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바다 별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영식은 낮술을 하고 들어 올 때면 아이들을 앞에 앉혀 두고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니들 내가... 왜 키가 안 컸는 줄 알어? 어렸을 때부텀 무거운 물지게를 지구 다녀서 그려... 한참 클 나인디 그 무거운걸 맨날 지구 날랐응깨 키가 컸겄어?"
"느의 할아버지가 아퍼 가꾸... 아빠가 어릴 적부텀 학교두 뭇 가구 물동이 지구 날러서 돈을 벌었잖냐."
"니들은 호강 허구 사는겨!"
말은 길어지고 했던 말을 반복하기 시작하면 몸이 비틀리고 좀이 쑤셔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힘들어졌다. 동생들은 엄마품으로 도망간 지 오래고 은경은 화장실이 급하다는 핑계로 일어나서는 마당 한편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살금살금 대문 쪽으로 빠져나가 영식이 알아채지 못한 것에 쾌재를 부르며 후다닥 뛰어 나갔다. 은주는 뛰어 나가는 은경을 보았지만 영식에게 이르지 않고 그냥 모른 척했다. 영식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영식은 같은 이야기를 새로운 이야기인 양 매번 진지하게 했고 은주는 말없이 듣기만 했다. 다리가 저려오고 허리가 뻐근해 몸을 움질거리지만 지루한 티를 냈다가는 영식의 마음이 상할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마도 영식은 죽을 때까지 떠들어도 가슴에 맺힌 한이 다 풀리지는 않을 듯싶었다.
부모인 영식과 순자가 감정표현에 서툴고 무뚝뚝했던 탓에 은주도 모든 감정표현에 서툴렀고 어른인 영식을 안아주거나 위로의 말을 해 줄 수 있을 거라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고, 은주는 영식의 말을 들어주는 것으로 위로하고 싶었다. 은주는 오래 앉아 있는 것은 힘들지만 영식이 마음속에 감정들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이 싫지 않았고, 그런 말들은 영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때론 못난 행동들을 할 때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어이구~ 작작 좀 혀! 애 앉혀놓구 언제꺼정 떠드는겨? 이제 그만 혀!"
보다 못한 순자가 은주를 일으켜 세우며 영식을 타박하자 풀어낼 만큼 풀어냈으니 나름 속이 후련해진 영식은 순자의 타박에 별 말없이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영식은 때론 밤에도 아이들을 깨워 앉혀두고 떠들 때도 있었다. 자다 일어난 정신에 무슨 말이 들렸을 리 없었지만 영식은 술에 취해 있었고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먼저였던 것이다. 은주는 밤에 깨울 때는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당신의 슬픔을 들어줄 사람이 우리밖에 없는가 싶어 영식이 참 안타깝고 불쌍해 보였다.
영식이 어린 시절 섬에서는 빗물을 받아 생활수로 쓰고 우물물을 길어다 식수로 사용했다. 영식은 물을 길어다 주고 수고비를 받아 푼돈을 벌었다. 물을 길어 나르는 일은 어른들에게도 꽤 어려운 일이었다. 물지게의 양동이 양쪽에 물을 가득 채운 무게는 이제 국민학교를 졸업한 자그마한 체구의 영식의 몸무게와 비슷했으니 너무도 버거운 무게였다. 웃말 마을 언덕에서부터 물지게를 지고 좁은 길을 비틀거리며 조심스레 내려오다 보면 얼마 가지도 못하고 물동이를 내려놓고 쉬었다 가야 했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지겹도록 같은 길을 오가야 했다. 행여 빨리 가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물이 출렁거리며 옆으로 흘러넘쳐 양이 줄어들었다. 팔다리에 힘을 주며 조심스럽게 몇 번만 오가도 온몸은 쑤시고 어깨가 무너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어린 나이에 섬에서는 딱히 할 수 있는 돈벌이가 없었던 영식은 종일 지게를 지고 오가며 물을 날라 돈을 벌었다.
영식이 조금 더 크면서 뱃일을 도와주는 일꾼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뱃일은 험하고 힘든 일이라 물지게를 지는 것보다 제법 벌이가 되었고 생활비도 마련하고 여동생과 남동생의 고등학교도 졸업시킬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은행에 대출을 받아 작은 배를 구입했고 그 배를 타고 몇 년 동안 부지런히 은행 빚을 갚아갔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남들 같이 큰 배를 모는 선장이 되어 일꾼에게 월급을 주며 부리기도 했다. 영식은 몸이 바스러지도록 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