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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B Oct 02. 2019

04. 태풍과 산책

실외 배변의 고충과 보람


개를 키운다면 사람이 꼭 해줘야 하는

개의 권리라는 게 있다.
그 권리라는 것 중에서 내가 느끼기에 가장

비중이 큰 일은 바로 산책이다.
개에게는 매일 충분히 산책을 할 권리가 있다.
그건 개의 본능이고 행복이기 때문이다.
실내 배변을 하는 개도 있는 반면

실외 배변을 하는 개도 많다.
고도리씨는 실외 배변만 한다.
실 외 배 변 만!


매일 고도리씨와 교감하며 산책을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매일을 거르지 않고 해야 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다 저녁 술자리 모임에서 재밌게 놀다가도

넘치는 흥을 애써 누르며

산책 때문에 들어가야 하고
장염에 걸려 꼼짝 못 했을 때도

약을 한 사발 쳐 먹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산책을 나갔었다.


고도리씨는 절대 절대 집에서 일을 보지 않는다.

정말 짤 없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매일 해야 한다.

나름의 철칙인 모양이다.


태풍이 오고 천둥번개가 쳐도
뙤약볕에 발바닥이 화끈거려도
눈 밭에 발이 시려도 나가야만 한다.


여러 날씨중에 산책이

가장 힘든 날은 비가 오는 날이다.

오늘처럼 태풍이 오는 날은 고역이다.

비 맞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고도리씨 귀에 빗물이 들어갈까 봐 그렇다.
빗물이 들어가면 고도리 씨는 귓병을 앓는다.

어릴 때 귓병을 한 번 앓고는

재발하는 일이 종종 생겨

병원에 다니는 날이 꽤 있었다.

그럼에도 도리는 개념치 않는다.

비 오는 날을 대비해 귀까지 덮어지는

우비를 입혀나간다.

비 오는 날 우비는 필수다.

정작 나는 우비도 없어서

비를 맞고 다니지만 말이다.

(고도리씨 우비 변천사)


배변 문제뿐 아니라 산책할 때의

고도리씨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걸 보고 있자면 나까지 미소가 번지고 보람차다.


고도리씨는 나를 통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한다.

아무리 재밌고 좋아하는 일이라도

매일매일 해나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매일매일 꾸준히 해본 게 뭐가 있을까?
고도리 씨처럼 매일을 해도 질리지 않고

마냥 행복한 일이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도리씨의

산책에 비할 게 없다.
네가 좋으면 나도 좋다.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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