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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e a week Jun 26. 2017

삶을 여행하듯 사는 것

쏜톤 와일더 <우리읍내>

(위의 사진은 지난 가을 우리 동네 풍경이다! 우리 읍내-)


아주 얇은 희곡이다.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이었는데 빌려 읽어서(?) 따로 사진을 찍어놓지를 않았다. 빨간 표지의 1cm  정도 되는 두께의 책이다. 희곡이기 때문에 연극으로도 종종 올라간 것 같다. 구글링해보니 몇 가지 무대 장면들이 있어서 그 중에 하나를 책 사진 대신 가져왔다.



책은 총 3막으로 구성되어있다. 에밀리라는 여성의 어린 시절 - 결혼 - 죽음으로 이어지는 삶을 그려낸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서모임의 한 분이 우스갯소리로 "얘들아 밥먹자!"만 외치는 책이라고 했는데 (그 분은 그 때 1막까지 읽으셨던 참이다) 책을 다 읽고나니 제대로 된 요약이었다. 정말 매일 아침 밥먹는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에서 논의의 많은 부분은 '내가 느끼는 행복은 어디에서오는가'였다. 정말 소소한 일상만이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인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일상을 희생하는 것은 그렇다면 행복과는 먼 것인가, 나는 어떤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가, 하는 것들. 나의 경우엔 사실 최근에 일상이라는 것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고 다시 그것을 쌓아올리며 정말 온전하게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고 또 그 경험을 <걷는 즐거움: 치앙마이 이야기>로도 썼었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일상의 소소함에 많은 비중을 두고 생각했다. 물론 어떠한 성취를 이뤘을 때의 순간적 행복감은 굉장히 크지만 그 성취의 순간 후엔 성취마저 다시 일상이 된다는 점에서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분들도 이러한 일상의 소소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그런데 가장 흥미롭고도 신선했던 건 두 자녀를 둔 여자 분의 이야기였다. 자신도 20대 후반 - 30 초반 까지는 그런 일상의 소소함에서 큰 행복을 찾았노라고. 그러나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그런 소소함을 신경쓸 겨를조차 없었다고. 그리고 어느날 문득 돌이켜보니 자신은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쁜 일상에 치이다보니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생각하기보단, 남과 비교를 하면서 행복하고 있었더라는 것. 그래서 그걸 깨닫고 난 후엔 하루하루 해야할 일들을 적고 이루어내면서 그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고백이었다. 그러다 보니 행복의 기준도 다시 남이 아닌 내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때론 하루살이 삶이 내가 정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다가올 때도 여전히 있다고 말이다.


결국 행복의 기준이라는 건 인생의 변화와 맞물려 계속 변하는 것이 아닐까. 


저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영화 <라라랜드>가 떠올랐는데, <라라랜드>의 주인공 남녀는 20대 초반의 청춘으로 음악과 연기라는 꿈을 꾼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둘 사이의 사랑을 잠시 유예시킨다. 남자는 '흘러가는 대로 두자'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말은 둘 사이가 끝날 것임을 알고도 꿈을 위해 가보자, 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둘은 각자의 꿈을 이룬 후, 각자의 위치에서 여자는 가정을 꾸리고, 남자는 꿈꾸던 재즈클럽을 열어 일상의 행복을 채워나간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이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난하지 않고, 또 할수도 없다. 그들 역시도 지난 날 만약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이라고 회상은 하지만 아마 그 날로 돌아가도 다시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때의 행복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우린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또 받아들였다. 그렇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갔던 젊은 날. 그리고 나서 놓쳐버린 일상들을 다시 채워나가면서 행복을 느끼는 삶. 이 두가지가 결국엔 선택해야할 대척점이 아니라 인생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생각들이 아닐까. (물론 끊임없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만. 일반적으로 말이다.) 어느 날 나도 육아 혹은 일에 정신없이 치이다보면 남의 불행으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그땐 이 글을 기억하며,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려고 해봐야지. 근데 저 분은 앞으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또 어떻게 헤쳐나가실까?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게 되려나. 아래는 이 책을 읽고 처음 썼던 리뷰 글이다.




누군가의 빈자리는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순간에 더욱 크게 드러난다. 헤어진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건 퇴근길에 시시콜콜 일상다반사를 전할 수 없을 때, 집 앞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던 벤치를 지날 때 같은 사소한 순간들이다. 아주 특별했던 어느 날 보다도 흐르듯 지나갔던, 별 볼일 없었던 그 하루가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 그 빈자리와 슬픔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집안의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상을 치루는 당시 보단 상을 다 치루고 나서 집에 돌아갔을 때 슬픔이 더욱 커지는 것도. 출가한 자식에게 음식 중에 무엇이 제일 먹고 싶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엄마표 된장찌개를 꼽는 것도. 그리고 <우리읍내>에서 에밀리가 죽은 후 마지막으로 마주한 열 두번째 생일 날도. 모두 같은 맥락일 것이다. 

“평범한 날을 골라라. 그래도 충분하다.” 가장 행복했던 날로 돌아가고자 했던 에밀리에게 깁스부인은 평범한 날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죽은 사람의 시선에서 본 산 사람의 하루는 절대 평범하게 다가오지 않으니까 말이다. 단 하루 뿐인 날이기 때문에. 그래서 1막에서 평범하게 흘러갔던 가족끼리 모여앉아 밥을 먹는 풍경, 매일 아침 신문을 배달하는 배달부와의 대화, 그냥 스쳐지나갔던 풍경들은 3막에선 더 이상 평범하지 않고 하나하나 새롭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하루를 온전하고 충실하게 살아낼 것을 이 책은 이야기한다. 사실 너무나도 새롭지 않은, 오히려 요즘같은 시대엔 흔해 빠져버린 이 주제를 <우리읍내>는 희곡이라는 장르를 통해 세세한 상황과 설정을 눈 앞에 보여주며, 다시 한번 그려낸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굉장히 아름답게 빛났던 순간이 있는데, 바로 아주 예전부터 조오지가 에밀리를 좋아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 열두번 째 생일날, 조오지는 새벽부터 에밀리에게 줄 생일선물로 우표책을 집 앞에 두고갔다. 열두살 당시에는 그러려니 넘어갔던 것이, 매 순간을 감탄하면서 보는 죽은 에밀리의 시선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특별한 순간이다.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지나고나서야 보이는 작은 암시들. 꼭 지나고나서야 그런 순간들에 대해 생각하며 후회를 하곤 한다. 그때 그걸 미리 눈치챘더라면,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랬더라면 하고. 만약 열두살의 에밀리도 그 우표책을 좀 더 관찰했더라면, 조오지의 마음을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그랬다면 둘이 사랑할 날이 하루라도 더 많지 않았을까. 

여행의 최고 경지(?)는 삶을 여행하듯 사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여행에 가면 하나라도 더 눈에 담으려하고, 하나라도 더 느끼려고 애쓴다. 그런 태도로 일상에 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삶에 가장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나도 삶을 여행처럼 지낸 적이 단 며칠뿐이지만 (있긴)있었는데, 치앙마이 여행을 다녀온 후였다. 그땐 여행 자체를 마치 일상을 보내듯 보냈는데, 어딜 구경하러 돌아다니기 보단 그냥 일어나서 명상하고, 삼시 세끼 밥을 먹기 위해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먹고, 치우고, 사람들하고 이야기하고, 혼자 동네 산책하는 것이 여행의 전부였다. 그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도 그 때의 여운이 계속 남았다. 아마 여행을 그런 방식으로 하지 않았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여운일 것이다. 에밀리가 죽고 나서야 그 하루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것 처럼 말이다.


그래서 진짜 내 일상에서도 여행지에서처럼 일상을 좀 더 꼭꼭 채워보내려고 노력했다. 출근 준비를 할 때 명상음악을 듣고, 주말에는 집에서 요리를 하고, 밥을 먹을 땐 TV를 보는게 아니라 가족들과 이야기하려고 하고. 그 후 다시 바빠진 일상 속에서 또 쳐내기에 급급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이제는 안다.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없다는 걸. 잊고있던 마음가짐을 <우리읍내> 덕분에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그러므로! 내일 아침엔 다시 명상음악을 틀겠다. 아니 당장 오늘 이 글을 올리고 잠들기 전, 소중한 사람들과 한 마디라도 더 나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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