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대혼돈의 카오스, 나의 출산 육아기(5)
결혼 전의 나, 길에서 찌든 표정과 퍼진 옷차림의 아기 엄마들을 무심코 마주치게 되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은 또 왜 저렇게 쪘어? 결혼하면 여자 아니야? 왜 관리를 안 해?'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가 그런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아기를 낳은 후 알게 되었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X도 못 싸는 형편에 화장하고 꾸밀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게다가 보통은 임신했을 때 찐 살이 아기가 나와도 그대로일 경우가 많고, 나처럼 입덧이 심해서 살이 많이 안 쪘다고 해도 출산 후 아기를 안고 먹이고 키우느라 나도 모르는 새 등판은 떡대가 되고 팔뚝은 왕만 해진다.
수유할 땐 가슴이 커져서 무슨 옷을 입어도 둔해 보였고, 수유가 끝난 후에는 가득이나 없던 가슴이 납작하게 쪼그라들어 더욱더 볼품 없어진다. 배 둘레는 날로 늘어나고 벌어진 골반 때문에 입던 바지가 안 들어간다.
어찌어찌 구겨넣었어도 엉덩이가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집에 있는 옷 중에 맞는 옷이 하나도 없지만 새옷을 사러갈 시간도 돈도 정신적 여유도 없다.
아이가 이유식을 할 나이가 되면 온 집안이 밥풀투성이가 된다.
외출복도 없지만 깔끔하게라도 입고 외출을 할라치면 무릎과 엉덩이에 밥풀 한두 개쯤 붙어있는 건 장식이다.
머리는 출산 후 탈모로 인해 대머리가 될 지경이고 푸석한 얼굴에 잠을 못 자서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은 애교 수준으로 사람의 몰골이 아니다.
발이 부었는지 구두가 들어가지도 않지만 일단 애를 메고 다니므로 하이힐은 엄두도 못 내고 핸드백은 기저귀가 안 들어가는 관계로 장롱 깊숙이 처박히고 출산 전에 쓰던 화장품은 썩어가는 상황이다.
그러니 아줌마들은 왜 그러고 다니지?라는 의문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 심오한 사정을 결혼 안 한 싱글들이 알 길이 없으니 아줌마가 된 내 겉모습을 보고 욕을 해도 어쩔 수 없다.
어릴 적 엄마를 떠올리면 매번 내 친구들의 이름을 조금씩 다르게 부르거나(예를 들어 선정이를 현정이라고 소인이를 소연이라고 하셨다) 사람의 이름뿐 아니라 물건의 이름까지 새롭게 작명해서 부르셨다.
대화를 하다가도 적절한 단어나 표현이 안 떠올라서 '음... 그러니까.. 그거 있잖아'를 연발하시며 답답해하셨고, 나도 그런 엄마의 의중을 못 알아들어서 참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증상은 중년 이후의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증상이 이렇게 빨리 시작될 줄이야.
첫째를 출산하고 4~5개월 만에 처음으로 혼자 외출을 했을 때의 일이다. 너무너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남편에게 2시간 정도 아기를 부탁하고 자유시간을 얻었다. 왠지 어색해진 영화관의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뚫고 매표창구로 갔다.
표를 예매하려고 직원과 대화를 하던 중 뭔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 다시 물어봤으나 젊은 여직원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난 뇌를 풀가동시켜 조리 있고 바른 언어로 최대한 또박또박 잘 얘기했다. 그러나 내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고, 내가 엄마에게 그랬듯 그 직원도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 어색해진 그 상황에 난 그냥 알았다고 얼버무리며 표를 받아 서둘러 피해버렸다.
그날 영화는 좋았지만 왠지 나 자신이 바보가 된 듯한 기분에 의기소침한 하루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대다수의 엄마들은 언어장애를 겪는다.
말도 못 하는 갓난쟁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다 보니 당연히 말하는 스킬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신이 온통 아이에게 향해있으니 알던 단어도 깜박깜박한다.
야속하게도 시대는 계속 변화하고 새로운 정보나 신조어가 등장하는 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그런 것들을 빠르게 접하고 익힐 환경이 아니다 보니, 젊은이들과의 대화 능력이 점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전업주부로 십여 년을 지내다가 다시 사회에 복귀하려면 슬프게도 말하는 법부터 익혀야 할지도 모르겠다.
언어장애와 함께 기억상실도 함께 찾아온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건망증이 있다는 것은 일반 상식이지만, 아이가 어릴수록 그 강도가 심하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던 텔레비전 리모컨이 냉장고 안에서 발견된다던가, 양말이나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유치원 버스를 배웅하거나 한창 씻고 있는 와중에 내가 방금 몸에 비누 칠을 했는지 안 했는지 헷갈리고 머리를 감다가도 내가 샴푸까지 했는지 트리트먼트까지 했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어제저녁 반찬이 뭐였는지는 당연히 기억이 안 나고, 방금 먹은 메뉴까지 헷갈릴 정도면 치매를 의심할 만하다 하겠지만 그 정도로 젊은 엄마들이 아기에게 온 정신을 뺏기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집안일이며 남편 일이며 시댁 일이며, 모든 것을 총괄하며 신경을 써야 하는 막중한 임무도 맡고 있다.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젊은 처녀, 총각들에게 이를 이해해달라고는 안 하겠다. 그러나 이해받고 싶고 당연히 이해받아야 할 남편들에게 외모 지적질을 받거나 신조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무시당하고 뭔가를 깜박깜박할 때마다 아이큐를 의심받는다면, 다른 누구에게 받는 상처보다 큰 후유증이 남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남편들처럼 계속 사회생활을 했다면!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다면, 이렇게 외모가 비굴해지고 언어장애, 인지장애, 기억상실에 걸릴 일도 없었을 것인데...
남편들에게 부탁하는데, 장난으로라도 부인들의 이런 행동들을 타박하지 말길... 언젠가 다시 정상인이 될때까지 사랑으로 도와주고 감싸주길 바란다. 잘난척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