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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B Oct 03. 2019

05. 페트리코(Petrichor)

비가 좋아


비가 좋아.


왜냐고 묻지는 마, 그냥 좋으니까!
저 높은 하늘 위 먹구름에서 땅으로

순식간에 떨어져 버리는 것도 좋고

창가의 알알이 맺힌 볼록한 모양도

빗물이 모여 주룩주룩 흐르는 꼴도 좋고

빗소리는 황홀하지.

특히 비 냄새가 좋아.


비가 온 후 선명해지는 세상도 좋고
비 오기 전 어둑해지며 분위기를 잡는 전조도 좋아
비가 올 때 맛있는 파전 지지는 냄새도 좋고

장화를 신고 첨벙 대는 것도 재밌어.  

운전할 때 내 차를 때리는 두두두두 소리도 좋아.

(그날 내 선곡이 멋지다면 더 좋을 테고:)

집에 있다면 좋아하는 향의 인센스를 켜 두고

‘Chet Baker’의 턴테이블을 돌리기도 하지.

10대 시절에는 창문을 살짝 열어 따뜻한 방 안에서 비바람을 느끼며 배 깔고 누워 과자를

 집어 먹으면서 만화책을 보는 걸 좋아했어


비를 맞는 것도 좋아.

(나이 먹고 맞고 다니지는 않지만;;;)

그냥 비가 좋아.

아주 어릴 때부터 비가 좋았어
기왓장에 비가 떨어지던 맑은 그 소리

처마 밑에서 비가 몽글몽글 맺혀

땅으로 떨어지는 것도 생생히 기억할 만큼 좋아.

자고 있을 때 희미하게 들리는 빗소리는

내 잠을 더 달게 하지.

비는 음악을 더 듣기 좋게 만들어

비는 모든 걸 더 진하게 만들어

사람의 감정, 살아있는 냄새, 세상까지

비가 오면 왜인지 그냥 기분이 좋아져.
그냥 나는 비가 너무 좋아.
고도리씨랑 산책할 때는 좀 곤란하지만......

그래도 좋아.

좋은 건 마냥 그냥 좋아.


특히 비가 올 때의 그 특유의

페트리코(Petrichor)가 좋아.

비는 흙과 풀냄새가 진동하도록 만들지.



세차게 비가 내리던 날 잠깐이라도

비가 멎길 기다렸어.

소강상태일 때 ‘이때다!’ 싶어 얼른 산책을 나왔는데 직진만 아는 나의 고도리씨가

어쩐 일인지 한참을 가만히 서서

사진처럼 얼굴을 들고 눈을 감고

비 냄새를 느끼며 미소를 짓고 있었어.

오 래 오 래 잠 자 코


이 순간을 기억하려 후다닥 휴대폰을 꺼내

대충 한 장 찍었지.

나도 고도리씨도 그렇게 한참을 서서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비를 느끼고 서있었지. 우리 둘만 아는 그 낭만적인 시간을

난 오감을 다해 기억하고 있어.


고도리씨 너도 기억하니?

우리의 그 순간을.
우린 비가 좋아. 그냥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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