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다.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다.
보통 이러한 상태 (우울하거나 무기력하거나)가 지속되곤하면 늘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그건 바로
"나는 왜 이럴까? 무엇으로 인하여 나는 이렇게 된 것일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과 같은 나의 상태에 대한 근원, 원인, 이유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지난 심리상담, 심리검사, 진료, 진찰들을 통해서 알게된 것은 아주 직관적이고 단순한 내용이었다. 내가 이렇게 힘든 이유의 한 축은 그저 이렇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조그마한 변화에도 쉽게 우울해지고, 작은 어긋남에도 크게 괴로워하고, 조각난 슬픔에도 소스라치고 마는 것이다. 마음에 이런저런 짐들이 쌓이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무기력해지곤 한다. 물먹은 솜을 짊어진 당나귀마냥 겨우 서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전심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충분치 않아 기어코 쓰러지고 마는 것이었다.
기질적으로 이러한 성향과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 우울을 확정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도 취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 우울증을 인지하지도 내가 우울한 사람이란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그저 계절을 조금 타고, 감성적인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했을 뿐이었다. 주변 환경과 상황은 정해진 기질, 즉 심어진 씨앗에 틔우긴 위한 주변 환경과도 같다. 주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괴롭고 힘든 상황은 우울이란 씨앗이 자라기에 더없이 비옥하고 기름진 토양이 될 것이고, 목마름을 채우는 단비와도 같을 것이다.
그래도 솔직히 억울했다. 많이 억울했다. 왜 이렇게 태어나서 이 고생일까? 나는 그 평범하게 사는 것도 허락되지 않아서 이렇게 괴로워하고 힘들어해야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고단하고 힘든 삶을 견디고 살아가는데 나는 어째서 이렇게 나약하여 그마저도 견디지 못해 온 힘을 다해 괴로워하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내 정말 아픈 것은 맞을까? 다 내 엄살이지는 않을까? 내 정신이 병든 것이 분명하다. 아 맞네. 그렇기에 나는 우울증이란 병을 달고 있는 것이겠구나. 아니. 우울증이 맞기는 한 걸까. 다 꾀병인 것이 아닐까? 그냥 조금 고단한 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이 아닌가. 적당히 남들이 봐줄 변명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요즘들어 우울증 환자들이 부쩍 많아졌다는데, 거기에 편승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끔 진짜 내가 우울한 것인지 모르겠다.
우울함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울이란 감정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전적 의미로 우울은 '마음이 답답하고 걱정스러워 침울한 상태"를 의미하며, '憂 (우) - 근심 우"와 ""이 鬱 (울) - 울적할 울합쳐진 단어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여기에 부합하는 가에 대한 경계와 고민이 필요하다. 굳이 왜 고민을 해야할까? 나의 상태를 바라볼 때면 부던히 부정하고 부지런히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속이는 일은 너무나 쉽고 흔한 일이다. 나의 감정을 가장하여 수많은 불순한 의도가 내 정신과 신체를 너무 쉽게 조종하곤 한다.
이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다. 신체의 나약함이 정신을 의도할 때가 있고, 정신의 취약함이 신체를 무너트릴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그 작은 생각 하나에도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보통 다음의 흐름으로 생각하려 노력한다.
1. 나는 지금 피곤함(우울함)을 느끼고 있다. 내가 진짜 피곤(우울)한 것인가?
2. 그렇다면 나의 몸이 피곤한 것인가? 내 몸이 피곤할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신체적 이유)
3. 몸이 아니라면 나의 정신이 피곤한 것인가? 나의 정신은 지금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 (정신적 이유)
4. 다시 한 번 나는 정말 피곤한 것일까?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방식은 나의 현재 상태에 대한 원인을 보다 명확하게 보게 만든다. 이는 내가 느끼는 감정과 욕구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를 인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루종일 몸을 쓰는 일을 했거나 전날 밤을 세웠것과 같이 몸이 피곤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면, 나의 감정과 쉬고 싶다는 욕구는 정당하며 수용하기 어렵지 않다. 컨디션이 나쁠 이유가 없는데 정신이 피곤할 수도 있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갔다던가, 대하기 어려운 윗사람과 시간을 보냈다던가 하는 일은 신체의 피로와는 다르게 정신적인 피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특별히 몸과 정신이 피곤할 상태가 아닌데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고, 눕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나는 이를 마음의 문제라고 본다. 신체와 정신과 우울은 삼각형의 꼭지점에 위치하여 서로 영향을 미치지만, 우울의 근원은 마음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이 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어떠한 체계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누군가는 우울증은 호르몬의문제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과거 트라우마의 결과라거나, 유아기 경험의 문제 혹은 기질적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지난한 시간동안 부딪치고 상처나며 쌓아올린 '나'란 사람에 대한 분석방식으로는 최소한 나의 우울은 마음의 문제라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사람은 신체와 정신과 마음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이는 동양권의 심기체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심기체는 마음, 생명력, 육체의 조합이지만, 기(생명력)라는 개념은 나에게 너무 모호한 것이었기에 정신과 마음을 구분하고자 하였다.
흔히 마음과 정신은 동일하거나 비슷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정신은 사고하는 것에 보다 초점을 둔다. 생각하고, 기억하고, 판단하고, 고민하고, 결정하는 대부분의 사고활동의 총체이다. 논리적 사고활동은 정신의 영역에 있다. 추론과 연역적, 귀납적 사고 또한 모두 정신의 영역에 있다고 본다. 정신에 대한 촉감은 마치 차가운 금속과도 같다. 단단하며, 쉽게 휘거나 오염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산화되어 녹이 쓸수도 있다. 이는 정신과도 비슷하다. 정리된 논리로 구성되는 정신은 쉽게 무너지거나 망가지지 않는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정립되어 쌓아올려지는 정신은 철옹성과도 같아지곤 한다. 우리가 지식없는 신념이 무섭다는 것도 이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
마음은 감정활동의 근원이라 생각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설레여하고, 그리워하고,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그 모든 감정은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본다. 때문에 우울도 마음의 영역이라 본다. 이미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우울을 마음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신이 우울하거나 신체가 우울하다는 표현은 굉장히 어색하다. 하지만 마음이 우울하다는 것은 굉장히 익숙한 표현이다. 마음의 우울은 신체와 정신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마음의 영역을 벗어날 수는 없다. 마음의 우울은 신체와 정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역시나 마음의 영역을 벗어날 수는 없다. 마음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지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마음의 우울할 때 쉽게 발견되는 현상이나 대표적인 증상에는 무기력이 있다.
무기력은 단순히 신체의 문제가 아니다. 신체의 힘듦은 정신력으로 극복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은근히 쉽게 발견하곤 한다. 대표적으로 신체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온몸이 바들거리는 와중에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끝까지 골인 선을 통과하는 마라토너, 연장전 후반까지도 공을 향해 전력을 질주하는 축구선수,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상태에서도 손과 발을 쉬지 않는 수영선수, 그로기 상태에서도 몸에 새겨진 원투를 내뻗는 복싱선수까지. 탈진된 신체의 마지막 한 올까지 끌어다 움직이는 것은 승리를 향한 집착일 것이며 이는 정신적인 것과 마음적인 것의 복합적인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마음과 정신의 탈진이 신체를 무너트리는 경우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극도의 긴장 속에 마무리한 프레젠테이션 이후 쏟아지는 나른함이라던가, 압도적인 공포 앞에 온 몸에 힘이 빠져버리는 상황이라던가, 깊이를 알 수없는 슬픔에 잠겨 삶의 모든 의욕을 내려놓은 모습과 같은 여러 현상들을 겪어보고 느껴봤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신, 마음 혹은 신체와 같이 한 측면의 극단적인 변화는 나머지 측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울은 단순히 마음의 영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신체-정신-마음이 서로 얽혀 만들어내는 복잡한 현상이다. 마음의 우울이 신체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 무기력한 신체는 다시 정신을 둔하게 만든다. 둔해진 정신은 또다시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때로는 이 고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깊게 얽혀버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울의 치유는 어느 한 영역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우울할 때일수록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달래는 일을 동시에 해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가벼운 산책이나 운동으로 신체를 깨우고, 독서나 글쓰기로 정신을 환기하며, 음악이나 미술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식이다. 때로는 이 모든 것이 버거워 한숨만 나올 때도 있지만,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가 신체와 정신과 마음이라는 세 기둥으로 지탱되고 있다면, 그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우울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이 세 영역의 균형을 맞추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비록 더디고 힘겨운 걸음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