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 무수한 경계선들에 대해
봄과 여름 사이, 여름과 가을 사이,
가을과 겨울 사이, 겨울과 봄 사이.
계절이 변하는 그 시기에 있는 지금
그 경계를 확정 짓는 것은 무엇일까?
갈수록 봄가을은 짧아지지만
분명 사계[四季]는 존재한다.
요즘 낮은 덥고 밤에는 쌀쌀하다.
이런 날씨를 우리는 간절기[間節氣]라고 부른다.
한 계절이 끝나고 다른 계절이 시작될 무렵의
그 사이 기간,
간절기[間節氣]
이 시점에 우리는 어느 계절에 치중해 있을까?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찬바람이 느껴지면 무조건 가을이라고 말하고
내 친구는 아직 덥다며
여름이 가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답도 없는 실랑이를 벌이다가
보이지 않는 경계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른이 되는 경계선
썸과 연애의 경계선
어린것과 젊음의 경계선
옳고 그름의 경계선 등등..
우리가 살면서 무수히 느끼고 있는 애매한 경계들
38선처럼 정확하게 그어지지 못할
이런 것들은 결국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나는 ‘운전을 할 때 내가 어른이구나’ 느꼈다고 했고
내 친구는
‘아이를 낳고 비로소 어른이 되었구나’ 느꼈다고 했다.
(그 말에 공감할 수 없는 나는
“아니야 넌 부모가 된 거야.”라고 답했다.)
나는 여름 속에서도 가을을 느낀다.
내게는 간절기 안에서도
가을을 구분 지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그건 고도리씨를 통해서 결정된다.
내가 자고 있을 때 고도리씨가 다가와
이불을 들어달라고 고갯짓을 하면
그때부터가 정확히 나의 가을 시작이다.
덮고 있던 이불을 살포시 들어주면
고도리씨는 이불속으로 쏙 들어와
내 곁에 꼭 붙어서 누워 잔다.
이불속에서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잠에 들고 깬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가을을 살고 있다.
여름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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