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교보에 갔을 때 베스트셀러 칸에 꽂혀있던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살인'이라는 소설로서 매력적인 소재와 '기억법'이라는 흥미로운 덧붙임의 제목. 그 후에 우연히 책을 빌려 읽게 됐다. 읽고난 뒤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 책이 어떻게 베스트 셀러가 됐지?' 였다.
(출퇴근길에 종종 읽음, 2호선의 초록과 표지의 빨강이 예쁘다)
물론 소재는 흥미롭다. 한 때 완벽한 살인을 저지르던 연쇄살인범이 20년동안 살인을 끊고, 70살 노인이 됐다. 그러던중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딸이 어느 살인자에게 위협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다시금 생애 마지막 살인을 준비한다. 그런데 알츠하이머 병을 앓으면서 말이다. 살인자와도 싸워야하고, 자꾸 잃어가는 기억과도 싸워야하는 70대 살인자의 이야기가 짧은 단문과 빠른 호흡으로 이뤄진 책이다. 그만큼 쉽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이 끝나고 멍해짐과 동시에 서평의 첫 문장.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맞다. 처음에 술술 읽혀가던 책은 서평에서도 지적했듯이 "개"의 존재유무가 불투명해짐에 따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문점과 불안감을 동시에 뭉글뭉글 피어오르게 한다. 분명 이 책의 클라이막스, 모두가 궁금해하는 이야기의 끝은 은퇴한 70대 노인 살인자와 그의 딸을 노리는 젊은 살인자 간의 대결일텐데, 기대했던 장면은 없다. 그리고 혼란과 멍해짐. 어디까지가 실제고 어디까지 노인의 상상일까?
<문학동네> 팟캐스트에서 김영하는 영화<식스센스>를 이야기하며, '이 책의 모든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스포일러가 되니까.' 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 책은 <식스센스>와 같이 반전 하나만을 향해 달려가는 책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충분히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가치 -충분한 재미- 가 있다. 하지만 읽고나면 그렇게 뒷통수를 한대 팍! 얻어맞은 듯한 반전 보다는 이게 뭐지, 하는 멍한 감정이 든다.
꼭 이런 느낌을 느낀 적이 있는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빈집>에서 였다.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빈집에 몰래들어가 살던 남녀의 이야기였는데 오래전이라 자세한 스토리는 가물가물하지만, 무튼 그 영화 역시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결말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엇, 이게 아닌데,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을 들게 하더니 마지막 장면에 "사는게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다" 라는 문구를 보여준다. 장자의 호접몽을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다. 내가 여태 본 영화가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 꿈인지 알수없는.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우리가 봐야할 곳을 좁혀놓고, 오직 노인과 살인자의 대결만 바라보도록 해놓고는 마지막에 작가를 통해 만들어놓은 우리의 상상력을 와르르 - 무너뜨린다. 그리고 김영하는 반야심경의 공이라는 구절을 읊으며 책을 마무리 짓는다.
김기덕 감독의 <빈집>을 보고 마지막에 왈칵 하고 울었던 것 (감동받아서...)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 역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설정도 흥미롭고, 문장도 재치있고, 마지막에 멍-하게 만드는 요소들도 좋고, 무엇보다 취향에.. 너무 맞는다. 더불어 뒤에 서평 쓴 권희철 문학평론가의 글도 정말 좋았다. 무튼 김영하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는데 이 책에서는 적절한 인용구들이 많았다.
몽테뉴의 수상록.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
쓰인 모든 글들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리라. 타인의 피를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책 읽는 게으름뱅이들을 저주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말이다.
프랜시스 톰프슨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살인자이자 치매에 걸린 노인의 감정을 묘사하는 것도 위트있었다뭐랄까.. 엄청 세련됐다. 오글거리지 않은 세련됨 (?)
사냥용 지프에서 핏물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죽은 노루라도 실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안에 시체가 있다고 가정하고 시작한다. 그쪽이 안전하다. 나는 아직도 내가 알던 나인지를 알아보고 싶어졌다. 눈을 뜨니 바로 눈앞에 은희 엄마가 있었다 - 우연은 불운의 시작일 때가 많지.
은희를 기다리느라 툇마루에 앉아 먼 산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보았다. 뼈만 남은 겨울산이 핏빛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금세 칙칙해진다. 저런 게 좋아지다니 죽을 때가 된건가. 지금 보고 있는 것도 곧 잊어버리겠지
술만 마시면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리는 동네 사람이 있었다. 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켜는 한 잔의 독주일지도.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
수치심과 죄책감: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 책의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크게 상관 없는 구절인데, 아 뭔가 이런 칼날같은 포착이 좋다.
작곡가가 악보를 남기는 까닭은 훗날 그 곡을 다시 연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악상이 떠오른 작곡가의 머릿속은 온통 불꽃놀이겠지. 그 와중에 침착하게 종이를 꺼내 뭔가를 적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거야. 콘 푸오코 - 불같이, 열정적으로 - 같은 악상 기호를 꼼꼼히 적어넣는 차분함에는 어딘가 희극적인 구석이 있다. 예술가의 내면에 마련된 옹색한 사무원의 자리.
세련된 문장과 긴장감있는 스토리가 책을 슥슥 읽히게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책의 의미는 쉽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이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물론 김영하라는 타이틀, 흥미로운 제목, 출판사의 마케팅, 스릴있는 스토리 등이 책의 재미를 주기는 하지만, 책을 덮고나서(!)도 만족했는지, 또 책의 의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책을 영화화한다는 것이다. 책의 스토리야 추리장르로 풀어낼 수 있겠지만 과연 책에서 말하려는 의미까지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책은 의미가 어려워도 계속 읽고 곱씹으면서 그 의미를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지만, 영화는 매체 특성상 좀 더 즉각적이고 시각적인 부분이 중요하기에 영화화하는 작업은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또한 지금까지 공개된 캐스팅을 보면 대중적인 영화를 지향하는 것 같아보는데, (설경구, 김남길, 설현) 이야기의 서사 구조가 비슷했던 <빈집>처럼 예술영화가 아닌 대중영화로서도 책의 성공을 영화에서도 이어갈 수 있을지. 영화로 개봉하면 꼭 봐야겠다! 더불어 김영하 작가의 책도 더 찾아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