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바다 별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교회 뒤로 길게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의 중앙에 오래된 커다란 나무가 한그루가 있었고 그 나무 옆을 지나 바닷가로 내려가면 수영을 하기 좋은 모래사장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당너머라고 불렀고 산 중앙의 큰 나무는 당산나무라고 불렀다.
서낭당이 있는 산을 넘어간다고 이름이 당너머였고 서낭당 집 옆에 수호신 역할을 하는 으스스하고 거대한 나무가 당나무였던 것이다. 당너머로 내려가는 길은 험했고 가팔라 미끄럽기까지 했다. 나뭇가지들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다른 곳에는 없는 새하얀 백사장의 고운 모래가 펼쳐진 곳이라 어린아이들이 수영을 하기에 안전하고 좋은 곳이었다. 점심을 싸들고 가족들과 놀러 가서 수영을 하기도 하는 고이도의 해수욕장 같은 곳이다.
은주는 섬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할 줄 몰랐고 물을 워낙에 무서워해서 마을과 가까운 앞장벌이나 뒷장벌 같은 깊은 곳에서는 물놀이를 하지 않고 당너머에서만 물놀이를 했다.
6학년 여름방학이 한창이던 무더운 어느 날 은주는 친구들과 당너머에서 물놀이를 하기로 했다. 어릴 적에는 주로 집에서만 놀던 은주도 제법 컸다고 친구 집에도 가고 같이 놀러 다니기도 했다. 물놀이라고 해봐야 무릎 깊이에서 어기적 거리며 기어 다니거나 허리 깊이에서 튜브를 타고 둥둥 떠다니는 게 전부였다. 튜브가 있어도 절대로 발이 닫지 않는 깊이까지 가는 일은 없었다.
에어컨도 없었던 시절 땡볕의 한여름 더위는 숨이 막혔고, 햇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더욱 뜨거웠던 섬에서의 여름은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 달아올라 있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은주마저도 물놀이를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날이었다.
햇볕에 데워진 바닷물은 뜨듯했지만 몸을 담갔다 일어나면 살랑 부는 바람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고 몸을 담그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당너머는 파도도 잔잔하게 찰랑거렸다. 튜브 위에 누워 한가로이 파도를 즐기며 오후의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산너머 마을에서 방송을 하는 소리가 당너머까지 메아리치듯이 울렸다.
"아! 아! 아!!~ 안내방송 드리겄습니다~다~"
"뒷장벌 바닷가에서 놀던 수연이 학생은~은~ 지금 속히 집으로 돌아오기 바랍니다~다~"
"다시 한번 안내방송 드리겄습니다~다~"
"고! 수! 연! 학생은 부모님이 찾고 계시니~니~ 지금 속히 집으로 돌아오기 바랍니다~다~"
뒷장벌은 여객선이 드나들고 배들이 고기를 내리는 가장 큰 선착장이 있는 곳이고 은주네 집에서도 가장 가까운 바닷가다. 어촌계장인 춘식이 아버지의 안내 방송은 온 동네에 쩌렁쩌렁 울려 수연이를 찾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 수 있게 했다. 방송이라서 길게 설명하지 않고 집으로 오라는 말만 반복하니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뚱딴지같은 방송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왜! 수연이를 찾는데 동네 방송까지 하지?"
이상한 일이었다. 사적인 방송은 잘하지 않을뿐더러 더군다나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은 처음 들었다. 고이도에서 아이를 잃어버릴 일이나 아이가 길을 잃을 일은 절대 없었다. 조금만 찾아다니면 어디 갔을지 뻔히 알 수 있는 코딱지만 한 동네였고 누구 집 숟가락이 몇 개 인지도 뻔히 아는 동네에서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은 낯설기만 했다. 그것도 다 큰 6학년이나 되는 아이를 말이다.
이후로도 방송은 두세 번 더 울려 퍼졌다. 아직도 수연이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은주는 방송을 듣고 뭔가 찜찜해 더 이상 수영을 하고 싶지 않았고 친구들에게 먼저 집으로 가겠다고 일어났다. 흠뻑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쥐어짜며 질벅거리는 슬리퍼를 끌고 다시 당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물놀이를 할 때는 수영복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고 갈아입을 옷 따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놀다가 집으로 가서 씻으면 그만이었고, 젖은 옷을 입고 다닌다고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젖은 옷을 입고 산을 넘어오면 으레 '당너머에서 수영하고 돌아오나 보다'라고 생각들을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순자는 은주를 보자 걱정이라도 한 듯 유난스럽게 반색했다.
"이? 은주 왔니? 워디서 놀다 온겨?"
"응? 당너머에서 친구들이랑 수영한다고 했잖아."
"워디 딴디는 안 가구 당너머서만 놀다 온겨?"
"응... 근데 왜?"
"너 수연이는 뭇 봤니?"
"수연이는 왜? 당너머에는 안 왔는데? 오늘 하루 종일 수연이 한 번도 못 봤어. 아까 방송으로 수연이 찾던데? 근데 왜 수연이를 방송으로 찾아?"
"수연이가 수영허다 없어졌댜."
"수연이가 왜 없어져? 그게 무슨 소리야?"
"저기... 뒷장벌 선착장 옆이서 애들이랑 수영 혔다는디... 잠수헌다구 물속이 들어가 가 꾸는 안 나왔댜. 어디 갔는지 모르겄다구 방송까정 허드만."
순자는 걱정스러운 말투였다. 순자는 은주와 아주 친한 한둘 외에는 은주의 친구들 이름도 몰랐지만 교회를 같이 다니던 유일한 6학년 출석자인 수연이는 알고 있었다.
은주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뭔가 불길하고 찝찝한 것이 기분이 이상했다. 익숙하지 않은 이 느낌이 뭔지 알 수가 없었고 마음도 불편했다. 뙤약볕에서 한참 물놀이를 하고 들어오니 불편한 마음과는 별개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은주는 불편한 마음을 그대로 품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방 한가운데 누워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순자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은주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잠든 은주는 얇은 이불을 덮고 있었고 베개도 베고 있었다. 순자가 덮어준 모양이었다.
"은주야! 일어나 봐! 이? 왜 그려!! 이? 왜 그려! 뭔 꿈을 꾸는디 잠꼬대를 그렇게 심허게 햐?"
"응? 왜!! 내가 잠꼬대를 했어?"
"그려! 자믄서 소리 지르구 허우적 대쌌길래 일부러 깨운겨! 무서운 꿈이라두 꾼겨?"
"몰라... 나 꿈 안 꿨는데!! 내가 잠꼬대를 했다고?"
잠이 덜 깬 은주는 흘러내린 침을 쓱 닦으며 멀뚱멀뚱 앉아 느릿느릿 대답을 했다.
"그려... 팔을 막 허우적 대쌌구 소리를 막 지르구 그렸어."
은주는 무슨 꿈을 꿨는지 방금 깼는데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아주 긴장되고 고통스러운 꿈이었음은 분명했다. 해열제라도 먹고 잠든 사람처럼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은주는 평소에도 잠꼬대를 가끔 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앉아 뭐라 뭐라 알 수 없는 말을 떠들거나 팔을 휘휘 저으며 율동을 하다가 다시 잠들기도 했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었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이상하다? 근데 왜 이렇게 땀을 많이 흘렸지?'
'아... 잠들기 전에 마음이 불편해서 그랬나?'
은주는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순자에게 물었다.
"엄마! 근데... 수연이 찾았어?"
은주의 질문에 순자가 대답이 없자 은주는 눈을 똑바로 뜨고 순자의 표정을 살폈다. 순자의 표정은 불편해 보였고 뭔지 모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순자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대답을 했다.
"죽었댜..."
"에?"
"어휴... 아까 물속이 있는 거 건져 냈는디 죽었댜..."
"왜? 왜 죽어?? 그게 무슨 말이야??"
"몰러... 잠수헌다구 물속이 들어갔다는디 안 나왔응깨 빠져 죽은 게지... 빈혈 때미 정신을 잃었을 수 두 있다구 허드만... 에휴... 어린것이 워쩐다니..."
수연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가 크고 덩치도 좋았다. 겁이 없어서 깊을 곳에서 수영도 잘하고 남자아이들과 잠수 내기를 할 정도로 수영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밀물이 들어차면 뒷장벌 선착장 주변은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기에는 꽤 깊었다. 배가 드나들기 위해서 아주 가파르고 깊게 만들어져 있었다. 선착장이 거의 잠길 정도로 밀물이 들어오면 아이들은 낚시를 했고, 수영을 아주 잘하는 겁 없는 남자아이들은 다이빙을 하면서 놀았다. 은주가 당너머에서 튜브를 타고 기어 다니는 동안 수연이는 뒷장벌에서 남자아이들과 잠수를 하면서 놀았던 것이다. 물의 깊이를 재보겠다고 서로 경쟁하며 놀다가 한 아이는 심판을 보고 수연이와 아이들은 동시에 잠수를 해 바닥에 손을 찍고 올라오기로 했다. 같이 들어간 아이들은 이미 물 밖으로 나왔는데 수연이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아이들은 물속으로 다시 들어가 찾아보았지만 수연이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아도 수연이가 보이지 않자 아이들은 새파랗게 겁에 질린 얼굴로 근처 배에서 일하고 있던 수연이의 삼촌인 정수를 다급하게 불렀다.
"삼촌~ 삼촌~ 수연이가 물속에 들어갔는디 안 나와요~"
"뭐라는 겨? 뭔 소리여 다시 제대루 말혀봐."
"수연이가 잠수한다구 물속으루 들어갔는디 안 나온다구요."
"뭐라구? 에이씨 미치구 환장 허네!! 워디! 워디서 그렸어! 아! 얼릉 말혀!!"
"여기요. 여기."
정수는 아이들이 가르쳐준 곳으로 뛰어들어 물속 깊이까지 들어가 찾기 시작했다. 그사이 아이들은 다른 어른들에게도 알렸고 순식간에 선착장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뭐여? 왜 그려? 왜 다들 똥 마려운 강아지들 마냥 동동 거리구 그렸쌌는댜?"
"수연이가 읎어졌댜!"
"뭔 소리여?"
"물속이 들어갔다는디 읎어졌댜!"
"워디 놀다가 집으루 갔겄지~"
"아녀! 잠수헌다구 물속이 들어갔는디 안 나왔다잖여!"
"혹시 모릉깨 어촌계장 헌티 애 찾는다구 방송이라두 좀 혀 보라구 혀! 얼릉!"
정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정수를 보다 못한 남자 어른 몇 명이 물속에 뛰어들어 같이 수연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수는 바닷속에 있는 수연이를 발견했다. 반가움도 잠시였다. 수연이는 두 눈을 뜬 채로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있었는데 긴 머리가 물결을 따라 사방으로 나풀거리고 있었다. 순간 정수는 소스라치게 놀라 가까이 가지 못하고 물 밖으로 허겁지겁 나와 버렸다. 조카였음에도 불구하고 물속에서 펄럭이는 수연이의 머리칼은 처녀 귀신같기도 했고 자신의 발목이라도 덥석 잡을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혀 정수는 잠시 이성을 잃고 말았다.
정수는 물 밖으로 나와 심호흡을 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자신의 뺨을 세게 후려치며 "정신 차려"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놀란 마음이 진정된 정수는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건져 내겠다고 마음먹고 다시 수연이를 발견한 자리로 잠수를 해 들어갔다.
수연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물속의 조류에 의해서 수연이는 이리저리 떠내려 다니고 있었다. 한참을 잠수를 하던 정수는 이러다가 수연이가 먼바다로 떠내려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배에 올라타서 그물을 내려 주변의 바다를 훑기 시작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수연이의 엄마는 선착장에 주저앉아 숨이 넘어가도록 통곡을 했고 주변의 사람들도 발을 동동 구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 선착장 밖까지 배를 몰던 정수의 그물에 수연이가 걸려 올라왔다.
선착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인하 목사는 수연이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선착장 바닥에 얼른 눕히고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인하는 제발 살려 달라며 고통이 섞인 기도를 중얼거렸다.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술을 20분이 넘도록 계속했지만 수연이는 숨을 쉬지 않았고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이제 그만하라고 인하를 말렸고 인하도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연이 옆에 주저앉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목놓아 울었다.
은주는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야 순자에게 수연이를 건지려 했던 정수의 이야기와 살려보겠다고 인공호흡을 했다는 이인하 목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은주는 세상모르고 잠든 동안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말을 듣고 죄책감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불안 속에 마음 조리고 있었을 순간에 낮잠을 자고 있었다니... 은주의 낮잠을 순자 이외에는 아무도 몰랐지만 은주는 사람들 앞에 부끄러웠고 수연이에게 미안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미안했고, 옆에 없었던 것도 미안했고, 같이 슬퍼해 주지 못한 것도 미안했고, 도와주지 못한 것도 미안했다. 낮잠까지 잔 것은 더더욱 미안했다. 모든 것이 미안했다.
물론 은주는 아무것도 몰랐고, 알았다 하더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 상황에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수연이가 어린 나이에 벼락같은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하니 하염없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