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준비와 결혼에 대한 고민이라는 것이 우울한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특별히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이 꼭 필요할까? 과연 내가 결혼이란 제도에 맞는 사람일까? 내 앞의 이 사람과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아니, 내가 결혼을 하고 싶긴 한 걸까? 나이가 차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하는 것은 아닐까?
요새 30대 초중반의 결혼율이 겨우 50%를 넘긴다는 뉴스가 출산율 저하 뉴스와 함께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확실히 내 동갑내기 친구들 중에도 다섯 중 겨우 셋 정도 결혼을 한 느낌이긴 하다. 요새 결혼율이 낮은 이유는 뭐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고, 그 답답한 현실에 대해 여기서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결혼자체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결혼을 통해 변하게 되고 책임져야 하는 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큰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말이다.
요새 청년들에게 있어서 결혼이란 단어는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대상이 되었을 것 같다. 어느 시기에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부담되고, 걱정되고, 자신 없고, 또 쉽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나도 별 다른 것이 없었다. 결혼이란 단어에 답답해지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던 그저 여느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과거에 내가 상담센터나 병원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던 시점을 보면, 이 결혼이란 것과 쉬이 떼어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당시 내가 힘들어졌던 이유는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였다.
1. 기질적인 불안, 우울
2. 과도한 업무로 인한 압박, 부담.
3. 오랜 연인과의 이별
29살부터 5년간 만났단 사람과 결혼까지 가지 못하고 헤어졌다. 결혼을 향해 가던 길 위에서 헤어졌다는 게 좀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길 위에는 서서 걸어보았으나 끝내 종착지에 다다르지 못했던 것이다.
30대에 들어 거진 5년을 만나면서 결혼 이야기 한 번 안 오갔을까.
연애 2, 3년 차가 넘어가면서는 가볍게 결혼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하던 시간이 종종 있었다. 서로를 닮은 아이가 있으면 참 이쁘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기회가 되면 서로의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인사를 다니기도 하였다. 그게 자연스러운 단계라고 생각했다.
4년 차가 넘어가면서는 정말 진지하게 이 사람과의 결혼을 고민하고, 실제적으로 결혼까지 어떻게 이뤄나갈까 하는 과정이 있었다. 나는 지방에 있었고, 상대방은 수도권에 있는 장거리 연애를 몇 년째하고 있었기에 결혼을 어디서 하고, 그 후에는 어디서 살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고는 했다. 언젠가 수익이 더 높은 사람 쪽으로 가서 사는 걸로 하자며 가볍게 웃으며 대화를 했었다. 그랬기에 속 편하게도 나는 내 지역 쪽으로 오겠구나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단순하고 무심했던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건만 너무 쉽게만 생각했다.
당시에 상대방은 이제 취업을 하고 일을 시작한 지 막 1년 차가 되던 시기였다. 일에 대한 재미도 느끼고, 인정도 받아보고, 어려움도 겪어보면서 한 명의 사회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일을 하면서 월급도 받아보고, 나를 위해 또 가족을 위해 그 귀한 돈을 써보기도 하는 과정에 있었다. 자라나고 있었고, 커나가고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다 내려놓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는 것은 참으로 이기적인 것이었다.
5년 차가 돼서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오히려 조금씩 피하기 시작했다. 결혼 이야기를 하더라도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사는 지역이나 직업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가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답이 없다고 느껴지는 문제를 마주하는 것은 숨 막히게 답답한 일이다.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시들어가는 일이다. 막막하기만 한 눈앞에 불안과 두려움이 뿌연 안개와도 같이 피어오르는 일이었다. 그때,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떠올리지도 상상하지도 않았던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사람과 헤어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더 이상 당기지도 밀어내지 못하는 시간만 천천히 흘렀다. 서로는 어느 순간부터 끝을 예감하고 있었다. 부정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립고, 어여쁘고, 사랑스러웠다. 다만 그 이상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서로가 서로의 것을 모두 포기하고 상대방에게 갈 만큼 서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만나온 시간을 뒤로하고, 한낮에 서로의 행복을 어색하지도 않게 빌어주며 보내주었다.
그 과정에서 몰려드는 슬픔, 불안, 두려움, 좌절, 괴로움은 우울이란 단어로 이쁘게 포장되어 나에게 도착하였다. 물론 이 일만이 영향을 끼친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가장 결정적인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혼이란 것은 그런 것일까. 나를 다 내려놓고 달려갈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일까. 그 과정에서 닥쳐오는 불안과 두려움은 사랑이란 단어로 다 이겨낼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일까. 당시에 그래서 나는 결혼하지 못했던 것일까? 지금 내가 결혼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때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사랑을 하고 있어서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너무 감사하고 좋은 사람을 적절히 좋은 시기에 만날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 인연이라고 한다면 인연일 것이고, 누군가 운명이라 한다면 운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더 늦지 않게 서로에게 그런 기회가 다가왔고, 용기 있게 그 끈을 잡을 수 있었다.
아마 결혼을 고민하고, 생각하고, 결심하는 모든 과정은 함께 걸어가는 것과 비슷한 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달려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조금씩 천천히 걸어가기도 한다. 때로는 그 과정이 두렵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여정인 것이다. 지난날의 아픈 기억은 이제 내게 깊은 위로가 되어준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그리고 지금은 알게 된 것들을 생각하면, 모든 순간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드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도, 결혼도, 정해진 답이란 없는 것 같다. 다만 그 시간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났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용기가 생겼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