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ain't over till it's over>- 레니 크래비츠
공연 시작 1분 전. 관객석에 앉아있는 단비(첫째 딸)와 눈이 마주쳤다. 잘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겠지... 아니, 반드시 잘해야 해!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시계의 초침이 시작 시간을 향해 갈수록 심박수는 점점 빨라졌다. 심호흡을 가다듬고 애써 태연한 척 옅은 웃음을 지어본다. 어쩌면 지금 가장 긴장하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단비일 테니까.
왜 공연을 앞두고 나보다 딸이 긴장하는 건지 사연을 말하자면 이렇다. 교사 신분이었던 3년 전, 지인의 부탁으로 수학여행 레크레이션 시간에 마술 찬조 공연을 간 적이 있다. 관객이 '수학여행 와서 한껏 들떠있는 6학년'이었기에 준비를 확실히 하고 갔어야 했는데, 그동안의 경험과 마술의 힘만 믿고 준비 없이 공연을 간 게 화근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너가 초창기 마술할 때 상대로 했던 아이들이 아니라고!!!)
공연은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이들이 200명은 되어 보였는데, 시작부터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다. 마술을 시작하기 전에 학년부장 선생님이 나를 소개해주는데, 선생님을 쳐다보는 학생이 열 명도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때 경각심을 가졌어야 했다. (아니, 이때 도망쳤어야 했다)
오늘 공연은 좀 힘들겠네, 하는 예감은 있었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진 않았다. 200명 앞에서 공연을 하다가 갑자기 마이크가 안 나와서 쌩목으로 진행한 날도 공연은 잘 끝났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 그게 마술의 힘이었고, 나는 그 힘을 믿었다.
내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무대 앞의 마술사가 쌩목으로 마술쇼를 진행해도 끝까지 집중해서 봐줬던 건 20년 전의 아이들이었다. 이날 내가 만난 아이들은 마술사가 나왔는데도 무대를 보지 않았다. 교사 짬바로 앞을 보라고 집중시키면 그것도 잠시, 장내는 이내 도떼기시장처럼 변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다음 순서가 본인들 장기자랑이라 그걸 연습하고 있었다ㄷㄷ)
마술 중간중간 뒤에서는 '기모띠, 기모띠' (한때 초등학교에서 유행했던 인터넷 신조어)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관객에게 카드를 고르게 할 때 여학생을 시키면 '남혐, 남혐' 외치는 애들이 있었다. 남학생을 시키면 '여혐, 여혐'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보고 어쩌라고?) 이게 말로만 듣던 교실 붕괴의 현장?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몇 명만 담임 선생님들이 제지해 주면 분위기 다잡고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필 담임 선생님들은 급한 일이 생겼는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이날 공연은 내 커리어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폭망한 공연이 되고 말았다.
그날 이후, 다시는 무대 위로 올라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명퇴 후 플랜에서도 마술사를 제외했다. 그동안 잘해왔으니 아쉬움은 없었다. 마술은 마술을 믿는 사람 앞에서만 마술이지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냥 속임수다. 이젠 마술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나 보나 생각했다. 다만, 그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날 괴롭히는 장면이 있었다.
공연 당일 나를 바라보던 두 딸아이의 눈빛. 망해가는 공연인데도 그에 아랑곳 않고 '아빠, 멋있어요' 하는 눈빛으로 나만 바라보던 두 딸의 반딧불처럼 빛나는 눈빛. 그날 두 딸을 데려가는 게 아니었는데... 두 딸은 아빠를 이 정도 마술사로 기억하겠군. 두 딸에게 하필 가장 폭망한 공연을 보여주고 커리어를 끝내야 하는 현실이 자꾸만 목에 걸렸다.
몇 년 후, 나는 명퇴 플랜에서 여행사 사장, 풍선 아트, 작가, 독립 서점 사장 등의 후보들을 차례대로 제외시킨 끝에... '마술사'라는 이름의 종착지에 닿았다. 결국 돌고 돌아 마술사라니. 인생은 참 얄궂다. 마술사가 된다는 건 두 딸 에게 멋진 마술사로 기억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음을 뜻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생일대의 기회가 제 발로 찾아왔다. 아내와 두 딸이 다니는 학교로부터 강연 섭외 전화가 온 것이다. 이제 목에 걸린 가시를 빼낼 차례다!
강연의 주제는 '진로 교육'. 강연 전 날, 아내와 두 딸 앞에서 리허설을 했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일생일대의 무대였기에 리허설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리허설 중간중간 아내와 두 딸의 피드백이 있었고, 나는 그 피드백을 강연에 반영하기 위해 새벽 세시까지 연습했다. 다음 날 아침, 단비가 물었다.
"아빠, 할 수 있겠어요?"
'할 수 있겠어요?'라는 말 앞에서는 '잘'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었다.
"단비는 박수만 열심히 쳐줘. 나머지는 아빠가 알아서 할게."
드디어 강연(이라 쓰고 '공연'이라 읽는다) D데이. 강연의 성공 여부는 대개 시작할 때 결정된다. 그날 강연도 그랬다. 시작할 때 관객석에 앉아있는 단비가 나에게 잘하라는 눈빛을 보내준 덕분인지 강연은 순조롭게 흘러갔고, 아름답게 끝났다.
처음 강연을 시작할 때 자기소개 대신 카드매니퓰레이션(빈 손에서 카드가 계속 나오는 등 손기술을 이용해 카드로 다양한 현상을 보여주는 무대 마술)을 했기 때문에 바닥에 카드가 수십장 떨어져 있었는데, 공연이 끝나자마자 한 아이가 카드 한 장을 주워오더니 내 앞에 내밀었다.
"사인해주세요."
"사인? 사인 받아서 뭐 하려고? 내 사인은 어디 가서 쓸모도 없을 텐데?"
"그래도 해주세요.간직하고 싶어요."
재밌는 친구네, 하며 카드에 싸인을 해주는데, 뒤이어 열명 넘는 친구들이 싸인을 받겠다고 줄을 섰다. 개중엔 입고 있는 티셔츠를 내밀며 등 뒤에 싸인을 해달라는 친구도 있었다. 그 모습을 단비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한 분은 강연이 끝나고 아빠의 공연을 바라보는 단비를 몰래 찍은 사진을 아내에게 카톡으로 전송했다. 단비가 너무 밝은 표정으로 아빠의 공연을 보고 있어서 눈물이 났다는 후일담과 함께.
그날 이후, 단비는 나에게 '할 수 있겠어요?'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부활 시나리오는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Here we are still together
We are one
여전히 우린 함께예요
우리는 하나예요
(중략)
It ain't over till it's over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예요
- Lenny Kravitz의 <It aint't over till it's over>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