 혼자 배를 타고 병원에 나온 은주는 은경의 자취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기로 했다. 자취방은 아주 조그마한 방 하나에 연탄보일러가 있는 부엌이 전부였다. 주인집 마당 한편에 작은 방이었는데 부엌을 통해 들어가 신발을 벗고 부뚜막에 올라 미닫이문을 열면 들어갈 수 있는 방이다.
은경과 현희는 자기 전에 연탄을 새로 갈아야 한다며 새까만 새 연탄을 꺼내와 다 꺼져가는 연탄 위에 새 연탄을 얹고 뚜껑을 닫았다. 셋은 텔레비전을 보다가 밤늦게 잠이 들었는데 새벽부터 은주는 머리가 아파 끙끙 앓기 시작했다. 은주는 부엌으로 통하는 문 바로 옆에서 자고 있었다. 자꾸 앓는 소리에 시끄러워 은경이 짜증을 내며 일어나려는데 순간 어지럽고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은경과 현희는 머리가 깨지도록 아프고 어지러웠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부엌으로 나가보니 매캐한 연탄가스가 가득했다. 연탄에 불이 완전하게 붙지 않은 상태가 유지되면서 불완전 연소되어 일산화탄소가 부엌에 가득 찼고 방 미닫이문의 헐거운 틈으로 흘러 들어와 셋은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것이다. 은주는 몸이 워낙 약하고 예민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몸의 이상을 감지하고 본능적으로 끙끙거리며 앓고 있었던 것인데 은주가 앓지 않았다면 은경과 현희도 계속 자다가 더 큰일이 났을 상황이었다.
은경과 현희는 밖으로 나와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은주는 마당으로 기어 나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은주의 상태는 조금 심각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동치미 국물이 연탄가스 중독에 좋다며 장독대 항아리에서 동치미 국물을 한 대접 떠서 은주에게 먹였다. 은주는 짭짤한 동치미 국물을 들이켜다 또 토했다.
주인집 아주머니의 다급한 연락에 자다 깬 순자와 영식은 급히 배롤 몰고 나와 어항에서 택시를 타고 대천으로 왔다. 새벽에 섬에서 순자와 영식이 자취방까지 어찌나 빨리 왔는지 은주는 금세 달려온 순자와 영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식은 은주를 업고 가까운 응급실로 뛰었다. 의사는 다행히 빨리 발견돼서 건강에 크게 문제는 없을 테니 걱정 말고 며칠만 입원해 있으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은주와 은경은 같이 쓸 수 있는 병실이 없어 각각 다른 병실로 배정받아 며칠 입원을 하게 되었다. 순자는 은주와 은경의 병실을 오가고 있는데 영식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같이 왔으면서 영식은 왜 보이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영식이 술에 취해 병실 밖에서 울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빠는 어디 갔어?"
"으이그... 느의 아베는 또 술 먹구 밖이서 울고 있다더라..."
"왜? 우리가 아프다고 아빠가 울어?"
"물러... 모르는 사람 붙잡구 신세 한탄 허구 있다더라... 어이구..."
영식은 연탄가스로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은 허다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은경과 은주의 상황을 전해 듣고 위험할 만큼 최고 속도로 배를 몰아 어항에 도착했고 택시 기사를 닦달해가며 총알처럼 대천으로 날아왔던 것이다. 은경의 자취방까지 오는 동안 자신보다 먼저 죽은 가족들이 스쳐가며 또다시 불행한 일이 생길까 불안한 마음에 또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은주를 업고 뛰면서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은주와 은경이 괜찮을 거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영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자 묻어 두었던 아픈 감정들이 주체할 수 없이 솟아올랐고 영식은 또 술이 필요했다.
먼저 보낸 가족이 영복이와 영일이, 웃말 친어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태어나 일주일 만에 죽은 첫째 아들까지 무려 여섯 명이었다. 그리고 오늘 두 딸까지 먼저 보낼 뻔했던 영식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가혹한 시련이 기가 막혀서 술을 마셔도 마음이 달래지지 않았고 병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 주저앉아 혼자 중얼거리며 눈물을 닦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러 나온 남자는 영식을 보고 안쓰러웠는지 곁으로와 앉았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는 많은 것을 겪어 인생의 쓴맛을 잘 아는 듯 영식을 따뜻하게 위로하며 사는 게 다 힘들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영식은 낯선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그 남자는 영식의 곁을 지키며 한참 동안 넋두리를 들어주었고 위로도 해 주었다.
영식은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그렇게 마음의 보따리를 앞에 풀어 내놓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과 마주하면서 조금씩 담담해질 수 있었고 소수의 사람에게나마 위로받으며 상처는 아주 천천히 아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