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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에 Nov 09. 2023

[외국계 신입에게 고함] 2. 언제 말을 거나요?

" 함께 저녁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 감사는 무슨, 나도 야근하면 밥 먹어야지.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보통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기 때문에 야근은 집에서 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날은 사무실에서 마무리해야 할 일이 많았고, 하필 그때 그녀가 6시 넘도록 사무실에 있었다. 배는 고픈데 먼저 밥을 먹자고 할까 말까 망설였다. 내가 먼저 저녁 먹고 가자고 하면 부담스러워할까? 혹시 내가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같이 밥을 먹어주는 거면 어떻게 하지? 혼자서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며 밥 먹자고 회사 채팅창에 글을 남겼다.

그녀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내심 내가 고마웠다.


짜장면에 탕수육을 시켜서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은 듯 함께 밥을 먹었다.

그녀는 내가 많이 바빠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난 맞다고 바쁘다고 했다. 회의도 많고 만들 자료도 많고 팀원들과 함께 점심 먹을 시간 이외에는 따로 팀원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는 없었으니, 바빠 보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선뜻 말을 못 하고 눈치만 본다고 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우리 인사팀 대리님, 차장님들도 모두 마찬가지라고 했다.


외국계의 특징은 각자도생, self survival이다. 신입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 누가 꿰차고 가르쳐주지 않는다. 던져준 자료를 보며 혼자 공부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시간을 내 꾸역꾸역 물어봐야 알려준다. 그런데 그 물어봐야 할 선배들은 노트북에 머리를 박고 도통 고개를 들지 않거나 회의를 하고 있으, 그 "때"를 찾는 것은 신입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닐 테다. 그런다고 바쁜 선배들 눈치 보며 혼자 끙끙 싸매며 주어진 일을 하고 나중에 보고를 하면, 그 방향이 아니라고 다시 처음부터 해오라는 이야기를 들을 확률이 거의 80% 는 된다.


그래서 다른 봉우리로 가기 전에 중간중간 일을 준 선배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다들 너무 바빠 보여 틈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미팅을 먼저 요청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미팅을 잡기가 망설여진다고 하길래 그럼 아웃룩을 펼쳐놓고 비어있는 시간을 먼저 선점하라고 했다. 아웃룩에는 다른 사람의 미팅 시간이 언제 잡혀 있는지, 언제 비어있는지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으니 일단 비어 있는 시간에 "1on1"을 잡는 것이 좋다고 했다. 만약 그 시간에 그녀와의 미팅이 어려우면 다른 시간을 제안할 것이고, 그 시간이 괜찮으면 예정대로 미팅을 진행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하냐고 알려줬다.


외국계에서는 "1on1" 미팅이라고 1대 1 미팅을 권장한다. 팀 미팅에서 할 수 없는 미팅을 1 on 1 미팅에서는 좀 더 깊이 있게 이야기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계 기업에서의 팀장들은 팀원 개개인과의 1on1을 필수로 가져야 하고, 그 위에 레벨 매니저도 한 레벨 아래 직원들과 1on1을 잡아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제도화한다.

1on1은 직급에 상관없이 필요한 사람이 잡으면 된다. 신입도 예외는 아니며, 먼저 1on1을 신청한 패기 있는 신입을 마다할 선배는 하나도 없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아무리 바빠도 신입이 모르는 것을 물어볼 때는 성심성의껏 모두 응해줄 것이라고 했다.

방향성을 아예 못 잡을 때, 방향은 잡았으나 준비한 내용이 맞는지 확인받고 싶을 때, 준비한 내용을 구성한 것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 그럴 때 먼저 미팅을 잡아 논의하라고 조언했다. 물론 아무런 고민 없이 미팅을 잡고 선배가 떠먹여 주는 내용을 받아만 먹을 심산이라면 아예 미팅을 잡지 말라고도 강하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탕수육을 우물거리며 내일 당장 나의 아웃룩 캘린더를 보고서 1on1을 잡을 거라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는 언제든 Welcome이라며, 나의 빽빽한 아웃룩 일정 속에 테트리스를 잘 맞춰 보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짜장면을 후루룩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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