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대혼돈의 카오스, 나의 출산 육아기(2)
임신을 한 여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뱃속의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모성본능으로 쉽게 예민해질 수 있다. 그래서 임산분에게 충분한 휴식과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임신 당사자와 그 남편이 그 사실을 모르면 정말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난다.
바로 우리 부부처럼 말이다.
신혼 때부터 이어진 우리의 사랑(?) 싸움은 내가 임신을 하고 입덧을 지나 만삭이 되었을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엄마, 아빠의 자격이 한참 모지란 이 초짜 부부는 뱃속의 아기의 안녕과 평화는 안중에도 없었다.
예비 아빠는 동화책 태교는커녕 뱃속에 아기가 무슨 말을 알아듣냐며 태명 한번 안 불러줬고 예비엄마는 프리랜서 웹툰 일을 하느라 밤이 낮인지, 낮이 밤인지 모르고 마감에 쫓겨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었으며, 뱃속의 아이가 밤에도 불빛 때문에 잠을 못 자 꾸물거릴 때도 딱 30분만 더 하고 자겠다며 가만히 있어달라고 배를 문지르며 애원을 하기도 했다.
예정된 결과였을까? 그날은 3일에 걸친 대대적인 부부싸움의 마지막 밤이었다.
난 분을 참지 못하고 안방을 박차고 나와 작은방에 이불을 깔았다. 미국에 거주하던 친구와 폭풍 문자 수다로 화를 삭힌 후 잠을 청하려 눈을 감은 시간은 새벽 3시.
뭔가 뜨듯한 물 같은 것이 축축하게 이불을 적시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오줌을 쌌나? 요실금이 심해졌나?'라고 생각했지만 그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깜짝 놀라 일어나 남편을 깨웠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는지 예정일이 3주나 남았는데 벌써 '양수'가 터진 것이다.
난 출산 가방도 안 싼 상태였고 무엇보다 출산을 할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되어있었다.
언제 박 터지게 싸웠냐는 듯 남편과 나는 부랴부랴 차를 타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병원까지 가는 내내 나는 아기가 잘 못될까 봐 세상 끝난 사람처럼 펑펑 울었고, 그런 날 남편은 걱정 말라며 달래주었다.
드디어 병원에 도착하고 자린고비 남편은 오만 원을 아끼고자 가족 분만실이 아닌 일반 분만실을 선택했다.
가족분만실이라면 가족들의 손을 잡고 때가 될 때까지 고통을 참으며 차분히 또는 격하게 진통을 한 후 준비가 되면 이동 없이 선생님이 오셔서 출산을 도와준다. 하지만 일반 병실은 독실이 아닌 커다란 일반 병실에 여러 개의 침대가 있고 각 침대마다 커튼이 쳐져 있을 뿐이어서 다른 가족 없이 오직 혼자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무엇보다 출산이 임박하게 되었을 때야 겨우 진짜 분만실로 이동한 후 출산을 할 수 있었다. 첫아이라 잘 모르기도 했지만 오만 원 때문에 이런 불편과 번거로움을 겪었다니 마음이 짠해진다.
난 나처럼 새벽에 실려온 다른 산모들과 커튼을 사이에 두고 홀로 외로운 진통을 했다.
애를 낳는 고통은 상상 이상으로 극심했다.
바로 건너편에 누워있던 어느 산모는(커튼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통증이 너무 심해 정신줄을 놓으셨는지, 간호사에게 온갖 반말과 욕을 해대며 진상을 부리고 있었다. 간호사도 사람인지라 화를 낼 만도 한데 이런 일을 자주 겪으셨는지 말인지 똥인지 모를 말들을 잘 받아넘기셨고, 아픈 와중에도 간호사님에 대한 깊은 신뢰감과 존경심마저 들었다.
그날 새벽에 실려온 산모가 나를 포함 총 4명이었는데, 내가 3번째로 병원에 도착한 모양이다.
자궁문이 10센티가 열려야 분만실로 이동할 수 있었는데 그전까지는 나와 간호사(물론 간호사님은 그 와중에도 다른 환자도 봐야 했기에 바빴다) 둘만의 외롭고 긴 투쟁의 시간이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의 자궁은 3센티도 채 열리지 않았고 이 자궁문을 열기 위해서는 진통이 가장 세게 올 때 간호사의 (민망하면서도 무지 아픈) 도움을 받으며 있는 힘껏 힘을 주어 자궁문을 조금씩 벌려야 했다.
최고로 아플 때 힘을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자궁문이 조금씩 열릴 때마다 간호사는
라며 나의 승부욕(?)을 자극했고, 결국 간호사님과 나의 합동 플레이로 진짜로 네 명의 산모들 중 제일 빨리 분만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출산을 위한 부끄럼 3종 세트를 피해 갈 수 없었는데, 너무 정신이 없던 와중이라 도무지 그것을 어느 타이밍에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지라 일단 넘어가겠다.
분만실로 들어간 후 아기를 낳기까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쑴풍' 이라는 표현이 딱 적당하려나 아기의 머리가 빠져나오는 순간에 어찌나 후련하던지, 정말 뽕하고 아기가 나와버렸다.
진통을 2~3일씩 하는 산모도 있다는데 그에 비하면 난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잘 쉬고 있던 남편은 아기가 태어나자 탯줄을 자르기 위해 슬그머니 분만실로 들어왔다.
이 감동적인 순간에 탯줄을 자르고 난 후, 남편의 첫 마디 "송 짱, 장난 아니다. 온통 피바다야" 순간 귀를 의심했으나 공감 능력 제로인 안드로이드 남편은 그런 말을 뇌를 거치지 않고 충분히 내 뱉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에고야, 남들은 감동에 쩔어 울기도 한다는데, 남편은 눈물은커녕 엄청 신기한 구경을 한 듯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나타나 저런 개그 만화 같은 대사나 읊고 있다.
역시 난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진 못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