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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라이프 3 - 이사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이사를 자주 하면 누구나 미니멀리스트가 된다

by 히피 지망생

이사를 했다.

사람들은 이사하면 집안 가득 쌓아놓은 이삿짐과 이삿짐 트럭, 사다리차 등을 떠올리겠지만, (나도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의 나는 ‘뒷자리 접히는 SUV에 실린 내 집’을 떠올린다. 미니멀 라이프가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그래서 그런가, 집주인이 예상보다 한 달 빠르게 집을 빼 달라고 했을 때에도 그저 ‘올 게 왔구나’ 했고, 괜히 미안해했을 집주인과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이사를 워낙 많이 하다 보니 그새 집에 정들었다며 적적한 감정에 휩싸이는 일 따위는 없었다.

다만, 현관문을 열면 날 반겨주던 밤바다가 그리울 뿐.

(캠핑카에서 살지 않는 한, 그런 환상적인 경치를 볼 수 있는 집에 살게 될 일은 없을 것 같아 아쉽다. 정말이지 경치 하나는 끝내주는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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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이젠 이사가 부담스럽지 않다’는 뜻이지, 이사가 즐겁다는 말은 아니다. 하필 이사하는 날 비가 쏟아져 가뜩이나 텅 빈 내 마음을 적셨다. 이럴 때일수록 즐겁게 일하자며 일부러 신나는 펑크(punk) 음악을 BGM으로 깔아놨지만, 자꾸만 답답하고 찝찝한 뭔가가 마음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이 녀석은 내 마음 구석 한 켠에 자리 잡더니 한동안 나갈 줄을 몰랐다.


그 감정의 정체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아........ 도대체 언제 이렇게 짐이 늘어난 거야?’


뒷자리 접히는 SUV 차 세 번이면 이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짐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테트리스 신공을 발휘하고서야 겨우 4번 만에 이사를 마무리했다.


테트리스.JPG 테트리스를 잘하는 사람이 이사도 잘한다^^


분명 그전에 이사할 때는 세 번 만에 이사를 했는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집에 사는 동안 새로 산 물건은 소형 빔 프로젝터 밖에 없는데... (미니멀리스트가 빔은 왜 갖고 있냐고 묻지 마시라. 내게 ‘가격 및 공간 대비 행복도’가 가장 높은 물건이 빔 프로젝터다. 이거 하나면 매주 극장과 공연장에 가는 기분을 공짜로 느낄 수 있다. ‘미니멀리스트의 빔 프로젝터 예찬’은 다음 편에 계속...)


새로 이사 온 집구석에 몰아넣은 짐들을 분석하고 나서야 그 원인을 알게 됐다.

원인은 2가지다.


하나, 아내와 아이가 사는 집에 이삿짐을 올려 보낼 때 너무 많은 것들을 남겨놓았다. 혼자 사는 집에 한두 개만 있으면 되는 생활 잡화류를 ‘남겨두면 쓸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너무 많이 남겨둔 결과였다. 옷과 신발도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입지 않는 것들이 많아서 입지 않는 옷과 신발을 친구와 후배에게 나눠줬다.

다시 한번 느꼈다. 살면서 필요한 것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둘, 부모님께서 여러 살림살이들을 나도 모르게 집에 갖다 놓으셨다.

어쩐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던 옷들이 보인다 했다.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전 이런 게 필요하지 않아요...

새로 이사 가는 집은 부모님도 모르는 곳이라 다행이다.






이사를 하면 할수록 ‘이사력’이 쌓이고, 그때마다 느끼는 것들이 있다.

그동안 쓸 데 없이 너무 많은 걸 소유하고 살았구나 하는 뒤늦은 자각,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구나 하는 깨달음. 이것이야말로 미니멀리즘의 본질이다.


그리하여 3시간의 이사 끝에 결론을 하나 얻게 되었으니,


이사를 자주 하면 누구나 미니멀리스트가 된다!!


아울러 미니멀 라이프의 사전적 정의를 하나 늘렸다.


내게 미니멀 라이프란,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더라도 가족이 내 남은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다. 캠핑카 하나에 내 모든 짐이 다 들어가는 그런 삶. (소유물을 기준으로 보면) 가진 게 쥐뿔도 없지만, (마음의 품을 기준으로 보면) 세상 누구보다 가진 게 많은 삶.


그런 삶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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