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겨우 마흔 하나
아침 일찍부터 상여가 집 앞마당으로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다. 알록달록 종이꽃으로 치장한 촌스러운 꽃상여였다. 성묘 가는 길에 상여골을 지날 때 벽돌로 대충 만들어진 창고의 뚫린 창문으로 보였던 상여를 보고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바로 그 상여였다. 상여골에 있는 상여는 마을에 초상이 나면 꺼내다가 쓰는 공동 상여였다. 분명히 길려 장례식 때도 썼을 텐데 은주가 상여를 제대로 본 것은 오늘 처음이다.
열네 명의 남자들은 어깨에 흰 천을 둘러메고 상여를 들었다 놨다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여꾼들은 젊은 남자 넷과 나이 든 남자 넷을 제외하고 나머지 여섯은 영식의 친구들이었다. 어릴 적부터 영식과 같이 뛰놀면서 자랐고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 고이도에서 터전을 잡고 사는 친구들 말이다. 같이 술을 마시고, 고스톱을 치고, 남의 집 개를 잡아먹고, 영식을 호구로 알던 그 친구들이다. 오늘은 일부러 친구들이 자청해 상여꾼이 된 듯했다. 영식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영식이 이리 빨리 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다 같이 한 섬에서 살며 뱃일을 했던 그들도 영식과 같은 처지였고 언제 이 꽃상여를 타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은 영식처럼 바다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종종 듣게 된다. 마냥 오래 살 것 같은 자신의 삶을 과신하던 그들은 어쩌면 죽음이 바로 뒤에 와닿아 있을 수도 있다는 아찔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다가 금세 일상으로 돌아가 습관처럼 삶을 돌아보지 않고 살게 될 것이다. 영식도 그랬다.
영식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순해졌고 순자에게도 조금 살갑게 굴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식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친구들이 멘 상여에 동기 중 첫 타자로 올라타게 된 것이다. 친구들은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듯 침울한 표정이었다. 이 눔에 새끼가 황망하게 왜 이리 빨리 갔냐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했을 것이다. 영식은 그런 친구들에게 웃으며 멋쩍은 작별 인사를 했을 것이다. 잘들 살라고... 천천히 더 오래 살다 오라고...
영식이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을 듯했다. 영식은 사십 년을 살아오면서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며 살았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 틈에서 인정받으려고 노력했고 호구로 여기는 친구들 틈에 끼어 조금이라도 동등해져 보이고 싶어 했다. 그런 영식이 은주는 바보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오늘 영식이 가는 마지막 길을 보니 잘 살았다고 말은 못 해도 헛살지는 않았다고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 당신이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은 것 같다고... 사느라 고생 많았다고... 그리 미워하던 형제들은 당신 장례식의 모든 일을 책임져 주었고 호구로 이용만 해 먹던 친구들은 당신을 이고 지고 마지막 길을 함께하고 있다고...
관이 상여에 실리고 상여꾼들은 소리꾼의 지시에 맞춰 일어났다. 앞서가는 소리꾼의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상여 노랫소리에 맞춰 상여꾼들도 노동요를 부르듯 장단을 맞추며 따라 불렀고 장지를 향해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가족과 친척들은 그 뒤를 따라 곡을 하며 걸었다. 어른들은 은주에게 곡 하는 법을 가르쳤다.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이렇게 허는겨~ 혀 봐! 상여 따라 갈라믄 이렇게 혀야 되는겨!"
은주는 소름 끼치도록 듣기 싫은 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와야 한다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슬펐고 참으려 해도 울음소리가 새어 나올 것 같은데 그리 인위적인 곡 소리를 내야 아빠의 마지막 길이 위로가 되나? 싶었다. 하지만 은주는 생각과 달리 흘러넘치는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고 꾹 참고 있었다. 참는 것에 익숙했던 은주는 울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해 슬픔을 표현하지 못했다. 울지 않는 은주가 답답했는지 어른들은 그리해야 하는 거라고 가르쳤고, 은주는 마지못해 나지막한 소리로 곡을 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곡 소리였지만 귀를 막고 싶었다.
순자의 곡소리는 누가 들어도 마음이 동요되는 애절한 슬픔이 담긴 곡소리였다. 무미건조한 곡소리를 하던 사람들도 애절한 순자의 곡소리에 동요되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상여가 출발하려 하자 떠나는 사람을 붙잡기라도 하듯이 순자는 상여를 붙잡고 매달리며 더욱 크게 울었고 곡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영식도 어느 집에 초상이 나면 상여를 메고 으쌰 으쌰 산을 올랐더랬다. 상여는 힘이 좋은 젊은 사람들이 주로 멨는데 영식도 언젠가 자신도 이 꽃상여를 타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일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도 빨리 닥친 것이다. 영식의 나이 겨우 마흔 하나였다.
상여는 좁은 골목길을 겨우 빠져나와 학교 운동장에서 잠시 멈춰 섰다. 영식에게 생전의 기억들과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주는 것 같았다.
바닷가 자갈길을 지나 좁은 초상골 입구 산길을 천천히 올라 장지로 향해 갔다. 빠른 걸음으로는 20분도 안 걸릴 거리를 상여 행렬은 느릿느릿 한 시간이 넘도록 움직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좁을 길을 지나 가느라 상여는 더디 움직였고, 잠깐씩 쉬기도 하면서 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다.
날이 따뜻하다고 벌써 수풀은 무성했고, 산 곳곳에는 진달래꽃이 붉게 피어 있었다. 4월의 봄 햇볕은 매정하게도 여느 봄날처럼 따사로웠고 바닷물에 비친 아침 햇살은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은주가 이렇게 슬프고 마음 아픈 날에도 햇볕은 은주를 위로하듯 여전히 따뜻하고 밝았다. 하지만 오늘 은주는 따사로운 햇볕이 유난히 얄밉게 느껴졌다. 너는 속도 없냐고... 이런 날은 좀 흐려도 되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었다.
상여를 짊어진 상여꾼들은 목에 건 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아 냈다. 힘든 여정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누군가 목에다 수건을 하나씩 걸어 준 모양이다. 그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사람들은 죽은 자를 보내는 일에 익숙한 듯 능숙하게 움직였다.
상여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갔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상여가 꽤 무겁다는 것을 그들의 표정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상여를 내려놓고 잠시 쉬는 사람들 옆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상여 나갈 때는 무겁다구 허믄 안 된댜! 무겁다구 혔싸믄 점점 더 무거워진댜!"
"이... 원래 그렇댜! 진짜루 점점 더 무거워진다구 그러더만!"
무거운 것을 들고 멀리 오래 걸을수록 힘에 부쳐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런 일마저 미신으로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이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소한 일로도 신비한 무언가와 연결 지어 믿는 것은 그들의 일상인듯했다. 깨끗하게 죽었다고 하면 안 된다던 소리와 다를 게 없었다.
이별
초상골은 은주가 어릴 적 영식과 성묘 갈 때 지나갔던 길이다. 여자들은 성묘를 가지 않았다. 원래 여자들은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은주는 민철만 데리고 가는 영식을 따라 굳이 성묘를 다니곤 했다. 영식은 그런 은주를 말없이 데리고 다녔다. 남녀차별이 심했던 시절이었고, 아들을 낳기 위해 딸 셋을 낳은 영식은 씩씩하게 자신을 따르는 은주가 아들이 아닌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성묘하러 가는 길은 많은 무덤들을 지나야 했다. 무덤을 지날 때마다 너무 무서워 쏜살같이 달려 지나갔다. 대낮인데도 어디서 귀신이라도 따라올 것 같은 공포를 느꼈지만 그래도 영식에게 바짝 붙어 따라다녔던 길이다.
은주는 왜 강요하지도 않은 길을 따라다녔을까? 아마도 영식과 함께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에 하나였고 함께 하는 것 만으로 좋아서 무서움을 참고 따라다녔던 것 같다. 어쩌면 영식의 말대로 은주도 자신이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동등하게 대우받고 싶었던 것이고 남자들만의 일이라는 말에 반기를 들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뒤따라 오는 아이들을 살피며 무성히 자란 풀들을 발로 밟아 길을 만들어 주던 영식은 오늘 그 길을 상여를 타고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지막 길을 갔다.
상여는 넓은 무덤의 빈터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은주는 처음으로 모르는 이의 무덤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길가 바로 옆에 묘가 있어 성묘 때 늘 뛰어서 도망치듯 지나갔던 곳이다.
'이 무덤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피 울던 그날에 이곳에 묻혔겠지?'
은주는 이후로 다른 이의 무덤들을 볼 때면 영식의 장례를 치르던 날을 생각했고, 자신의 마음과 이 무덤 가족의 마음이 같았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이후로는 무서움이 덜했다.
상여가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자리에 도착했다. 영식의 자리는 그 앞자리였다. 묫자리는 아직도 여유가 있었고 영식의 옆자리에는 순자의 자리까지 마련이 되어 있었다.
상여꾼들은 상여를 내려놓고 삽을 들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길쭉하고 반듯한 네모 모양으로 어른 키만큼 깊이 파 들어갔다. 한참을 파 들어가 자리를 평평하게 고르고는 상여를 멨던 흰 천으로 관을 실어 내렸다.
영식은 어설펐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생을 마감했기에 기독교 형식에 맞춰서 하관예배를 드렸다. 이인하 목사는 관에 흙을 덮기 전에 은주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은주야 아빠한테 마지막 인사를 해야지..."
"그려... 이제 영영 뭇 보닝깨... 마지막 인사라두 혀..."
"......"
"얼릉 혀... 그냥 보내믄 쓰간디?"
"아... 빠.... 아빠......"
은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빠를 부르며 무덤 옆에 주저 않아 목놓아 울었다.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고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마지막이라는 말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다시는 볼 수도 없게 땅에 묻어 버릴 테니 인사를 해야 한다니... 죽고 나면 썩어서 없어진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 가족을 땅에 묻어 버린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따뜻한 온기를 다시는 느낄 수도 없고, 말 한마디 나눌 수도 없고,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은주는 흙이 덥여 가는 것이 그렇게 서럽고 슬펐다.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살아 있을 때는 보고 싶었던 적도 한번 없었고 살갑게 군적도 없었던 영식이었지만 다시는 보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니 그동안에 꽁꽁 숨겨 두었던 영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은주는 영식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지질하고 못나보여 기대조차 없었던 영식의 자리가 이렇게 컸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이다. 어쩌면 영식은 은주에게 하늘 같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 있어 당연했지만 고마운지 몰랐고 무너지고 보니 은주의 세상을 지탱하고 있었을 만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람. 이제 영식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득했고 막막함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소리꾼은 익숙한 듯이 무덤 주변을 빙 둘러 술을 흩뿌리며 잘 가라고 인사를 했다.
"술 때미 죽은 사람헌티 왜 술을 뿌리구 그려!! 술 때미 죽었다구!! 그눔에 술 때미!!"
순자는 화를 내며 울부짖었다. 순자는 술을 뿌리던 소리꾼에게 화를 냈지만 영식에게 화를 내는 것처럼 들렸다.
사람들은 그런 순자를 더욱 안타까워했다. 아무도 순자의 행동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이 순간 가장 힘들고 슬픈 이는 순자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장례식 내내 누구 하나 순자에게 이래라저래라 이르거나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돌봐줄 뿐이었다.
술 때문이라고 울부짖던 순자의 목소리는 은주의 기억에 오래 남았고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리고 메아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은주를 따라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