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대혼돈의 카오스, 나의 출산 육아기(3)
37주 4일 만에 태어난 첫아이는 인형처럼 작은 몸집에 날렵한 턱 선을 가지고 있었다.
갓 태어난 신생아가 턱 선이 웬 말이냐. 통통한 다른 아기들과 비교하면 우리 아기는 너무나 애처로울 정도로 작았던 것이다.
인큐베이터 입실 직전의 몸무게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는 병원에서 퇴원 후 바로 조리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조리원 기간 내내 거의 눈도 뜨지 못하고 잠만 잤으며 쭈쭈를 빨 힘조차 없었고, 기저귀라도 갈라치면 뼈만 앙상한 다리가 안쓰러워 난 눈물을 떨구어야 했다.
약했던 아기는 젖을 잘 빨지 못했기 때문에 난 모유량이 거의 늘지 않았다.
산모들이 잠드는 밤에는 낮에 미리 유축해놓은 모유를 밤새 배고파 하는 아기에게 먹이는데, 내 모유는 아무리 쥐어짜며 유축을 해도 고작 젖병 바닥에 깔릴 정도의 민망한 양 밖에 안되었다.
엄마 모유가 부족해서 낮에도 못 먹고 밤에도 배가 고파 칭얼거릴 아기를 생각하니 낮에도 쉴 수가 없었고 밤에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조리원 생활 내내 내 우울증은 정점을 찍었고 (산후우울증은 출산 후 2주 동안 최고라고 한다)이걸 이해할수 없던 남편은 자꾸 예민해지는 나를 나무라기 바빴다.
난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아기와 함께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드디어 2주 후 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떠나온 이곳이 천국이었을 줄은. 어마 무시한 육아 지옥의 문이 열릴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엄마가 되면 여러 가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내가 30여 년간 당연하게 누려온 그리고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원초적인 욕구를 채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3가지 기본욕구는 다음과 같다.
막 엄마가 된 여자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잘하면 출산 후 만 3년 ~4년 내내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 할 수도 있다. '아기가 잘 때같이 자면 되지 않나요?'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애 낳고 와서 다시 얘기하자.
50일의 기적,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다. 우주 먼 곳에서 인간계에 갑자기 등장한 이 외계 생명체인 아가는 아직 인간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였다. 마땅히 인간이라면 자야 할 시간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거나 쭈쭈를 달라고 보채거나 응가를 싸거나 한다. 이 생물체를 돌보는 엄마는 안타깝게도 인간 세상에 이미 잘 적응되었으므로 밤에 엄청 졸리고 피곤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적응하는 시간이 빠른 아기는 50일 느린 아기는 100일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아기뿐만 아니라 엄마도 이 기간 동안 인간임을 잊고 이 생명체에 적응하는 기간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 아기는 밤에 잘 때 젖을 물지 않고는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쭈쭈를 물린 상태로 앉아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나도 모르게 졸다가 아이를 놓칠 뻔한 아찔한 기억이 여러 번이다)
그러던 어느 50일째 되던 날 아기가 새벽에 처음으로 쭈쭈 없이 3~4시간 연속으로 잠을 잤다. 그때까지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는 나도 반 송장 상태였고 아기 역시 밤새 쭈쭈를 빨며 쪽잠을 자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 밖은 찬란한 태양이 비치고 있었고 그동안 생기 없던 아기의 얼굴은 황금빛으로 포동포동 빛나고 있었다. '아 이게 50일의 기적이구나!' 정말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를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후에 둘째를 키우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누운 상태에서 젖을 물리며 재우면서 나도 잘 수 있는 고난도의 수유 법이 있었다.
인간이라면 하루 세 끼를 식탁에 앉아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해 밥을 먹는다. 그러나 아기 엄마는 보통은 내가 하지 않으면 밥이 없으므로 일단 먹을 것이 없어서 못 먹는다.
그러나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게 되므로... 수면 부족과 육아로 밥솥을 들 힘조차 없지만 내 안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초인적인 힘으로 밥을 짓는다. 겨우 밥이 완성되어도 아기가 항상 내 등이나 가슴팍에 붙어있기 때문에 앉아서 인간답게 밥을 먹는 건 무리다.
음식의 형태는 항상 단일 형태로 밥에 국을 넣거나, 국에 밥을 넣거나 하여 먹는 절차를 최소화시켜 숟가락만을 이용하여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입안에 쑤셔 넣는다. 참고로 젓가락으로 반찬을 이것저것 집어먹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일이다. 물론 집어먹을 반찬도 없다.
그리하여 아기 엄마는 위장장애가 끊일 날이 없고, 항상 정신없이 먹는 통에 배는 부르지만 내가 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배는 빵빵하지만 늘 허기가 진다.
어느 날이 좋은 날, 아기가 낮잠이라도 자면 아기 엄마는 본인이 인간이었음을 깨닫고 오랜만에 '라면'을 끓여본다. 드디어 완성된 라면의 한 젓가락을 맛보려는 순간, 아기는 귀신같이 깬다. 총알같이 달려가 다시 아기를 재우고 겨우 식탁에 앉으면 김이 모락모락 나던 꼬들꼬들한 라면은 온데간데없고 불어 터진 우동면발이 날 기다리고 있다. 내가 이러려고 라면을 끓였나... 자괴감에 빠진다. 일단 아기 엄마는 따끈하고 맛난 음식을 먹는 사치는 생각을 말아야 한다.
아기 엄마는 보통 변비에 걸린다. 아기가 꽤 클 때까지(아기가 엄마 껌딱지라면 더더욱) 엄마는 신호가 와도 화장실에 가지 못한다. 작은 것도 제때 못 가는데 큰 걸 제때 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특히 나처럼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일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냥 아예 화장실 가는 걸 포기한다. 사실 늘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이기 때문에 신호가 온 줄 도 모른다. 적당히 죽지 않을 만큼 버티다 몰아서 해결한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면 죽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기본적인 것들조차 힘에 겨우니... 당연히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건 생각도 못 한다.
육아가 한참 힘들었던 시기, 제일 행복했을 때를 말하면 혼자 샤워를 하는 시간이었다. 아기 엄마는 항상 아기와 함께하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이 제일 그리운데... 샤워부스 안에서야말로 오롯이 나 혼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행복도 5분을 채우기 힘들다.
샤워부스 밖에는 엄마와의 사이를 막아버린 이 유리벽이 마냥 원망스럽기만 한 아이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유리와 한 몸이 되어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