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호구

소설 - 바다 별

by 온벼리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자발적 호구

영식은 못다 한 학업에 대한 좌절감이 큰만큼 친구들 앞에서의 열등감도 심했다. 고졸인 친구들 사이에서 국졸인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배짱을 부리기에는 자존감도 낮았던 영식은 친구들 앞에 서면 소금에 절여진 배춧잎처럼 풀이 죽었다.

영식이 부족한 자신감을 대체하는 방법은 세상 좋은 사람인 양 자신의 것을 퍼주는 것이었다. 영식의 삶은 그랬다. 어머니에게도, 친척들에게도, 친구들에게까지 그랬다. 그래서 영식은 자신의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마음을 쓰며 호구 노릇을 자청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들과 섞이고 싶었던 것이다.


영식의 친구들이 은주네 집에서 기르던 진돗개를 끌고 가 잡아먹는 일이 벌어졌다.

은주에게는 버거운 덩치였지만 똑똑하고 순해서 정이 많이 갔던 백구는 마당에서 목줄을 하고 생활을 했다. 마당에 똥을 싸서 냄새나고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묶여서 생활하니 자기 집 주변에 똥을 싸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참아줘야 하는 일이었다. 은주가 밥을 주러 다가가면 반가움에 앞발을 들고 달려들어 옷을 흙 투성이로 만들거나 피하려다 뒤로 넘어지기는 일이 자주 생기기도 했지만 은주에게는 백구를 비롯해 마당에 사는 오리, 닭, 처마 밑에 제비와 흙바닥에 구멍을 파던 개미들까지도 모두 친구였다.


마을에서 돼지를 잡거나 개를 잡을 때 잔인하게 때려 잡거나 찔러서 죽이는 광경은 목격하고 기겁한 적이 있었던 은주는 영식에게 백구를 절대 잡아먹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빠~ 우리도 백구 잡아먹을 거야? 아빠 개고기 좋아해?"

"이... 좋아허기는 허는디..."

"백구도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백구는 안 잡아먹으면 안 돼?"

"그려... 백구는 니들이 좋아허니깨..."

"절대로 잡아먹으면 안 돼!! 알았지?"

"그려... 알았어!"

영식도 처음에는 그냥 집 지키는 개. 남이 키우니까 우리도 키운다는 식이였지만 정이 들어 잡아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영식의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 집 개를 잡아 몸보신을 했고 이번에는 영식이네 집 개를 잡자는 말에 영식은 대답하지 못했다. 영식이 친구들의 말에 대답이 없자 친구들은 집이 빈 틈을 타 백구를 끌고 나갔고 쥐약을 먹고 죽어서 잡았다는 씨도 안 먹힐 핑계를 댔다. 사실을 다 알고 나서도 영식은 친구들에게 화를 내지 못했고 백구의 소식을 듣고 목놓아 우는 은주 앞에서도 아무런 변명을 하지 못했다.


어차피 배우나 못 배우나 뱃일하고 사는 것은 다 똑같았고,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영식이 친구들 앞에서 작고 부족한 사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릴 적부터 받아왔던 무시에 익숙해져 스스로를 작은 우물에 가둔 것은 아닌가 싶다.


영식의 주변에는 영식을 선대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은주는 친척들이 싫었고 섬사람들도 싫었다. 은주는 영식처럼 기죽지 않았고 냉대하는 그들과도 섞이기를 거부했다. 그렇지만 영식의 영향을 받아 세상이 반갑지 않았고 사람이 싫었다. 은주도 또 다른 우물의 개구리 같았고 우울증은 우물에 갇힌 개구리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