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죽음

소설 - 바다 별

by 온벼리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그 자리

서해안에서는 실치 잡이가 한창이었다. 영식은 잡은 실치를 어판장에 넘기고 수협에 가려고 철공소 옆을 지나는 길이었다. 영식은 손재주가 좋아 배를 손수 고치는 일이 많았고 여러 가지 공구에도 관심이 많았다. 철공소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모르는 것은 물어가며 배를 고쳤다. 철공소 사장의 도움을 많이 받다 보니 꽤 친분이 생겼고 철공소를 지날 때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인사라도 해야 했다. 오늘은 작은 철공소에서 보기 힘든 거대한 닻이 들어와 있었다. 영식은 굵직하고 큰 닻을 보고 저런 닻을 쓰려면 배가 엄청나게 커야 할 텐데 고깃배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철공소 사장은 닻과 씨름하느라 인사를 받아줄 여유가 없어 보였다. 영식은 멀찍이 서서 철공소 사장이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닻을 바닥에 고정시키는데 무언가 균형이 맞지 않은지 계속해서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애를 쓰고 있었고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 철공소 사장은 사람을 찾는 듯 두리번거렸고 주변에 있던 몇 명의 사람 중 영식과 눈이 마주쳤다. 영식이 인사를 하며 웃어 보이자 사장도 웃으며 급하다는 듯 손짓을 하며 영식을 불렀다.

"어이~ 영식이~ 여기 와서 좀 잡아보세. 영 균형이 안 맞네. 잠깐만 와서 잡으면 댜!"

영식이 도와주려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사장 바로 옆에서 구경하던 남자가 얼른 가서 닻의 한쪽을 붙잡았다. 남자는 뭔가 애쓰는 철공소 사장을 도와주고 싶었었는지 다른 사람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얼른 움직인 것이다. 머쓱해진 영식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어이구~ 내가 도와 줄라구 혔는디...... 거... 닻이 무지하게 크네... 몇 톤이여?"

"1.2톤이랴."

"어이구야... 그럼 배가 얼 만 헌겨?"

"헤헤... 꽤 크겄지?"

사장은 자신의 닻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자신의 철공소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이라 자랑이라도 하는 듯 영식의 말에 대답을 했다. 체인블록을 이용해서 닻은 위태롭게 들어 올려졌고 살살 돌려며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무거운 닻을 들어 올리기에 체인블록은 부실했고 닻을 매달고 있던 체인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우지끈 끊어지면서 닻은 순식간에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면서 영식을 대신해서 잡고 있던 남자 위로 닻이 떨어졌다. 남자가 닻에 깔리는 순간 날카로운 한쪽 끝 부분이 쓰러진 남자의 목 위로 그대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자는 목이 잘렸고 머리는 공처럼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영식의 발 앞까지 와서 멈췄다.

몸에서는 피가 솟아났고 잘린 머리에서도 피가 흘렀다. 영식의 바지와 신발에도 피가 묻었다. 덩그러니 잘린 남자의 머리는 입을 벌린 채 경련을 했고 눈은 뜬 채로 연신 깜박거렸다. 영식은 놀라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 치다 넘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흥건한 피와 잘린 머리를 본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물러났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주변으로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고 철공소 사장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항 파출소에서 경찰들이 왔고 주변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철공소 앞 좁은 2차선 도로는 순식간에 오갈 수 없는 길이 되고 말았다.

경찰은 주변을 통제했고 몇몇 경찰은 상황 파악을 위해 철공소 사장과 가까이 있던 사람들에게 상황을 물었다. 영식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처음에 영식을 불렀었다는 철공소 사장의 이야기 때문에 경찰은 철공소 사장과 영식을 포함해서 근처에서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몇 명의 목격자까지 데리고 파출소로 향했다.


목격자 진술을 하며 상황을 묘사하던 영식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눈앞에 피를 뿜으며 구르던 남자의 머리가 자꾸 생각나면서 영식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 결국 화장실로 뛰어가 구토를 하고 말았다.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은 영식은 생각했다. 철공소 사장은 나를 불렀고 그 남자가 먼저 가지 않았다면 내가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예고된 죽음

몇 달 뒤 영식은 두 번의 꿈을 꿨다. 첫 번째 꿈은 방에서 죽어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꿈이었다. 꿈을 짧았고 꺼림칙했지만 영식은 첫 번째 꿈을 금세 잊고 지냈다. 그리고 열흘쯤 지나 두 번째 꿈을 꾸었다. 영식은 어머니 아버지 산소가 있는 자리에 자신이 이미 죽어 묻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몸은 무덤 속에 있었고 영식은 무덤 위에 앉아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을 보며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고요했고 멀리서 찰방거리는 파도 소리와 함께 낮에는 새소리, 밤에는 벌레소리만 들렸다. 마을이 멀지 않은데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영식은 계속 혼자 있었고 외로웠다.

자박자박 풀 밟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순자가 옆으로 와 영식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순자가 너무도 반가워 일어나 와락 껴안았다. 반가운 마음에 순자를 이리저리 살폈다. 순자는 많이 늙어 있었다.

"워쩌케 왔댜?"

반가웠지만 순자가 죽어서 왔다는 것을 깨달은 영식은 아이들이 생각났고 걱정이 앞섰다.

"애들은 워쩌구 온겨?"

순자는 미소를 띤 얼굴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다 키워 놓구 왔응깨 걱정 말어... 이제 지들이 다 알어서 잘햐..."


영식은 꿈에서 깨어났다. 영식은 꿈에서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오늘 꾼 꿈도 며칠 전에 꾼 꿈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목이 잘려 죽을 뻔했던 일과 두 번의 죽는 꿈을 생각해 보니 어쩌면 자신이 곧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순자에게 꿈 이야기와 죽을 뻔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았고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순자는 죽을 뻔했지만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기는 왜 죽는댜? 생때같은 새끼들이 넷이나 있는디... 당신 죽으믄 새끼들은 워쩌라구 그려?"

순자는 순간 울컥하며 화가 치밀었고 눈물을 참느라 새빨개진 눈을 하고 영식에게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어이구... 그렁깨! 맨날 술이나 먹었쌌지 말구... 정신 즘 차리구 살지 그려!!"

순자는 그간 참아온 세월이 억울했는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방을 나가 버렸다. 순자는 영식의 말을 기억에서 지우지는 못했지만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려 애썼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고 자신과 아이들만 남겨두고 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순자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예지몽을 자주 꿨기 때문에 꿈을 무시할 수 없었다. 대체로 안 좋은 일이 있기 전에는 그 일을 암시하는 꿈을 자주 꾸고는 했다. 하지만 순자는 꿈을 해석하는 재주는 없었다. 일들이 다 지나고 나서야 그 꿈이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암시를 준 것이었구나라고만 생각했지 일어날 일들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는 못했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대로 일은 벌어졌다. 순자는 일어나는 일을 어찌 막겠냐고 생각했고 무언가를 거슬려 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순자의 꿈들이 신기했던 영식은 자신도 무슨 꿈을 꿨노라고 떠벌이기도 했지만 영식의 꿈들은 대부분 개꿈이었고 순자는 영식의 꿈 이야기는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런 순자도 이번에 영식이 꾼 두 번의 꿈과 철공소 사건은 쉽게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영식은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보며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했지만 정작 자신에게 닥칠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마냥 죽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견뎌야 할 고통들은 한도 없을 것만 같았고 술로 마음을 달래야 겨우 잠잠할 수 있었다. 영식은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지고 살아야 하는지 원망스러웠고 사는 것이 너무 버거웠다. 자신의 고통만 생각했지 가장 가까운 순자의 고통은 못 본척하며 참 못되게 굴었다. 아이들에게도 살갑게 군적은 있었나 싶다.


영식은 살아온 흔적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살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렸고 죽은 사람들만 생각하며 살았다. 자신이 죽고 나면 남겨질 아내와 자식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었던가? 술 마시고 온갖 주정으로 힘들게 했던 지난 세월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무시와 구박으로 기를 펴지 못하는 큰 아이도 안쓰러웠다. 사랑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권위만 내세우는 아빠로 살았던 것도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아들 낳겠다고 자식을 넷이나 낳아 놨으니 내가 죽으면 순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졌다.


영식은 화를 줄이고 혈기를 부리지 않으려 애를 썼고 조금씩 순해지기 시작했다. 순자가 아프면 "어이구... 우리 마누라 아파서 어쩌나..." 하며 걱정을 하기도 했다. 순자는 이제서 철이 드나 싶어 조금씩 변해가는 영식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