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도로 가는 여객선

소설 - 바다 별

by 온벼리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고이도로 가는 여객선

배가 출발할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목요일 아침이라 여객선 터미널은 사람도 없이 휑 했다. 터미널 한쪽 의자에는 은경이 앉아 있었다. 은주는 은경을 한번 쳐다보고 고이도로 들어가는 표를 끊어 말없이 은경의 옆으로 가 앉았다. 은경이 먼저 은주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저녁에... 아빠가 위독하시다구 전화받았는데... 너두 전화받았냐?"

"응... 나는 아침에 전화받았는데... 아빠가...... 돌아가셨데..."

은경은 놀란 눈을 하고 은주를 쳐다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은경은 어제 전화받았고 아직 현재의 소식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은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은주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승선하라는 방송을 듣고 의자에서 일어나 말없이 배에 올랐다. 여객선 선실에 들어가 앉아 배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름 냄새가 가득한 선실은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아무도 없이 둘 뿐이었다.


은주는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어떻게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슬픈 일이니 머리로는 울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슬픔이 와닿지 않았고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그냥 물속 깊이 가라앉은 것처럼 답답하고 숨이 막혀 불편한 마음뿐이었다. 둘은 말없이 선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배가 출발하고 있었고 두 명의 아주머니가 급히 탔는지 부산스럽게 선실로 들어와 앉았다.


낯선 얼굴이었고 고이도 옆 섬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인 듯싶었다. 아주머니들은 은주와 은경을 빤히 쳐다 보고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어제 고이도서 사람 죽었다드만 쟈들이 그 집 딸내미들 인가 비네."

아주머니들의 대화는 은주와 은경을 향해 있었고 은주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워쩌다 그렸댜? 선착장이서 그렸다메?"

"배가 선착장이 이만~치 걸쳐 있었댜~ "

어제의 소문을 자세히 알고 있던 아주머니가 손으로 배가 석착장에 걸쳐있는 각도를 묘사하며 말을 했다.

"아니 워쩌다가 배가 그 모냥이 됐댜?"

"술을 많이 먹었댜."

"이......"

술이라는 말 한마디에 다른 아주머니는 대충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그 모냥 인디 사람은 안 보이구 시동은 걸려있드랴."

"그려서. 워쩌케 찾은겨?"

"배가 앞이 이렇게 들려 있응깨 물속이 빠졌겄지 허구 여 뒤에 물속이 들여다 봉께 거기 있었다는겨!"

"얼라..."

"수구레에 줄이 걸렸는디 발이 또 줄이 감겨갖고 뭇 나온 거 같드랴~ 그걸 끄집어냈댜!"

"끄집어냈는디 뭇 살구 죽은겨?"

"병원이 싣구 갔는디 죽었댜."

"어이구... 아침부텀 초상 치르구 있겄구만..."

"쟈들은 지 아베 죽었다구 아침부텀 핵교 안 가구 섬이 들어가는 갑네"

"어이구~ 불쌍혀서 워쩐댜..."

그들에게 영식의 사건은 그저 남의 일이었다. 불쌍하다고 말은 했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그저 남의 일. 그들의 대화로 인해 사건 당사자의 딸들이 더 비참해질 거라는 것은 알지 못한다는 듯 주저 없이 떠들었다.

어제 일어난 일을 다른 섬사람이 어쩌면 저리도 상세히 알까? 안타깝지만 놀라운 불구경이라도 본 듯 입에서 입으로 전했을 것이다.

그들의 대화를 듣는 것이 힘들었던 은주는 몸이 바들바들 떨려 왔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영식이 죽어가던 현장과 아주 냉정하게 마주해야 했다. 그들의 담담한 묘사와는 달리 은주는 심장은 터질 것 같았고 온몸은 녹아내리는 듯했다.

은경도 은주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다. 은주는 그제야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영식의 죽음을 이제 실감하기 시작했고 슬픔의 거대한 파도는 밀려와 은주를 삼켜 버렸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 내기리 시작했다. 아빠가 정말 죽었구나. 아빠는 그렇게 죽었구나. 둘은 고이도에 도착할 때까지 자리에서 꼼짝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울기만 했다.


여객선에서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장례식이 끝나도록 영식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랐을 것이고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은주를 붙잡고 상황을 이야기해 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냉정했던 그들의 태도는 은주에게 상처가 됐고, 아빠의 죽음과 처음으로 대면해야 했던 여객선에서의 장면 또한 큰 아픔으로 남았다.


그놈에 술

영식은 어항에 볼일을 보고 고이도로 들어가려는 참이다. 진산도에 사는 친구 병철은 줄 것이 있다고 진산도에 잠깐 들렀다 가라며 먼저 출발했고 영식도 뒤따라 진산도로 배를 몰았다. 어항에서 고이도로 가는 길에 있었던 진산도는 고이도와 거리로는 그리 멀지 않은 섬이다. 고이도 앞장벌에서 보면 진산도 한쪽 끝이 훤히 보일 정도다. 주변의 다른 섬들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배로 움직일 때는 시간이 꽤 걸렸다. 진산도는 고이도보다 일곱 배 정도 컸고 중학교도 있고 자장면집에 술집도 있었다.


영식은 진산도 선착장에 배를 대고 얼른 가려는 마음으로 초소에 입항 신고도 하지 않고 배를 대충 묶어 두고 병철을 따라갔다. 병철은 어항에서 오다가다 알게 된 친구인데 국졸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금세 친구가 됐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병철은 어머니와 두 여동생이 있었다. 병철은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에게 사기를 많이 당했고 그런 병철이가 안쓰러워 영식은 돈을 빌려 줬었다. 영식은 병철의 집 마루에 앉아 기다렸다. 병철은 방에서 돈을 꺼내와 웃으며 영식에게 건넸고 더 줄 것이 있다며 부산스럽게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빌려간 것만 주믄 됐지! 뭘 또 찾구 그랴?"

"잠깐만 있어봐! 내가 금방 찾어다 줄 탱깨"

병철은 어머니가 밭농사를 지어 기름집에서 짠 병에 담긴 참기름과 병철의 외삼촌이 가져다줬다는 자연산 벌꿀을 꺼내왔다. 그리고 담근 지 삼 년 된 복분자주까지 꺼내 놓았다.

"어이구! 돈 몇 푼 빌려줬다구. 뭘 이렇게 자꾸 꺼내 오구 그랴?"

"영식아! 이거 봐봐. 내가 다 씻어서 담근겨. 3년이나 된 겨."

"이게 뭐여? 뭘루 담근겨?"

"복분자여~ 복분자주 먹어 봤남?"

"내가 뱀 술두 먹어봤잖여... 크... 죽이지 뱀술... 우리 집이두 담금주 몇 통 있긴 헌디... 복분자주는 첨인디! 맛이 좋은가?"

"한 잔 혀?"

"맛만 보까?"

병철은 칭칭 감아둔 고무줄을 뜯어 비닐을 열자 오래 묵은 복분자의 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병철은 사발로 듬뿍 한잔을 떠서 영식에게 건넸다. 영식은 벌컥벌컥 복분자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워뗘? 먹을 만 혀?"

"크~ 진허네! 향이 끝내주네!!"

"한잔 더 혀? 나두 아직 맛두 뭇 봤는디!"

"얼른 집이 가야 허는디..."

"한잔만 더 허구 가!"

병철은 김치를 가져왔고 한잔씩 따라 마주 않았다. 영식은 앉은자리에서 대접으로 한 잔을 더 마셨다. 대접 석 잔이면 소주 한 병이 넘는 양이었다. 그리고 앉아 병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한 잔을 더 마셨다. 사는 이야기를 했고 구구절절 니 인생이나 내 인생이나 참 사는 게 어렵다는 생각에 서로를 위로했다. 영식은 한잔만 마시려고 했건만 꽤 많이 마신 듯 취기가 올라왔다. 선착장에 대충 대놓은 배가 밀물이 들어오면 타기 힘들어질 것 같아 영식은 집에 가야 한다고 일어났다.

"얼라 너는 왜 이렇게 술이 약허냐? 취헌 거 같은디... 좀 쉬었다 가지 그려?"

"빈속이라 더 올라오는 갑네... 배를 저 짝이 대 놔 가꾸 얼릉 빼야지."

"그러믄 배 옮기구 좀 쉬었다가 술 깨믄 가!"

"아녀... 집이 코앞 인디... 금방 가믄 되지. 나 갈탱께 인나지 말어."

영식은 병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참기름과 벌꿀, 그리고 반 정도 남은 복분자주를 병철이 꺼내 준 비닐 가방에 담아 들고 급하게 배에 올라 고이도로 출발했다. 술을 좀 많이 마시기는 했지만 아직 취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고 지척인데 금방 도착할 테니 별일 없겠구나 싶었다.

출발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취기는 순식간에 올라왔고 알딸딸해지기 시작했다. 그놈에 담금주를 마신 게 문제였다. 고이도 초소에 입항 신고를 할 때 순경이 술 마시고 배를 몰면 안 된다고 출항 정지시킬게 뻔했다. 그냥 한숨 자고 올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병철이 저 눔에 새끼는 지나 처먹지 뭐 헌다구 담금주까지 꺼내와 가꾸... 에이씨..."


술을 마시고 차를 운전할 때면 속도 감각이 둔해지는 것처럼 배를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선착장에 배를 댈 때는 속도를 줄이고 조금씩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배를 고정하는 밧줄은 내려걸고 천천히 배를 밀착을 시켜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배도 상하지 않고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기 마련이다. 술에 많이 취해 속도 감각이 무뎌졌던 영식은 선착장에 다다랐는데도 속도를 완젼히 줄이지 않았고 밀물로 어느 정도 잠겨있었던 선착장 위로 배가 올라서 버렸다. 배 앞 바닥이 들리는 동시에 뒷부분은 물에 잠길 정도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배가 기울면서 영식은 운전석에서 떨어져 배 뒤편 바다로 빠지게 됐다. 정신만 있다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는 깊이였다. 하지만 영식이 바다에 빠질 때 배 뒤편에 걸쳐 놓았던 닻이 떨어지면서 닻줄도 같이 흘러내렸고 멈추지 않은 스크루에 닻줄이 엉켜 돌아갔다. 닻줄에 영식의 발목이 꼬인 상태로 스크루는 계속 돌아갔고 닻줄이 엉키고 조여들면서 스스로 발을 빼서 나올 수 없을 만큼 빡빡해지고 말았다. 영식은 빠져나오려 애를 썼지만 닻줄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호흡을 하지 못하면서 의식을 잃어갔다.


멀리서 선착장에 배가 걸쳐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상철이었다. 상철은 선착장으로 뛰어 내려와 배를 살폈다.

"선흥호믄 영식이 형네 밴디?"

"영식이 형~ 영식이 형~ 얼라... 배는 이리 냅두구 워디 간 겨?"

영식은 보이지 않았고 시동은 켜진 채로 배가 선착장 위에 올라와 있으니 큰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주변을 살펴도 영식이 보이지 않자 상철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두 없는디 어쩐댜? 그냥 가야 되나?"

"물속이 빠진 긴가? 그럼 큰일 인디?"

"내가 물속꺼정 들여다봐야 되남?"

"아녀... 사람이 빠졌을 수두 있는디... 워쩐댜?"

"근디 물이 깊지두 않은디 워찌 안 나온댜? 정신을 잃었나?"

"에이씨... 모르겄다! 일단 들어가 봐야겄네!"

발을 동동 구르며 혼자 중얼대던 상철은 바다로 뛰어들어 영식을 찾기 시작했다. 스크루에 닻줄이 엉켜 있었고 줄에 발목이 감겨있는 상태로 의식이 없이 늘어져 있는 영식을 발견했다. 상철은 영식을 잡아끌었지만 발목이 끼여 빠지지 않았고 다시 배로 올라가 배에서 쓰던 칼을 찾아들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두껍고 단단하게 꼬여있는 밧줄은 쉽게 잘리지 않았고 몇 번을 숨을 참고 들어 갔다 나오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밧줄을 잘라낼 수 있었다. 상철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영식을 물 밖으로 멀찍이 끌어다 놓고 멀지 않은 영식의 집으로 뛰어갔다.


순자는 사람들과 영식을 배에 태우고 급하게 병원으로 출발했다. 응급한 상황에 바다는 커다란 장애물과 같았다. 119 구급차가 응급환자를 싣고 차들 사이로 비켜가며 신속하게 병원에 당도해도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도 길게만 느껴질 만큼 일분일초는 생사를 가르는 시간이 되고 만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 배를 타고 응급실로 가는 것은 노새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응급실에 가는 꼴과 같았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인공호흡을 하면서 영식의 숨은 돌아왔지만 의식은 돌아 오지는 않았다. 어항에 도착해 병원의 유료 앰뷸런스를 불러 대천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동했다. 영식이 물 밖으로 나와 병원에 도착하기까지는 8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병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식의 숨이 끊어졌다. 병원에서는 물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응급조치를 했더라면 살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말과 함께 사망 진단을 내렸다.

순자는 상철이 영식을 발견했을 때 인공호흡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철을 원망했다. 상철은 영식을 구해주었지만 영식은 살아나지 못했고 은인은커녕 인공호흡을 제때 하지 않아 사람을 죽게 만든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이미 사망 판정을 받은 영식을 병원에 둘 이유가 없었고 급하게 갔던 배는 어둠이 내린 바다를 가르며 영식을 싣고 다시 고이도로 돌아왔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