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는 날이었다.
사무실의 공기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는데
나만
조금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니터를 끄고
서랍을 비우고
책상 모서리를 한 번 닦았다.
작은 먼지가 손끝에 묻었다가 사라졌다.
그게 이상하게
마지막처럼 느껴졌다.
팀원들이 모여
짧게 말을 건넸다.
고생했다,
잘 어울릴 것 같다,
거기서도 잘할 거다.
말들은 다 고맙고
다 익숙했는데,
그 사이에서
나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가벼움을 느꼈다.
누군가가
꽃다발을 내게 건넸다.
손에 닿는 순간
무게가 먼저 왔다.
꽃이 가진 물의 무게,
줄기의 단단함,
포장지의 얇은 바스락 거림.
나는 바로 웃지 못하고
잠깐
그 꽃을 내려다봤다.
연보라 리시안셔스였다.
보라라고 부르기엔 옅고
분홍이라고 부르기엔 차분한 색.
꽃잎은
한 겹이 아니라
얇은 겹들이 겹쳐져 있었고,
빛이 닿는 쪽은 더 맑아지고
그늘에 닿는 쪽은
조금 더 깊어졌다.
그 경계가
너무 조용해서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예쁘다'는 말이
입술까지 올라오기 전에
눈이 먼저 멈췄다.
예쁨은
기분이 아니라
빛의 결이고,
표면에 남은 수분이고,
숨처럼 얇게 겹친 색이었다.
누군가 사진을 찍자고 했고
나는 꽃을 안고 서서
잠깐 눈을 들었다.
사무실의 형광등 아래에서도
리시안셔스는
자기 색을 잃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내가 이곳을 떠나도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들이 있다는 것처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나는 꽃다발을 조금 더 가까이 안았다.
포장지 틈 사이로
꽃잎이 손목을 스쳤다.
부드럽고,
얇고,
살아 있었다.
문이 열리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꽃은 내 품 안에서
아주 조금 흔들렸다.
나는 그 흔들림을 느끼면서
속으로 한 번 말했다.
예쁘다.
그리고 오늘은,
예쁨을
내게로 가져온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