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아놓으면 알아서 크는 줄 알았지?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육아하다 보면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핵가족화된 현대 사회에 없는 모습이라 더 자주 이야기하는듯하다. 예전엔 아이들을 공동육아하는 모습이 흔했다.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시면 옆집에 있다가 밥도 먹고 놀면서 부모님을 기다리거나 놀이터에 나가면 항상 동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알고 있듯이 옆집 대신 태권도 학원에 가있거나 놀이터에는 친구들 대신 길고양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맞벌이를 해야 하는 사회이고 부모는 결국에 아이를 학원 뺑뺑이 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근처에 조부모가 있다면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나는 사회 경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저출산과 국가가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상황이 부모에게 괴로움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오르는 물가와 대출이자에 부모는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고 아이는 방치된다. 그리고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육아는 아직까지 대부분이 엄마의 책임이다. 내 주변의 일하는 엄마. 일명 '워킹맘'들은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일하는 엄마들 중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백이면 백 공감한다. '아이들이 크면 결국 일하는 엄마를 좋아한댔어.'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 같은 여자로서 안타깝고 속상하고 화가 난다. 이 이야깃거리에 대해 정말 대단히 매우 할 말이 많지만 그럼 성토대회가 될 것 같으므로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아이가 점점 자랄수록 육아 고민의 레벨이 올라간다. 유아시절엔 먹고 자고 싸고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뤘다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교우관계, 감정코칭, 학습에 관한 고민이 시작된다. 엄마들과 나누는 대화가 깊어지고 내가 인간을 키우고 있구나를 실감할 수 있다. 평소에 인문학 책을 틈틈이 읽어둘 걸 후회도 된다. 오은영 박사가 육아의 최종 목적은 독립이라 했는데 과연 나는 마늘이를 제 몫을 하는 올바른 사회인으로 키워낼 수 있을까 생각도 들지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훌륭하다, 나는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토닥인다. 진희야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