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 건지기 굿

소설 - 바다 별

by 온벼리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넋 건지기 굿

수연이 죽은 며칠 뒤 뒷장벌 선착장에서 무당이 굿을 준비하고 있었다. 무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흰색으로 몸을 치장했다. 흰색 삼각 고깔모자에 흰색 두루마기에 흰색 버선까지 신고, 허리에는 흰색 긴 천을 칭칭 동여매고, 대나무에도 흰색 종이꽃을 매달아 주변에 세워두고 제사용 음식들을 한 상 차려놓고 징소리에 맞추어 펄펄 뛰기 시작했다. 수연이를 위한 굿이라고 했다.

은주가 굿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이유는 뭘 어쩌겠다는 건지 한번 지켜보겠다는 심상이었다. 거기다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수연이의 엄마가 교회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수연이가 교회를 다니던 아이였고 교회에 가는 것을 허락했던 것도 다 알고 있는데 그런 아이의 혼을 위로한답시고 굿판을 벌이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괜히 수연이도 기분 나빠할 것 같았다. 은주는 수연이를 대신하는 마음으로 팔짱을 끼고 멀찍이 서서 끝까지 무당과 수연이 엄마가 하는 짓거리를 지켜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연이 엄마는 울면서도 연신 허리를 조아리며 손을 모아 비벼댔다.


은주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확신과 자부심은 없었지만 굿을 보는 내내 유난스럽게 거슬렸고 심기가 불편했다. 무당은 굿을 끝내고 음식을 나눠먹어야 한다며 주변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에게 알록달록한 제사용 사탕과 한과들을 나눠주었다. 은주는 절대로 받지 않겠다는 듯이 단호하게 무당의 손을 뿌리치며 멀찍이 물러섰다. 사탕이라고 눈이 돌아가 속도 없이 받아먹는 아이들을 보고 혼잣말로 "등신 같은 것들"라고 욕을 했다. 특히나 수연이 굿상에서 나온 음식인데 아무리 사탕이라고 해도 그걸 처먹고 싶을까? 싶어 화가 치밀어 자신이 보호자라도 되는 듯이 괜스레 무당과 아이들을 번갈아 가며 째려봤다.


무당은 허리에 둘렀던 흰 천으로 제사 지낸 밥그릇을 돌돌 말아 묶어서 길게 늘어뜨리고 배에 올라타더니 수연이가 빠졌던 선착장 주변을 배를 몰아 빙빙 돌면서 낚시라도 하듯이 천을 끌고 다녔다. 바다에서 떠도는 영혼을 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흰 천을 끌고 다니다 영혼이 건져지면 천 안에 머리카락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멀찍이서 지켜봤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정말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들리는 말로는 나왔다는 말도 있고 아니라는 말도 있고. 하지만 은주는 머리카락이 나왔으니 이것 좀 보라고 보여 줬다고 하더라도 웃기고 자빠졌다고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어쩌면 은주는 자신도 모르는 신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은주는 교회를 다니고부터 영식이 제사상에 절을 할 때도 절대 따라 절하지 않았고 제사 음식도 먹지 않았는데 수연이를 위한 굿을 보고 화가 치밀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침을 뱉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은주는 그럴 만큼의 배짱은 없었다.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수연이를 위한 굿이라고 했지만 죽은 사람을 위한 굿이 아니라 산 사람의 마음을 위한 굿이었고, 미안함에 무엇이라도 해 보이고 싶어 하는 심리를 이용한 무당의 상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마을의 산 중앙에 있는 서낭당 옆 거대한 당산나무에는 오색 천들이 치렁치렁 걸려 있었고 여러 가지 색의 천을 새끼줄처럼 꼬아 나무 중간에 칭칭 감아 놓기도 했다. 서낭당 기와 밑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나무 상이 있었고 그 안에는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여러 가지 물건들도 남아 있었다.


섬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뱃일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을 때면 굿을 했다. 바다에서 실종된 사람은 시신조차 찾기 쉽지 않았다. 시신이 돌아오게 해 달라고 굿을 했고, 또 혼을 건진다고 굿을 했다. 더 오래전에는 바다에서 사고가 나지 않게 해달라고 겨울만 되면 뇌물을 바치듯 제사를 드리기도 했다.


어느 집에 아픈 사람이 있어도 굿을 했다. 할머니 길녀도 무슨 일만 있으면 굿을 했다. 영일이 실려 갔을 때도 굿을 했고, 길려가 토끼고기를 먹고 아팠을 때도 집안에 액운이 꼈다고 굿을 했었다. 아마도 은주의 할아버지가 아팠을 때도 굿을 했을 것이고, 그 이전부터 뻔질나게 굿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마을에 무슨 일만 있으면 무당을 불러 굿을 했고,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어떠한 일이 생기면 굿이라도 해야지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소중한 그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굿을 한다지만 그들이 지켜 낸 것은 겨우 자신들의 마음뿐이었다.


섬에서는 제때 치료하지 못해서 죽는 사람, 별일도 아닌 걸로 죽는 사람, 물에 빠져 죽는 사람, 뱃일 나갔다가 실종되는 사람, 어린 나이에 죽는 사람, 여러 가지 이유로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은주도 섬에서 사는 13년 동안 많은 죽음과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