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영일이
영식은 두 명의 동생을 책임지고 있었다. 둘 다 공부를 잘했지만 여동생은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일찍 결혼을 했고, 남동생 영일은 대학교에 합격했다. 영식은 자신의 못다 한 학업의 한을 영일을 통해 풀고 싶었고 영일에 대한 기대가 컸다. 영일은 학원 한번 다니지 못했지만 열심히 공부해 연세대학교 수의학과에 합격을 했다. 영식은 동생이 자랑스러웠고 합격 소식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뻐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늘어놓았다. 서울대에 가려고 했지만 사립대학교인 연세대에 붙었으니 금전적으로 큰 부담이 될까 봐 영일은 걱정을 했다. 영식은 기둥뿌리를 뽑아 서라도 대학에 보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고 영일은 그런 형이 있어 든든하고 고마웠다. 영일은 영식이 마련해준 돈으로 대학 등록을 마치고 학교 근처에 자취방도 구했다.
영일은 설을 보내고 가려고 고이도로 내려왔다. 고이도에서는 설맞이 콩콜 대회가 있었다. 앞장벌에 자갈이 깔린 널따란 멸치 건조장 위에 천막이 크게 쳐졌고 무대를 만들어 플라스틱 의자로 관객석을 채웠다. 무대에는 드럼과 기타와 키보드가 설치되었다.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고이도는 노랫소리로 시끄러웠다. 콩콜이 끝나고 기분이 들뜬 영일은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영일은 소주를 처음 마셔 봤고 금세 만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참 친구들과 떠들다 비틀거리며 집으로 가는 길에 구토를 하기도 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친구들과 연신 깔깔대며 걷다가 영일은 좁은 길에서 넘어졌는데 길을 따라 쳐 놓은 녹슨 철조망 옆으로 쓰러졌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철조망에 코를 찔렸고 아픈 줄도 모르고 일어났다.
"야... 영일이 새끼 비틀거리는 거 좀 봐봐. 혼자 자빠지구 지랄이여~ 누가 밀었남? 크크크크..."
"어?? 크크크크... 너 이 새끼 코에서 피난다?"
"에? 피나냐? 에이~ 씨! 닦으믄 되지~"
영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코에서 나는 피를 옷으로 스윽 닦았다.
아침 늦게까지 일어나지 못하는 영일을 깨우러 순자는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자고 있는 영일의 코에서는 피가 흘러 있었다. 속이 좋지 않아 보이는 영일에게 순자는 죽을 끓여 줬다. 영일은 설 다음날 서울로 올라갔고 서울에서 사촌 종식이 형을 만나기로 했다. 종식이 형은 영일의 아버지가 들인 양이들인 큰형의 첫째 아들이지만 영일보다 나이가 많았다. 영일에게는 조카뻘이었지만 영일은 종식을 형이라고 불렀다. 종식이 형은 서울에서 영일이 대학을 알아보고 합격해서 방을 알아보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번 설 때는 바빠서 내려오지 못했지만 학교에 가기 전에 만나서 밥을 같이 먹기로 했다.
신촌에서 만나 밥을 먹고 당구를 가르쳐 준다는 종식을 따라 근처 당구장으로 갔다. 당구공이 굴러가는 방향이 재미있었던 영일은 테이블에 바짝 붙어 허리를 숙이고 공과 눈높이를 맞춰 공이 굴러가는 것을 지켜봤다.
영일의 관심에 어깨가 으쓱해진 종식은 쓰리쿠션을 보여 주겠다며 공을 세게 쳤고 너무 세게 친 공은 당구 테이블 밖으로 튀어 올라 영일의 코에 맞았다.
뒤로 넘어진 영일의 코에서 코피가 흘렀고 시퍼렇게 멍이 들며 코가 부어올랐다. 영일이 맞은 자리는 하필이면 엊그제 고이도에서 철조망에 찔려 다친 자리였다. 영일의 얼굴 근육이 경직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얼굴 전체가 마비되고 온몸이 뒤틀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영일은 근육의 경련에 고통스러워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굴었다.
종식은 급하게 차를 태워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영일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가려고 했고 종식은 영일을 제지하면서 힘들게 응급실까지 갔다.
소식을 들은 영식은 그날 저녁에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서 아직도 경련을 하고 있는 영일을 보고 영식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담당 의사가 영식을 따로 불렀다. 영일의 코에 녹슨 철 조각이 박혀 있었고 파상풍이 이미 온몸에 퍼져 몸의 경직이 시작됐으니 며칠 살지 못할 것이라고 손쓸 방법이 없으니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의사의 말을 들은 영식은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고 머리와 귀에서는 심장 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응급실로 돌아온 영식은 영일의 손을 꼭 쥐었다. 영일은 정신이 조금 돌아왔는지 영식을 보며 울었다.
"형! 나 죽을 것 같어."
"아녀... 안 죽어! 죽으믄 안댜."
"형! 살려줘! 형! 나 즘 살려줘! 나 즘 살려 달라구!"
영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경련을 시작했고 경련은 더욱 심해져서 영일의 목과 등은 활처럼 뒤로 휘어졌다. 눈은 한쪽으로 돌아가고 입은 비틀어져 거품을 물었다.
그런 영일을 모습을 본 영식은 울부짖으며 의사를 부르다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영식은 순자의 배 속에 아기 때문인지 아이들 때문인지 따라오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말을 했다. 순자는 서울로 가지 못하고 고이도에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려는 굿을 해야 한다면서 급하게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 무당은 앞마당에서 펄펄 뛰었고 액운이 꼈다며 집안 구석구석을 방울을 흔들면 누비고 다녔다.
이틀 뒤에 영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일이 죽었다고. 영일은 경련으로 호흡마저 어려워졌고 기도 확보를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죽고 말았다. 영식은 영일을 화장해서 연세대 교정에 뿌려주고 고이도로 내려왔다.
영식은 너무도 허망한 동생의 죽음에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좌절감을 느꼈고 이후로 매일 술로 마음을 달래며 겨우 숨만 쉬며 살았다. 영식의 시간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엉망진창으로 흘러갔다. 영식은 영일을 가슴에 묻은 뒤 더욱 깊은 우물을 파고 들어가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살아갔다.
영일의 일이 생겼을 때 은주는 두 살이었고 순자의 뱃속에는 은진이 있었다. 순자는 은진이 뱃속에 있는 내내 영식의 방황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은진은 태어나서부터 매일같이 이유 없이 울었고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그 울음은 계속됐다.
영복이
은주의 반 친구들은 영복이가 은주의 삼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짓궂게 굴었다.
"야! 영복이가 니네 삼촌이라며?"
"니네 삼촌 바보라며!"
누군가를 놀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는 악함은 사람의 본성일까? 아이들은 상대가 받을 상처는 안중에도 없는지 자기 입에 즐거운 말이라면 서슴없이 뱉어냈다.
"그래서 나더러 뭐 어쩌라는 거야... 못된 것들..."
은주는 자기들보다 한참 나이도 많은 영복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기분 나빴고 놀림거리인 영복이 자신의 삼촌이라는 것도 싫었다.
남자아이들은 영복과 마주치면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놀이라도 하는 듯 엉덩이를 걷어차고, 막대로 때리고, 돌을 집어던지며 놀렸다. 여자 아이들은 보기만 해도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은주는 도망치지는 않았지만 영복에게 잘못 걸리면 머리채를 잡힐 수도 있었기 때문에 멀찍이 피해서 다녔다.
아이들은 모여서 놀다가 영복이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가 돌을 던져댔다. 영복은 도망치다가 궁지에 몰리면 아이들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거나 때리고 밀치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영복은 아예 처음부터 아이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영복은 아이들에게 조금 위험한 재밌거리로 여겨졌고 영복이 나타나면 "영복이가 나타났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도망가 숨었다가 다시 뒤따라가 공격하기를 반복하면서 즐거워했다.
한 놈이 붙잡혀 맞기라도 하면 울며 집으로 달려갔지만 나머지 놈들은 여전히 스릴을 즐기며 깔깔댔다. 은주는 그런 아이들이 정말 꼴 보기 싫었고 영복이 그런 취급을 받는 것도 속상했다.
영복은 웃말 할머니의 셋째 아들이고 영식의 막내 남동생이다. 영복은 웃말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아기일 때 큰누나가 업고 다니다 떨어뜨려 머리를 다쳤다. 사지가 멀쩡해 보였던 영복은 특별한 치료 없이 방치되어 자랐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동네 바보가 되었다. 영복은 건강했고 엄청난 식탐을 자랑했다. 체력도 좋고 체격도 남달라 영복이 힘을 쓰면 누구든 힘으로는 제압하기 쉽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아무 집 부엌에 불쑥 들어가 밥을 훔쳐 먹었는데 남은 밥이나 찬장에 넣어둔 음식을 꺼내 먹다가 매 맞고 도망쳐 나오는 일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매라고 해봐야 빗자루로 얻어맞거나 등짝을 몇 대 맞는 정도였지만 영복은 말도 못 하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아이같이 앵앵 울면서 도망을 쳤다. 덩치는 컸지만 지능은 아기 수준이었고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했다.
돌아다니다 대소변이 마려우면 길 한복판에서도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봤다.
"아이구~ 드러~ 똥 밟았네! 아니! 언 눔으 새끼가 길 한복판이다 똥을 싸 놓구 지랄이랴? 어이구~ 냄새야."
"누구긴 누구겄어... 길이다 똥 쌀 눔이 영복이 말구 누가 있겄남?"
"에이 씨! 써글 눔에 새끼!! 드럽게 많이두 처먹었네... 어이구~ 냄새야~"
친구 집으로 가던 중 은주는 앞에 먼저 가던 아저씨들의 상황을 알아채고 영복이라는 말 한마디에 괜스레 미안해져 얼굴이 달아올랐다. 은주는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 멀찍이 떨어져 후다닥 뛰어 앞질러 가 버렸다.
영복은 남에 집 부엌에서 먹을 것을 찾지 못하면 마당에 널어놓은 덜 마른 생선도 집어 먹었다. 은주는 영복이 덜 마른 복어를 많이 집어먹었는데 죽지도 않더라고 수근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영복이 죽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영복과 둘이 살던 웃말 할머니는 작은 체구에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할 줄 모르는 순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영복이 서른 즈음되었을 때 웃말 할머니는 연탄을 갈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그 자리에서 쓰러 졌는데 발견됐을 때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혼자가 된 영복을 돌봐줄 사람이 없자 순자는 자주 들여다봐야 했다. 아이넷을 키우고 뱃일도 바쁜데 통제도 안 되는 영복까지 챙기는 일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둬! 뭐 헐라구 챙긴다구 그 고생을 헌댜? 그냥 죽게 내버려 둬두 아무두 뭐라구 안혀!"
"어이구... 그려두 불쌍헌디 어찌 모른 척 헌댜!"
순자는 영복을 집으로 끌고 와 밥도 먹이고 옷도 따듯한 걸로 입혔지만 영복은 입혀준 옷도 죄다 벗어 버리고 맨발로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영복이 말썽을 부리면 화살이 순자에게 날아오기도 했다.
겨울이 되자 영복의 집에 연탄을 매일 봐줄 수가 없었던 순자는 냉골인 방바닥에 짚을 깔아 주었다. 그러나 영복은 독감에 걸려 밖에 나오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고 겨울이 한창인 추웠던 어느 날 영복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추운 겨울에도 외투는커녕 찢어진 바지 차림이거나 옷을 벗고 돌아다니니 몸이 멀쩡 할 리가 없었다. 웃말 할머니가 곁에 있을 때는 그래도 견디고 살 수 있었지만 옆에서 희생하며 챙겨줄 사람이 없었던 영복의 죽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영복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잘된겨... 오히려 잘 된겨... 그동안 고생혔응깨... 에휴... 할 만큼 한겨."
사람들은 사람의 죽음 앞에서 위로한답시고 잘된 일이라고 함부로 지껄였다.
영복이 죽은 날 영식은 영복의 시신을 멍석으로 둘둘 말아 지게에 짊어지고 순자와 함께 쓸쓸하게 산을 올랐다. 영식은 성묘 때 함께 산에 오른 은주와 민철에게 영복의 묘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빠... 영복이 삼촌 묘는 어디 있어? 왜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 묘가 없어?"
"이... 저기 멀찌감치 묻었다. 알 거 읎어... 거기는 성묘 안혀두 댜!"
영복은 그렇게 평생 짐승 취급받으며 살다가 죽어서도 쓸쓸하고 초라하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혔고 사람들은 그를 기억 속에서 조차 빨리 지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