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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e a week Apr 09. 2017

일상의 회복, 치앙마이 1

혼자를 기르는 법

일상이 무너졌다. 


모든 걸 쏟아부었던 4년의 연애가 끝난 후 '다시 연애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채 들기도 전에 확신부터 가진 새로운 관계가 끝난 후의 일이었다.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 것에 대한 벌이 었을까. 모든게 무너져내렸다. 밥을 먹을 수도, 사람을 만날 수도, 회사에서 일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매일이 술이었고, 음식은 삼켜지지를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마음을 터놓는 1-2명의 극소수로 제한됐다. 누군가와 이별에 대해 대화하는 것 자체가 상처였기 때문이다. 한달 새에 살이 5키로가 빠졌다. 한창 힘들무렵 치앙마이 비행기표를 덜컥 예약했다. 이제와 솔직히말하건데, 나와 헤어진 그는 너무나 열심히 자신의 일상을 다시 살아가는 걸 보고 속이 쓰렸다. 난 이렇게 아직도 힘든데 참 멀쩡히도 자신의 일을 하고,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고, 멀리 나와 함께 가보고 싶다던 여행지를 혼자 가서 행복해하는 걸 보다가 그냥 무작정 예약했던 것 같다. 그래 나도 떠날거야! 하고선.


나도 떠날 수 있어!


하지만 출국일이 다가올 수록 후회가 들었다. 난생 처음 하는 배낭 여행, 거기다 난생 처음 혼자하는 여행이라니. 배낭은 짐을 줄였는데도 무겁고 도착하자마자 해야할 일을 엑셀로 체크리스트 1,2,3 을 작성해두었는데도 두려움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간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 곧 치앙마이가' 라고 떠들어댄 덕분에 취소를 할 수가 없어 무거운 발걸음으로 퇴근 후, 배낭 하나를 매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다행이도 순조로웠다. 방콕에 도착할 때 까진 나름 설렘도 있었다.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뿌듯함같은 것도 들었다. 이제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가기만하면 된다.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6시간. 현지 시간 새벽 1시. 이를 대비해 공항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도 미리 발급을 받아놨다. 이제 라운지에 가서 씻고 쉬기면 하면 된다. 공항 지도를 보며, 라운지는 저기에 있구나! 하고 들어가려는데 티켓 검사를 한다. 왜지...? 아. 라운지는 국제선 이용만 가능하단 거다. 난 방콕-치앙마이 국내선 이용이라 라운지가 있는 국제선 공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거다. 하아.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가기까지의 험난한 여정


공항에서 노숙을 할까, 일단 밖으로 나가볼까 고민을 하다 밖에 나가기로 했다. 급히 잡히는 와이파이로 근처 호텔을 찾아봤다. 하지만 이미그레이션 통과에만 1시간이 넘게 걸려 밖으로 나오니 막상 시내로 가봤자 4시간 밖에 못잔다. 안그래도 우유부단한 나는.. 고민만 하다 소중한 30분 마저 날리고, 그냥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한다. 배낭을 베개 삼아 공항 노숙을 시도했으나 여름옷으로 갈아입은 나에게 에어컨 빵빵한 방콕 공항은 진짜 너무 추웠다. 감기에 걸릴 것 같아 스타벅스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하나 시켜놓고 창문에 기대 꾸벅꾸벅 졸다가, 온 몸이 두드려맞은 듯 아프고 정신은 몽롱한 상태로 그렇게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그래도 따뜻했던 스벅... 앞자리엔 내 친구 배낭
치아-
-ㅇ마이 도착


혼자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혼자 모든 걸 결정하고 책임져야하는 것. 


난 여태 여행에서 헤매는 것이 즐겁기만 했었다. 근데 그건 둘 이상이 있을 때의 얘기다. 혼자서 헤매는 건 두렵고 무섭다. 함께 하는 여행에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는 서로 타협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마음가짐이다. 혼자하는 여행에서 그런다는 건 말이 안된다. 뭐가 됐든 내가 결정해야하고 결정했음 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런 것에 난 도무지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의존적이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대체 난 뭘 혼자서 할 수 있긴 한걸까 싶었다. 이러니 연애가 끝나고 나서 일상이 무너진 것이 이해가 됐다. 첫 연애 이후 연애를 쉬어본 적이 없었다. 항상 가장 가깝고 언제나 내 편인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아무도 없는건 처음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지 알리가 있나...


혼자 그림자 셀카라도...


그렇게 의존적인 내가 혼자 여행을 왔다. 혼자 뭘 할수나 있을까 처절하게 느꼈을 때 혼자서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 것이 있었다. 바로 스쿠터였다. 뒷 자리에서만 타봤던 스쿠터를 혼자 타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내 두 손으로, 두 발로. 사실 처음엔 헬맷 하나 쓰는 것도 혼자 못했다. 늘 옆에 누군가가 있었기에 뭔가를 묶거나 매듭짓는 것,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것, 심지어는 뻑뻑한 병뚜껑 따는 것도 도움을 받았다. (손 참 많이간다..) 하지만 여긴 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다. 무거운 스쿠터를 꺼내서, 헬맷을 쓰고, 시동을 걸고, 방향을 바꾸고, 방지턱이 나오면 속도를 조절하고. 나에겐 하나하나가 다 미션이었다. 뒷자리가 아니라 내가 운전하는거니까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주위의 풍경을 보며 스쿠터를 탈 수 있게 됐다. 해질녘의 바람을 맞으며 시골길을 달리던 상쾌한 기분! 무언가 혼자서 할 수 있구나, 하는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이다.


스쿠터!!!!
주차도 잘했어!!!!


일상에서의 작은 성취. 그것이 시작점이다. 


무엇이든 제 손으로 하나씩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서투를지언정 혼자서 해봐야 알 수 있다. 그래야 성취감을 내 손에 온전히 쥘 수 있다. 책에서 아무리 좋은 말을 많이 읽어도 직접 내 손으로 무언가 해서 얻어낸 성취감보다 클 수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 진리는 그저 몸에 살짝 붙어 있는 데 그치지만 스스로 발견한 진리는 몸의 진정한 일부가 된다." 최근 읽고 있는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가 톨스토이의 책을 인용한 구절이다. (이 책의 이 구절이 와닿은 것도 저걸 직접 느꼈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거창한 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직접 느낀 작은 성취들이 모여서 결국 내 일상을 이루고, 그것이 나아가 혼자서도 온전히 잘 지낼 수 있는 힘이 된다. 


사실 여행지에서는 이런 기회들이 많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꼭 그렇게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만하는 건 아니다. 옷을 직접 손빨래 하는 일. 이것도 작은 성취가 될 수 있다. 배낭 여행이라 짐을 한껏 줄여서 간 바람에 입었던 옷들을 빨아서 다시 입어야 했다. 평소에는 누군가가 혹은 세탁기가 대신 해주던 빨래를 직접 손으로 해서 탁탁 털어 빨래줄에 널어놓는 일. 그리고 치앙마이의 뜨거운 볕에 바싹 마른 옷들을 개킬 때 느끼는 즐거움은 직접 해보지 않고선 느낄 수 없다. 


다만 이런 발견은 익숙한 공간보다 다른 공간에 있을 때 좀 더 쉽게 눈에 띈다. 사실 평소처럼 집에 있다가 혼자 갑자기 손빨래를 하고 개키면서 즐거움을 찾기란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혼자 한 치앙마이 여행은 이런 일상의 즐거움을 발견하게 해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했다면 또 그 나름대로 여행의 즐거움이 있었겠지만 혼자서 떠난 배낭여행이었기에 가능한 일상의 발견들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런 발견들을 여행이 끝난 후에도 내 삶에 데려오는 것 역시 남은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일상에서 작은 성취들을 만들어 나갈 것, 그래서 혼자서도 잘 지내볼 것. 아직 갈 길이 멀다만...


아주 작게는 손빨래하는 것부터
조금 더 크게는 처음 해보는 운동(무에타이)을 배워보는 것까지, 치앙마이에서의 성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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