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추석 명절이면 선물 보따리를 들고 부모 형제 찾아 내려온 형, 누나들이 친인척 집에 인사하러 다니느라 마을이 들썩거렸습니다. 마을은 차례상 준비로 음식 냄새가 진동했지요. 그랬던 명절이 이제는 있는 듯 없는 듯합니다. 고향마을에서 바라보는 추석 보름달이 어쩌면 이렇게 쓸쓸해 보일까요. 고향 떠난 사람들은 부모님 떠나고 친인척도 없는 고향을 찾아올 일이 없습니다. 혹여 온다고 해도 내가 살았던 집은 풀 속에서 묻혀 허물어져 가고, 뛰놀던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쓸쓸한 고향이니까요. 그런 고향을 몇 시간씩 고생해서 찾아오겠습니까? 그나마 살아계신 부모님은 역귀성입니다. 자식들 힘들지 않게 서울로 부산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을이 텅 비었습니다.
후덕하고 정이 넘치던 이장 방송 내용이 언제부턴가 달라졌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추석날 귀성객에게 ‘고향에서 푹 쉬고 가시라’라는 방송과 함께 ‘지앙(말썽) 부리지
말고, 술 많이 먹지 말라.’라는 훈계 방송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시절이 지나고 어느 해부터 귀성객에게 ‘음주 운전’ 하지 말라는 방송을 들었지요. 그러더니 이제는
이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고향을 찾아오는 귀성객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빈집을 드나들면서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명절날입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추석이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선후배들과 축구도 하고, 술잔을 나누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만나볼 친구도 없을뿐더러 가까운 친인척도 볼 수 없습니다. 한마을에 살았던 당숙네 형들과 동생들은 애경사가 아니면 얼굴조차 볼 수 없는 형편이니까요.
오늘도 구순이 넘으신 00댁 어머님은 낡은 지팡이를 붙들고 마을 사거리 당산나무 그늘에 앉아있습니다. 어머님은 오늘도 가끔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지만, 어제 본 그 사람이 오늘 또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올봄 따스한 햇볕을 쬐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 00댁은 칠월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향마을이 늙어갑니다. 마을 뒷산에 말 없는 묘지도 많이 늙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