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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리 Oct 30. 2022

프롤로그

유행이 취향이 되고, 취향으로 영감을 주는 것

유행에 민감했던 어린시절을 거쳐, 어느새 트렌드로 먹고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10대 시절부터 패션잡지를 끼고 살았고, 틈만 나면 번화가를 쏘다니며 새 옷을 구경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패션을 전공하게 됐다. 새로운 패션아이템이 등장하고, 누군가 그걸 직접 사서 입고, 그런 사람이 많아지고, 유행이 되는 그 흐름 자체에 흥미를 갖다 보니 패션 중에서도 트렌드 분야로 빠졌다. 이후 거리와 매장을 넘나들며 패션 트렌드를 익히고, 분석하고, 콘텐츠로 만드는 일을 지속해왔다. 

한때는 패션지 기자로 일했고, 20대 후반인 지금은 트렌드를 전문으로, 패션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인터넷과 SNS, 스마트폰의 발달로 트렌드의 변화, 확산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고, 예측은 점점 어려워졌다. 역설적이게도, 그럴수록 트렌드 예측과 분석이 중요해졌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행에 민감한 국민성 탓에, 어느 분야든 트렌드 파악이 필수가 됐다. 유행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유행을 선도해야 해서.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트렌드를 공부한다. 특히 연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트렌드코리아’를 보며 올해의 유행을 돌아보고, 내년의 트렌드를 공부한다. 

책 뿐만 아니라, 최근은 뉴스레터를 통해 트렌드를 배운다.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다보니, 더 빠른 주기로 트렌드정보가 필요해져서다. 국내 뉴스레터 시장의 한 축을 ‘트렌드’ 생산자가 차지하고 있다. ‘캐릿’처럼 특정 세대의 트렌드를 다루기도 하고, ‘푸렌드’ 처럼 한 업계의 트렌드를 다루기도 한다. ‘뜨브뜨’ 처럼 트렌디한 브랜드를 소개하는 뉴스레터도 있다. 

특히 패션은 인스타그램이 전부가 됐다. 과거에는 월간 패션잡지였지만, 모바일환경의 발달로 웹진이 등장했고 이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실시간으로 트렌드를 따라잡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이 되어 버렸다.


나도 마찬가지다. 슬라이드폰으로 시작해 아이폰을 쓰고 있다. 종이잡지를 10년간 챙겨보다가 인스타그램으로 완전히 넘어왔다. 그렇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모바일로 넘어오는 과정을 겪었다. 그 흐름 속에서 세상은 매일 너무 빠르게 변해왔다. 유행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내가 예측한 유행이 맞아떨어지기도 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감히 예측조차 못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유행이 변하다보니, 이제는 빠르게 변하는 유행을 그저 따라하고 흡수하는것만으로도 벅찬 세상이 됐다. SNS의 발달로 정보 공유가 용이해지면서, 범람하는 유행을 정리해 대중에게 떠먹여주듯 전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보를 얻기 더욱 편리해진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를 그저 흡수하고, 유행을 따라가기 바쁘다. 정보에 대한 검수나 취사선택 없이 그저 믿고 따르는 사람이 늘고 있다. 물론 정보전달자들 대부분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다보니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대부분이지만, 정보에 대한 대중의 독해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타 분야는 몰라도, 패션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다. 본인의 스타일이나 체형, 소비수준과 무관하게 그저 유행이라는 말 한마디에 구매하는 것 말이다. 그저 SNS에서 유행아이템이라고 소개하는 말만 듣고 똑같은 제품을 사 입는 것. 본인의 소비수준에 맞지 않지만, 그저 유행이라 고가의 스니커즈를 따라 사는 것.  


물론, 재미로 유행을 따라해볼 순 있다. 나도 유행을 즐기는 사람이라 이걸 업으로 삼게 된 거니까. 그치만 누군가의 ‘유행’, 누군가의 ‘추천’이라는 말 한마디에 무지성으로 아묻따 구매해서 따라입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제품 추천을 단순한 ‘추천’으로 받아들이는게 아니고, 그저 똑같은 제품을 따라 사 입는 거다. 물론 브랜드 매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로 패션유튜브나 커뮤니티에 ‘클론제조기’ 라는 오명이 붙는 이유가 된다. 


또 한편으로는 ‘대중’, 그리고 ‘대중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다보니 문화라는 게 성숙할 시간이 없고, 알고리즘의 발달로 초개인화와 맞춤화가 진행되면서 ‘대중’보다는 각자의 취향이 더욱 조밀해진 상태다. ‘취존’의 시대가 온 거다. 이렇게, 세상은 양극화가 되어 버렸다. 그저 트렌드라면 무지성으로 구매하는 사람과 본인만의 뾰족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로.


유행을 무지성으로 따르는 것도, 유행을 경시하고 개인취향 속에만 갇혀있는 것도 나는 반대다. 양극화된 세상 속에서 나는 중간이다. 굳이 따지면 후자, 취향을 가진 사람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유행이 재밌고 즐겁다. 트렌드가 업인 지금, 적성에 가장 잘 맞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긴 시간, 여러 유행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이런저런 유행을 경험해보며 나와 맞는 것과 아닌 것을 분간해낼 수 있었다. 그 중 몇 가지는 내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나만의 취향이 생겼고, 점점 뾰족해 진 취향들은 곧 내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어느새 그 취향과 안목이 단단해 지고 보니, 그걸 이야기하고 소개하는 나만의 매체, 내 뉴스레터를 만들게 됐다.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갈고 닦아온 취향과 안목이 타인의 창작에 영감이 되길 바라서다. 


트렌드를 업으로 삼고 있고, 트렌드를 통해 길러진 취향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을 하는 내게 이 글은 내가 살아온 길을 보여준다. 정리하고 보니 자기소개서 같다. 유행이 어떻게 취향이 되고, 취향이 어떻게 영감이 되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때때로 패션이라는 필터를 사용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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