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

소설 - 바다 별

by 온벼리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하숙

은주는 중학생이 되면서 육지로 나와 학교를 다녀야 했다. 고이도에는 국민학교 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면 육지로 나와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녔고, 토요일 저녁에 섬으로 들어갔다가 일요일 저녁 배로 다시 나오곤 했다.

은주도 마찬가지로 부모와 떨어져 외지 생활을 시작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순자는 은주에게 자취방을 얻어주었다. 하지만 혼자서 자취를 해야 하는 은주가 걱정이 됐다. 은경은 멀리 광천의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고 은주와 같이 지낼 수 없었다. 같이 자취할 아이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혼자 지낼 방을 얻어 주기는 했지만 은주를 혼자 두자니 걱정이 앞섰다. 다른 친구들은 언니들과 같이 지내거나 친구와 같이 지내기도 하는데 은주는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연탄 가는 것부터 밥해먹고 도시락을 싸는 것까지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하기엔 은주는 어린 나이였다.

어릴 적부터 밥도 할 줄 알았고 육지에서 버스를 타고 혼자 병원에 다니기도 했지만 자취는 좀 차원이 달랐다. 밤을 혼자 보내야 했고 때로는 혼자이면 안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순자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친구 희선이네 집으로 자주 놀러 다니던 은주는 희선이 엄마에게서 하숙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희선이네 집은 하숙집이 아니었고 하숙생을 들여 본 적도 없었다. 희선이 엄마 눈에 은주는 싹싹하고 조용하지만 야무진 아이였다. 그리고 희선이와 친하게 지내는 은주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 은주가 혼자서 지낸다니 안쓰럽기도 했고, 희선이와 같이 방을 쓰며 지내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자기 집 하숙생으로 들어오면 어떻겠냐고 선뜻 제안을 한 것이다. 순자는 은주가 학교에 다니면서 같이 자취할 수 있는 친구라도 구해 보기를 바랐었는데 친구 집에 하숙이라니 그래도 다행이다 싶어 희선이 엄마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희선이는 사랑받으며 자란 티가 나는 유쾌한 아이였다. 희선이 엄마 또한 낙천적이고 마음에 상처 따위는 담아 두지 않을 것 같은 털털한 성격에 농담도 제법 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었다. 희선이네 집은 대천 시내에서 버스로 두정거장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방 세 개 딸린 아파트였다. 희선이 아빠는 공무원이고 희선이 엄마는 전업 주부다. 희선이는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은주는 희선이네 가족 사이에 끼어 덤으로 사는 것처럼 지냈다. 희선이와 같은 방을 쓰고, 밥 먹을 때도 숟가락 하나만 더 얹어놓고 먹는 듯 그들의 생활에 소리 없이 스며들어 그들의 일부처럼 지냈다. 희선이가 라면을 먹고 싶으면 같이 라면을 먹었고, 은주의 도시락에도 희선이 도시락과 같은 반찬이 담겨 있었다. 은주는 무엇보다 도시락 반찬에 정성이 담겨 있는 것이 가장 좋았다.

학교에서도 은주는 희선이와 단짝처럼 같이 다녔다. 희선이는 마치 쌍둥이 자매가 생기기라도 한 듯이 좋아했고 자기편인 친구가 있으니 더욱 생기가 돌았다. 남동생과 치고받고 싸울 때나 말싸움을 할 때도 자기편이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았다. 물론 은주는 희선이와 희선이 동생의 싸움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함부로 끼어들거나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다. 희선이의 친구로서 살짝 편을 들어줄 뿐이었지 절대로 싸움에 끼어들어 희선이와 편먹고 동생을 몰아세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은주는 눈치가 빤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편을 들어 싸움이 커지면 희선이 부모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희선이와 둘만 있을 때는 희선이가 동생 욕을 하면 조금 더 희선이의 편에 서서 위로해 주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면 같이 자전거를 타거나 숙제를 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희선이는 외롭지 않아 좋다는 말을 했다. 희선이 엄마도 하숙생이지만 자신의 딸과 매일 놀아주고 같이 있어줄 친구가 있다는 것에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희선이는 공부에 그리 관심이 많은 친구는 아니었다. 물론 은주도 공부를 하는 아이는 아이였지만 그래도 희선이보다 조금 공부를 잘했고, 선생님의 전달사항이나 숙제들은 은주가 꼬박꼬박 챙겼기 때문에 희선이 엄마는 은주에게서 전달사항을 확인하고는 했다.


은주는 눈치 봐야 할 일들이 많다 보니 희선이 집에서 지내는 일이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 은주는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희선이는 같이 자전거를 타기 위해 은주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려 했고 은주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전거를 배우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안전과 편안함을 보장받는 대신에 자유함을 빼앗긴 기분이었고 희선이의 꼭두각시가 된듯한 기분도 들었다. 친구로서의 관계에 균형은 희선이네 집에 들어가면서부터 이미 깨져 있었다.


하숙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4월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은주와 희선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엌은 아침밥 준비로 분주했다. 안방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희선이 엄마가 물 묻은 손을 닦으며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아침 식전부텀 누가 너므 집이 전화를 했쌌는댜?"

"여보슈? 이? 이! 맞어유. 뭔 일 이유? 이...... 이... 어이구! 어이구! 워쩐댜... 이... 그류."

"은주야! 전화받어 봐라..."

희선이 엄마는 굳은 표정으로 나지막이 은주를 불렀다. 은주는 굳은 희선이 엄마의 얼굴을 살피며 수화기를 넘겨받았다. 수화기에서 들린 것은 고이도에 사는 재성이네 고모의 목소리였다.


재성이네 고모는 양자인 큰아버지의 여동생이다. 재성이는 고모의 큰 아들이었고 친척이 많다 보니 누구네 큰아빠, 누구네 큰엄마라는 식으로 이름을 붙여서 불렀다.

고모는 자신에게 나긋나긋했던 오빠 영식을 꽤 따랐고 형제 중에서 영식과 가장 사이가 좋았다. 엄밀히 따지면 은주의 큰아버지만 양자였으니 고모나 그 형제들이 친척지간은 아니었지만 은주의 할머니인 길려가 양아들의 형제들을 모두 가족으로 여겼고 한 동네에서 친척지간이라 말하며 살았으니 친척으로 여기고 산 것이었다.


"은주야... 재성이 고몬디... 느이 아빠가... 돌아가셨다...... 얼릉 아침 배루 섬이 드러와라... 은경이 한티두 전화혔응깨. 같이 드러와."


사촌 고모는 은주네 집에서 전화를 걸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사람들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소리만 듣고도 은주네 집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곡하는 소리와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음이 들려왔고 고모도 많이 울었는지 목이 잠겨 있었다. 고모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고 아빠가 돌아가셨으니 얼른 섬으로 들어오라고 짧게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은주는 무언가에 아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은주를 보고 희선이 엄마는 책이 들어있던 가방에 책을 꺼내고 옷가지를 몇 벌 챙기고 은주에게 물어 이것저것 손수 가방을 싸서 어깨에 메 주고 어항으로 가는 아침 버스에 태웠다. 그리고 학교에 전화해 은주 부친의 부고를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