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분짜, 퍼 틴 - 오페라하우스 - 카페딘 - 롯데센터 팀호완
하노이 여행 마지막 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여행 기간 내내 아침과 밤을 함께한 에어비앤비 숙소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오페라 하우스 근처의 에어비엔비 Phơri's House Old Town는 오래된 아파트를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이 강하게 끌렸다. 실제로 만나본 숙소는 앞서 말한 대로 겉은 거칠고 속은 부드러운 만족스러운 공간이었다.
대신 어느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야 했다. 5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소한 불편부터, 창문이 없어 밤새 오토바이 소음을 들어야만 하는 반갑지 않은 불편까지. 부다페스트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현금을 도둑맞은 친구의 지난 이야기가 너무 선명하게 남았는지 밤이 되면 좀처럼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전기나 수도, 위생 상의 치명적인 문제는 없어 다행이었다. 편리함과 맞바꾼 살아있는 삶의 모습. 살아있는 나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
다시 여행 이야기로. 실눈을 뜨고 창밖을 보니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구름이 가득한 흐린 날은 모든 사물을 부드럽게 만들어 카메라 프레임에 알맞게 들어오지만 아예 비까지 내리면 거기서 사진은 끝이다. 그 한 끗 차이가 나에겐 아주 크다. 이렇게 된 거 마음껏 늦잠이나 자야겠다. 몇 시간 뒤. 여행 중 가장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짐을 챙기고 조용히 체크아웃을 한다.
비가 계속 내린다.
계속 비가 내린다. 혹시 하루 종일 내리려나. 우산을 든 채 다른 한 손으로만 사진을 찍을 순 없다. 얼마 걷지 못해 체념하고 카메라와 렌즈를 분리해 가방에 넣는다. 발걸음이 가볍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하노이의 유명한 로컬 맛집이 두 군데나 몰려있다. 하나는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해서 더욱 유명해진 분짜 흥리엔 Bún Chả Hương Liên. 다른 하나는 구시가지 퍼짜쭈엔과 함께 하노이 3대 쌀국수집으로 통하는 퍼 틴 Pho Thin. 베트남에서 아직 먹어보지 못한 분짜가 좋겠다. 여유가 되면 퍼 틴 쌀국수도 맛보고 싶다.
분짜 Bún Chả는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를 달콤한 소스에 담가 쌀국수 면, 채소와 함께 먹는 베트남의 음식이다. 하노이를 여행하는 내내 길거리에서 이 음식을 유난히 많이 보았으니 꽤 대중적인 음식 인 셈. 고기와 채소쌈, 면. 이것은 한국에서도 익숙한 메뉴 구성이다. 바로 돼지갈비와 냉면. 더 맛있는 것을 찾아내는 미의 기준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있나 보다. 의심할 여지없이 훌륭한 맛이다. 다만 고기가 한국의 그것처럼 보다 얇아서 조금 아쉽고, 쌀국수 면이 뭉쳐있어 한입에 넣을 정도로 끊어내기가 조금 번거롭다.
분짜 흥리엔을 만족스럽게 끝내고 돌아가려니 아무래도 퍼 틴의 쌀국수가 궁금하다. 적당히 배가 부른 상태라 외관만 보고 가야겠다.
파가 유별나게 많이 들어간 소고기 쌀국수 퍼 보와 진한 육수의 향. 아무래도 그냥 발걸음을 돌리기엔 너무 강한 끌림이다. 살짝 맛만 보고 가면 좋겠다. 비닐우산을 발 밑에 두고 가방을 그대로 멘 채로 앉아 가게 내부를 보고 있는 중 퍼보가 놓인다. 분보남보처럼 단일 메뉴 시스템인가 보다. 약속대로 궁금한 맛을 해결하는 정도만 먹어보자. 그런데 손을 놓을 수 없이 맛있다. 퍼짜쭈엔의 퍼보처럼 진한 고기 육수에 쪽파가 많이 들어가 있어 시원하고 진한 맛이 난다. (+ 얼마 전 분당에서 수육국밥을 먹었는데 국물 맛이 이와 비슷했다) 앞에 놓인 피시 소스를 넣으니 순수한 맛은 사라지고 묘한 감칠맛이 나기 시작한다. 마치 복지리탕에 식초를 넣는 이유가 같은 것이다.
숯불에 구운 돼지갈비와 불판에 구운 소고기. 어쩌다 보니 아침부터 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하는 불맛의 풍미를 느낀다. 빗줄기는 많이 약해졌다. 다시 카메라를 꺼낸다. 차량 통행이 줄고 거리는 다소 조용한 편이다. 주말이 되어 색다른 하노이의 얼굴이다.
비가 이제 그쳤다.
이제 비가 완전히 그쳤다. 온도는 더 서늘해졌다. 하노이 여행 중 가장 여행하기 좋은 날씨가 되었다. 우산을 접고 다시 카메라를 꺼내 든다. 오페라 하우스로 향하는 직선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멀리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멋스러운 높고 넓은 노란색 건물 아래 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찍고 있다. 벌써 졸업 시즌이 왔나.
그러고 보니 6년 전 서울에서 우리들의 색채도 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하노이 약학 대학교 졸업생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또 어떤 곳으로 걸어갈지는 전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의 미소만큼은 우리와 동일해 보인다. 환한 설렘,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대학교 졸업 풍경은 어딜 가도 똑같은 것이다.
하노이 약학 대학교 학생들의 졸업. 내 경험을 비춰 봤을 때 졸업 후 모든 일이 그리 평탄하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생 때보다 더 넓고 깊은 세상에서 더욱 또렷한 주체로서 발을 디딜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짜릿한 일이었다. 오늘 같은 미소를 계속 볼 수 있는 하루가 계속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위로 계속 올라간다.
계속 위로 올라간다. 정오가 조금 넘어 오페라 하우스에 도착한다. 택시를 탔다면 더 빨리 도착했겠지만 풍채가 더 넓어진 건물과 도로를 하나씩 살피며 산책하는 것은 기분 좋은 선택이었다. 올드 쿼터 Old quarter와 대비되는 프렌치 쿼터 French Quarter인셈. 그래서인지 높은(상대적으로) 의자와 낮은 의자가 공존한다. 하노이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도 하노이 약학 대학교처럼 졸업 풍경이 계속된다. 누가 보아도 프랑스가 떠오르는 우아한 건축물 앞에서 베트남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를 입은 학생들(남학생들은 무채색 정장)의 대비가 재미있다. 동일한 이름의 파리 오페라 하우스와 생김새가 비슷한데 제품별 성능 체크를 하듯 상세하게 비교해본다면, 36년 뒤에 세워진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가 파리의 그것보다 22m 낮고 63m 좁으며 4년 빠르게 건설되었다. 한마디로 덩치는 작고 색은 밝다. 하노이를 대표하는 색을 입혀 놓을 것 같다.
오페라 하우스 옆 하이랜드 커피나 다른 쾌적한 카페를 찾아 오후 시간을 보내야겠다. 마침 오페라 하우스 건너편에 건물 전체를 카페로 쓰는 카페 테라스가 눈에 뜨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 베트남에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은 고급스러운 편에 속한다 ― 4층으로 올라와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근처에 더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아 시야는 탁 트이고 기분 좋은 순풍이 불어온다. 베트남에 적응을 했는지 자주 마시던 롱 블랙이나 에스프레소 대신 달달한 아이스 연유 라떼가 끌린다.
베트남 라떼의 맛은 살짝 고소하면서 달콤하다. 그러고 보면 스타벅스에도 돌체라떼라는 비슷한 메뉴가 있었던 것 같다. 카페 테라스는 건너편 오페라 하우스를 보기 위해 지어졌다고 말해도 될 만큼 그 전경을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다. 아마 오페라 하우스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일지도. 그만큼 커피 메뉴나 요리 메뉴의 가격은 비싸다. 서비스 차지와 부가세를 포함하면 하이랜드 커피 카페 쓰어다의 3배, Cafe 39 카페 쓰어다의 5배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소란스러운 아주머니 모임도 있지만 나처럼 혼자 앉아서 책을 읽거나 랩탑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유리잔 속 우유만큼 깨끗한 하얀 대리석 테이블 위에 어제 보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책을 꺼낸다. 등과 배에 쿠션을 대고 아주 편안한 자세로 나와 아무 상관없는 지구 반대쪽의 여행 이야기를 계속 읽어 나간다. 마침 이런 문구가 나온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 것은 아니다.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라는 것이 나의 철학(비슷한 것)이다.
어쩐지 지금 상황을 꿰뚫어 보는 것 같다. 사실 이런 여유로운 일정은 시간을 착각한 어제의 실수와 오늘 오전의 흐린 날씨로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있던 일정을 아예 포기해버리니 이런 여유로움, 이런 문구가 들어오는 것 같다. 어제의 재즈 리듬. 물론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어폰을 꼽고 Art Blakey의 곡을 들으니 가장 여행다운 여행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오페라 하우스에는 아직 졸업 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자세히 보니 버스까지 동원되어서 은행 번호표를 뽑듯이 순서대로 단체 사진을 찍는 것 같다. 그 주위로는 바로 졸업 여행을 떠나는지 휴양지에 어울릴 듯한 화려한 셔츠를 입은 들뜬 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하노이는 오늘 온전히 졸업의 날이다.
넉넉한 시간만큼 충분한 독서와 휴식 그리고 재즈를 즐기고 아래로 내려간다.
아래로 내려와서 앞으로 걷는다. 여유로운 풍경들이 마음에 든다. 하노이에서 이질적으로 쾌적한 분위기의 거리는 소피텔 호텔 부근에서 정점을 찍는다. 주변을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경적음과 흐려서 더욱 색이 뚜렷하게 보이는 녹색 나무는 그대로지만,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노란색의 벽 대신 깔끔한 흰 벽이 서있다. 여느 호텔처럼 1층에는 명품관 여러 곳이 입점해 있는데 일반적인 매장의 1/5 정도 되는 좁은 폭에 작은 방들이 줄지어 있으니 귀엽다는 인상마저 든다(가격은 물론 그렇지 않겠지만). 하노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스타벅스도 보인다.
리타이또 공원(Vườn hoa Lý Thái Tổ)을 통해 호안끼엠 호수로 가는 길에도 여유로움은 여전히 넘쳐흐른다. 더욱 중심가로 이어지는 거라 그런지 아까보다 인파가 더 많아졌다. 여유로운 주말의 하노이 사람들. 첫 번째 날 구시가지 밤을 걸으며 보았던 것처럼 모든 순간이 영화처럼 스쳐간다.
시간은 아직 여유롭다.
아직 시간은 여유롭다. 이대로 더 걸어도 괜찮을 것 같은 날씨지만 제한 없이 체력을 소모하다간 밤 비행기는 물론이고 다음날 출근까지 논스톱으로 힘들어질 수 있다. 30대. 나도 이제 그런 나이가 되었다보다. 그런 사정으로 호안끼엠 호수에서 가까운 라 벨르 스파를 찾았다. 남자 사람 혼자 사진 여행과 맞지 않는 두 번째 일정이 되었다.
유창한 영어 솜씨로 응대하는 깔끔한 차림의 라 벨르 스파 직원들. 좁은 리셉션 공간에는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건지 마지막인지 캐리어를 들고 대기하는 젊은 커플도 보인다.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니 이 곳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라 시에스타 스파와 마찬가지로 간단한 웰컴 티와 디저트가 나오고 마사지 종류가 나열된 서비스 메뉴를 건네받는다. 시그니처 마사지는 어떤 타입인지 물어보니 뜨겁게 달군 돌 여러 개를 천에 담아 마사지를 하는 거라고 한다. 핫스톤이 한 단계 변형된 단계인가 보다. 라 벨르 시그니처 마사지 La Belle signature Massage 90분으로 결정. 차는 그런대로 마실만 하지만 스낵은 형편없다. 역시 정성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어떻게 이런 좁은 건물에 설치했는지 싶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서 마사지를 시작한다. 은은한 조명의 밝기, 무언가를 띄어놓은 족욕기, 다른 마사지 샵과 크게 다른 건 없어 보인다. 다만 앞서 말한 핫스톤 주머니로 진행하는 마사지는 인상적이다. 돌 몇 개를 뭉친 근육 위에 올려놓고 여러 개의 돌이 든 주머니로 몸을 문지르면서 마사지를 하여 손으로만 하는 마사지보다 입체적이다. 뜨거운 것을 올려두니 일시적으로 사우나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라 시에스타에서 추천한 핫스톤은 괜찮은 선택이었다. 90분이라는 시간도 아주 합당한 선택이다. 뜨거움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기분 좋은 졸음이 쏟아진다. 잠이 살짝 드려고 할 때 90분의 시간이 끝난다. 마사지사의 안내를 받아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890,000VND를 결제하고 나온다. 아직 한 낮이다.
아직 한낮의 주말이다. 하노이 시내의 마지막 일정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카페 딘에서. 구시가지의 유명한 지앙 카페처럼 작은 간판을 어렵게 찾아 협소한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간다. 호안끼엠 호수가 보이는 넓은 도로에 있지만 가방가게와 휴대폰 액세서리점에 가려 은근히 지나치기 쉬울 것 같다.
벽 색이 노란색에서 하늘색으로 바뀐 것을 제외한다면 실내도 지앙 카페의 그 자유로운 분위기와 크게 다른 건 없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오래된 베트남의 카페와 신기한 커피 메뉴를 구경하러 왔다는 느낌이 강한 지앙 카페와는 달리 카페 딘은 관광명소가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커피 메뉴도 지앙 카페와 동일한 에그 커피가 있다.
에그 커피인 것을 모르고 주문했다면 '이 커피는 거품이 굉장히 부드럽네'라고 말할 만큼 진득하지 않고 평범한 라떼에 가까운 맛이다. 커피 이야기는 일단 이것으로 족하다. 나도 그들처럼 사색에 빠져야겠다. 건너편 아기 고양이와 하나밖에 없는 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노이 한인 타운 미딩 송다에 살고 있는 경환 씨를 만나러 간 이야기는 편의상 이전 포스팅에서 다룬다.
하노이 한인 타운 미딩 송다에 사는 경환씨를 만나고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롯데센터. 저녁 식사를 하고 기념품을 산 뒤 곧바로 공항으로 갈 계획이다. 베트남 전통 의상 아오자이의 우아한 곡선을 모티브로 설계된 롯데센터 빌딩은 백화점과 마트, 호텔 그리고 전망대까지 갖춘 센터 다운 센터이다. 어쩌다 3일 내내 전망대를 방문하지만 이번만큼은 안 올라가도 좋을 것 같다. 이미 하늘이 어두워져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왼쪽 롯데마트의 다소 친숙한 밝은 느낌과 다르게 오른편 롯데호텔은 적당히 어둡고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운 재질을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같은 빌딩 안에 이렇게 다른 분위기가 공존할 수도 있구나. 저렴한 가격에 훌륭한 맛으로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하나를 획득한 홍콩의 딤섬 레스토랑 팀호완은 마트와 호텔 중 어떤 쪽에 입점해있을까? 답은 의외로 호텔 쪽이다.
36층으로 올라가서 팀호완 안으로 들어간다. 3년 전에 방문한 홍콩 센트럴 매장과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홍콩에서는 '어떤 맛이길래 이런 곳까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까?'라면 하노이 롯데센터에서는 '이런 곳이라면 음식도 상당히 맛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규모로 눌러버리는 느낌이다. 저녁 시간 조금 늦게 들어와서 그런지 인기가 많을 것 같은 창가석으로 안내받는다. 전망대가 있는 빌딩이라 창문 밖 풍경도 나쁘지 않다.
가장 인기 있는 Big 4 Heavenly Kings 메뉴 중 하나와 Steamed 요리 하나 그리고 가장 맛있었던 메뉴 하나를 주문한다. 상지 콘지에서 먹은 콘지도 맛있었는데 아무래도 콘지까지는 무리일 것 같다. 좌석이 굉장히 많아서 홍콩의 그런 기다림은 없어 편하긴 하다. 그만큼 서비스 가격이 올라가겠지만 베트남이니까 아무래도 괜찮지 않을까. 베트남의 한국 기업 호텔에 들어선 홍콩 레스토랑에서 하노이 여행 마지막 저녁식사를 시작한다.
먼저 나온 메뉴는 팀호완에서 가장 인기 있는 BBQ 번. 인스턴트 스낵처럼 바삭한 번의 안쪽은 빵처럼 부드럽다. 안에는 구수한 향을 내는 돼지고기가 검은색 바비큐 소스와 함께 들어있다. 의외로 달달한 맛이라 부담 없이 술술 넘어간다.
메뉴가 나오고 식사를 끝마치면 다 먹은 접시를 치우면서 다음 메뉴가 나오는 식이다. 한 번에 다 나와서 음식이 식어버리는 일이 없어 마음에 든다. 두 번째로 나온 메뉴는 돼지고기와 새우가 가득 들어간 딤섬, 샤오마이. 탱글한 새우의 식감이 그대로 살아있고 육즙이 제대로 느껴진다. 팀호완을 대표하는 메뉴답게 아주 만족스러운 맛이다.
홍콩을 다녀온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길쭉한 딤섬의 이름은 기억이 난다. 짱펀. 점원이 테이블 위에서 따로 간장 소스를 잔뜩 뿌려주는데 나는 이 간장이 전혀 짜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BBQ 번과는 반대로 미끈한 피부를 가졌고 샤오마이처럼 속은 가득 차 있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콘지가 실제로 나와 버린다. 생각만 하고 주문은 안 한 것 같은데 정말 시켜버린 건지. 어쨌든 맛은 아주 좋다. 홍콩에서 먹은 상지 콘지처럼 소고기로 가득 차 있지 않고 특유의 담백한 맛이다. 3초 정도 뒤에 구수한 맛이 떠오른다. 시키길 잘 한 것 같다. 내가 고른 메뉴에는 고수가 들어있지 않아 확실히 한입을 먹었을 때 자동으로 반응하는 거부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여행은 베트남 음식 본연의 맛 그대로 먹어보는 일종의 도전이었지만 일단 고수의 영향력에서 해방되니 잃었던 미각, 먹는 것에 즐거움이 다시 생겨난 듯하다. 이것으로 고수는 나와 맞지 않은 향신로로 이야기해도 되겠다.
홍콩 침사추이의 세레나데 레스토랑에서 마셨던 티팟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혼자 마시기에는 무자비할 정도로 양이 많아 강제적으로 시간을 더 여유롭게 만드는 것 같다. 어두워서 서호까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길게 이어진 곧은 도로만은 잘 보인다. 2시간 느린 한국의 뉴스를 보며 자스민 차를 마신다. 앉은자리에서 5% 서비스 요금, 10% 부가세를 포함한 459,690VND으로 계산을 끝내고 롯데마트로 내려가 인스턴트커피 여러 개, 연유 2통, 말린 망고 스낵 하나 그리고 달리 치약을 구입하고 마지막으로 택시를 잡는다.
언제나 그렇듯 여행 마지막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사무적인 것들만 남는다. 이동과 기다림 그리고 다시 이동. 짧은 회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쌓아둔 피로감이 한 번에 몰려온다. 여행은 계획하는 순간부터 이미 여행이며, 여행기 마지막 편을 완성했을 때 비로소 여행이 끝난다. 4월 베트남 하노이 여행은 5월의 어느 날 밤 드디어 끝을 맺는다. 쉽게 소비되지 않을 사진, 여행, 그리고 시간. 이번 여행은 시간이 지나도 나의 기억 속에서 영원할 것이다.
하노이 여행 끝.
3월 대만 여행이 여러 모로 불가능해 대신 베트남 하노이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사진 촬영이 주목적이라 제법 활동적인 여행에 속하지만, 가이드북이나 TV에 소개된 유명한 곳도 자주 다녀와서 하노이 여행 가실 분들이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목요일 퇴근 후 인천에서 출발하는 제주항공을 타고 새벽에 하노이에 도착했다.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달러를 베트남 달러로 환전하고 비엣텔 유심칩을 구입했다. 오페라 하우스 근처의 에어비앤비에서 3박 5일간 일정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여행 당시의 감상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현재형의 문체로 작성했다.
1일차
하노이 공항 - 못꼿 사원, 바딘 광장 - 콩 카페 - 탕롱 황성 - 기찻길 마을 - 마담 히엔 - 하이랜드 커피, 백종원 카페 - 구시가지 36 거리 - 바잉미 25 - 탄니엔 산책길, 쩐꾸옥 사원 - 서밋 라운지 - 라 시에스타 스파 - 분보남보
2일차
퍼짜쭈엔 - 콩 카페 - 기찻길 마을 - 쏘이엔 - 지앙 카페 - 호안끼엠 호수, 응옥선 사원 - 성요셉 성당 - 하노이 문묘 - 미딩 송다 한인타운 - 트릴 루프탑 카페 - 꽌안응온 - 빈민 재즈 클럽
3일차
하노이 에어비앤비 - 오바마 분짜, 퍼 틴 - 오페라 하우스 - 라 벨르 스파 - 카페 딘 - 미딩 송다 한인타운 - 롯데호텔 팀호완 - 하노이 공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