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순 극복하기
어느덧 12월의 반이 지났다. 자고로 12월은 크리스마스를 보유한 달로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불빛이 공존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월이다. 코를 빨갛게 만드는 매서운 바람이 불어야 마땅하거늘 지난주와 이번 주는 한낮의 기온이 겨울을 끝내고 봄이 오게 하려는듯 했다. 게다가 부산은 벚꽃이 피려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다음 주 일기예보를 보아하니 피려던 벚꽃에게 낄끼빠빠를 알려주듯 한파가 급하게 몰아친단다는 소식이다. 북극한파를 막아주는 제트기류가 올해도 그들을 가두지 못했나 보다. 빙하를 꽁꽁 얼려야 할 차가운 공기가 우리를 얼리러 오고 있다. 마치 기후 재앙을 알려주러 오듯이.
한겨울에 봄이 오려는 듯한 기묘한 따뜻한 날씨와 갑자기 들이닥치는 한파. 나는 이상기후가 일어날 때마다 두려움에 휩싸인다. 내년 겨울은 더 포근하겠지? 그럼 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겨울이 따뜻했으니 모기는 얼마나 많을까? 겨울 동안 언 얼음을 녹여 식수로 사용하는 나라는 먹을 물이 있을까? 과연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식수가 부족해질까? 내 아이는 어쩌지? 두려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이런 좌절감이 들 때마다 나의 미천함이 느껴져서 괴롭다. 결국 한 인간이 자연을 바꿀 가능성은 없다. 내가 아무리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전기 사용을 줄여도 지구 온도는 예정대로 오를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무의미한 행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그러는 거다. 나는 자식 세대들에게 "얘들아!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했어!"라고 당당히 외치려는 쪼잔한 마음이다. 그러고는 내가 가장 잘하는 '스스로 합리화하기'를 작동시킨다. 이 행동을 건강하게 지속하려면 나를 과하게 옥죄지 말자고.
내가 하려는 이 소비는 합리적이라는 모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탄소 배출을 덜하니 이 정도는 사도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 과연 이 정도로도 괜찮은 걸까? 아닐 거다. 아마도 분명히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를 과하게 통제하고 살면 삶이 각박하고 우울해진다. 23년을 시작하며 KMS(작가의 베프, 소울메이트)와 올해의 헤드라인을 정했었다. [가난하지만 밀도 있는 삶] 이 말인즉슨 우리가 실제로 가난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줄일 것을 줄이되 즐기며 삶을 밀도 있게 살자는 뜻이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의 좋은 자극제가 되어 지내고 있다. 우리 줄일 건 줄이지만 다양하게 즐기며 살자! 당장 고기를 먹지 사 먹지 않지만 예쁘고 오래 쓸 사기그릇을 사며 나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눕시가 너무 갖고 싶지만 지금 입는 패딩으로 만족하고 아이와 전시회를 여기저기 보러 다니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밀도 있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