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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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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 Nov 14. 2015

두바이 이발사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2009년 배낭여행할 때,
비행기를 타면 경유지에서 원하는 만큼 머물러도 되는 '스톱오버'를 꼭 이용했는데, 로마에서 델리로 들어가는 길엔 두바이에서 5일 정도 머물기로 결정했다.

두바이에 도착해 푹 자고 일어난 이튿날,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가는 길에, 비행기를 놓쳐 3일간 버텨야 한다'는 친구를 우연히 만나 함께 여기저기 발길 가는 대로 걷던 중 '지저분한 머리나 잘라야겠다' 싶어 길에 보이는 이발소로 들어갔다.


손님이 없어 한가하게 있던 이발사는, 내가 들어오니 좀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무표정하게 자리로 안내했다. 말이 안 통하니 손짓으로 머리 자르는 시늉을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발을 시작했다.


말은 없지만 순수해 보이는 청년. ‘내가 또 언제 이 먼 아랍에서 머리를 잘라보겠는가’ 생각하니 묵묵히 잘라주는 그가 참 반갑고 고맙게 느껴졌다. 이발기는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가위 하나만 사용하는 그는, 신중하게 자르는지 여느 미용실보다 시간이 좀 오래 걸렸지만 별다른 계획이 있던 것도 아니라 급할 이유도 없었다. 서로 말은 안 통해도 따뜻한 마음은 주고받았던 조용한 이발소.


이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분 좋은 맘에 새롭게 단장한 머리를 여기저기 비춰보곤 했는데, 아무리 봐도 이상한 게 좌우가 너무 맞지 않고 좀 우습게 잘린 것처럼 보였다.

이게 이쪽 스타일인가 싶다가도 이건 아닌데 싶어, '다시 다듬어달라 할까' 하다, 말도 안 통하고 정성스럽게 잘라준 걸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다. 머리야 또 자라니까.  


숙소에 도착해 같이 갔던 친구가 찍어준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기며 그제야 삐뚤게 잘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음?


"어딜 봐 어딜 보냐고!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야? 머리를 봐야지!!"


다시 만나고 싶은 '무념무상' 두바이 이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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