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 산다는 것.

공간과 변화

by 모자란한뼘

정신없고 왁자지껄했던 결혼식도 어느새 두 달 전의 추억이 되었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도 드리고, 양가 어르신들도 뵙고, 결혼식 앨범도 받고 이래저래 분주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는 어엿한 유부남이자 누군가의 남편이고 어느 노부부의 사위가 되었다.


지금 와이프와는 내가 결혼 전부터 혼자 살던 24평짜리 아파트에서 같이 살고 있다. 지방 소도시에 있어서 수도권보다는 집값 부담이 덜 하기는 하다만, 이 근처가 전국 지방 도시 중에서도 집값이 유달리 비싼 편이다 보니 집에 대한 결정을 쉽사리 하지 못하였다. 여전히 여러 선택지 중에 고민 중이고, 시간을 두고 조금 천천히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24평 자그마한 아파트에서 같이 새 시작을 하게 된 것이다.


실제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같이 살게 된 것은 결혼 세 달 전부터였다. 당시 여자친구의 오피스텔 계약이 시기가 애매하게 만료되었고, 어차피 곧 같이 살 거 조금 일찍 같이 살자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이래저래 같이 산다는 것에 대해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았던 터라 예정보다 빠른 동거는 나를 매우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물론 여자친구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다지만, 속으로는 '어?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는데???' 하는 생각이 답답히 차올라 펑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솔직히 마음의 준비를 기다리면 뭐 어느 세월에 결혼이나 같이 사겠냐만은...)


나는 한번 무언가를 결정하면 좀처럼 변화를 주지 않는다. 고심 끝에 정해진 무언가에 대해서는 굳이 다시 생각하려 하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깊은 고민 끝에 그 결정을 내렸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하나의 결정을 위해서는 나의 불안으로부터 기인한 수많은 최악의 결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것들에 대해 하나씩 답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나의 결정은 수많은 결과지에 대해 생각하고, 문제점에 대해 분석하고, 내 나름대로 최선의 답을 내린 결과인 것이다. 순간의 감정이나 판단으로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내가 선택한 어느 무언가의 결정을 쉽사리 바꾸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그 결과에 켜켜이 내려앉은 나의 고민과 생각과 시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 물론 장단점이 명확한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렇다면 집이란 무엇인가. 집이란 공간, 그 자체는 나의 고민과 나의 생각과 나의 안정과 나의 심리가 모두 투영되고 반영된 나만을 위한 공간이다. 배치, 배열, 위치, 방향, 개수, 색깔까지 하나하나 고심하여 결정된 것이기에 이 속에서 나는 충분한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공간 전체가 나의 통제 아래에 있는 상태에서 심리적인 편안함을 느낀다. 반대로 내 집, 내 공간이 어지럽혀져 있다는 것은 내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불안한 상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우울하거나 동굴에 들어가 있을 때면 집 안은 정말 엉망진창이다. 청소할 의지도 없이 주방에 설거지 거리나 배달음식 용기들이 쌓여만가고, 옷방에는 여기저기 벗어진 허물들로 가득하곤 했다. 그러고 다시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역시나 청소였다.


그런 집이란 공간을 이제 나눠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자리를 비우고, 배치를 바꾸고, 불필요한 것들을 식별하여 버리고, 필요한 것들을 다시 사서 채우는 과정들은 어찌 보자면 천지개벽과도 같았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내 입장에서 굳이 이사하지 않아도 되고 움직이지 않아서 편한 면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24평 자그마한 아파트의 모든 공간은 이미 나의 물건들과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의도와 물건들로 꽉 찬 공간들을 나누고 쪼개고 비워서 한 사람을 위해 필요한 공간을 다시 만들어내야 하는 일은 꽤 부담스럽고, 숨이 조금 답답해지는 일이었다. 마음 깊고 어두운 곳이 구르릉 거렸다. 이 많은 변화들이 가져올 결과가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변화의 끝에서 나는 지금과 같은 안정과 편안함을 이 집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에 불안함이 스며들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참 행복하고 기쁜 일임에 분명하지만 말이다.


어느 공간을 비워내야 할까. 옷 방에는 내 옷으로도 꽉 찬 것 같은데, 한 명의 옷이 더 들어올 수는 있을까? 내 컴퓨터 방은 지극히 내 취미를 위한 방인데, 이 방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것일까. 내 물건들을 빼야 하나? 어디로 빼야 하지? 이 집에는 창고가 없는데. 내 기타나 앰프들은 어디다 놓지 등 쉽게 말 못 할 고민만 늘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뭐가 달라지겠는가?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뭐 어쩌라는 거라고 그런 말을 하겠는가. 그렇게 속만 앓고 있었다.


그렇게 나만의 공간에 변화가 하나씩 시작되었다. 우선 침실 구조가 바뀌었다. 침대 위치와 방향을 바꾸고, 옷방에 있던 화장대를 침실로 가져오고, 서랍장도 가져오고 하면서 단출하고 심플하게 깔끔했던 나의 침실이 조금은 부산스러워졌다. 한숨을 삼켰다. 처음에 표정 관리가 쉽지 않았다. 티를 내면 안 된다. 이런 속마음을 절대 들키면 안 된다. 그렇게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뒤로하고, 다음 변화들을 맞이하였다.


깔끔한 거실에는 식탁이 들어서고, 혼자 가볍게 사용하던 간이 식탁은 폐기물수거장으로 떠났다. 거실 등을 LED 등으로 바꾸고, 간이 신발장도 추가로 구입하고, 3단짜리 빨래 분류함도 구비하였다. 베란다에는 사각 분리수거 함들이 나란히 줄을 섰다. 그 밖에 부엌에는 각종 조미료가 들어섰고, 주방 기구들도 하나 둘 자리하기 시작하였다. 허전했던 냉장고는 각양각색의 반찬통들과 야채, 채소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소소하지만 중대하고, 사소하지만 심대한 변화들이 시작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여자친구(현 와이프)를 섭섭하게 하기도 하였고, 눈물짓게 하기도 하였다. 나도 모르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고, 기분이 좋지 않은 티를 내기도 하였다. 뚱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때론 의욕적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한심한 짓거리였다. 같이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데 말이다. 같이 살기 위해서는 나눌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공간이 되었든, 시간이 되었든 간에 한 사람의 욕심만 챙기려 하면 함께하는 것은 괴롭고 힘든 시간만이 될 뿐이다.


같은 공간을 내어줄 수 있다는 것. 같은 공간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 같은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 것을 지금에야 깨닫는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날 맞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또한 집에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같이 식사를 나눠 먹고, 간식을 먹으며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 혼자 시간을 보내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에 익숙하던 나에게는 참 많은 변화였지만 다른 의미로 참으로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불안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절대 맛보지 못할 순간들인 것이다.


이 자그마한 24평 아파트의 공간 나눔은 결국 여자친구의 아이디어로 인해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각자의 공간을 배려하면서 또 함께할 수 있는 굉장히 기발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함께 살게 된 후에는 당시 나의 고민이 뭐 그렇게 심각하고 대단했던 것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막상 바꾸고 나니 별거 아니었고, 이렇게 변하고 나니 새로운 안정감과 평안함을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변화란 그렇다. 두려움과 걱정의 벽과 같은 것이다. 벽 뒤에 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높디높은 벽에 막막함만을 느끼는 것과 같다. 그 변화가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 아니면 나쁜 결과로 이어질지는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영향을 미치겠지만, 변화 그 자체를 두려워하고 멀리한다면 우리는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기본적으로 불안하고 예민한 사람들이 많이들 갖고 있는 어떠한 강박들에 대해서는 항상 되뇌이고 있어야 한다. 변화는 언젠가 일어날 것이고, 받아들여야 한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서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는 나의 역할이 중요하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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