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를 보는 것은 환자를 보는 것을 의미하지만, 환자를 보는 만큼의 시간을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의무기록을 남기고 처방을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요즘에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서도 지류가 아닌 전자기기 화면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모니터 화면을 보는 시간이 매우 늘었다. 최근에 스마일라식을 했기에,모니터 화면을 계속 보는 것은 눈의 피로도를 높이고 건조하게 만들 수 있어 지양해야 된다고 했다.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쓰곤 있지만, 절대적 눈의 피로도를 낮추기에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아직 수술한 지 얼마 안돼서 눈이 빠르게 건조해지고, 그러면 보는 것이 불편해져 눈에 더욱 힘을 주게 된다. 악순환에 빠지지 않게 하고자 인공눈물도 자주 넣어주고, 가습기, 눈 온찜질기도 이용하면서 지내고 있다.
조금이나마 모니터를 보는 시간을 줄이고자 고민한 결과 종이책을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집 주변에 도서관이 다행히 가까이 있어, 책을 빌려서 보고자 책 목록을 살펴보았다. 최근에 인기 있는 책들은 다 대출 중이었다. 그래서 다른 목록을 살피던 중, '총, 균, 쇠'가 내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에 나온 책임에도 지금까지도 자주 인용되는 책이지만, 아직 읽어본 적이 없기에 바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은 묵직했다. 그 때 어쩌면 그 책을 다시 내려놓았었어야 싶다.
과연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라식을 한지 얼마 안 지나서일까, 번역체가 나랑 안 맞았던 것일까, 진료 중간중간에 읽어 집중력이 흩트려졌을까, 모두 다 일까,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진 않았다. 그렇지만 책 내용 전체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저자의 주장을 반복적으로 하기 때문에 책 전반적으로 이해하기에는 편했다.
저자의 질문은 '왜 유럽인들이 승리하였을까'로부터 시작한다. 두 문명이 충돌하였을 때, 오히려 본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유럽인들이 다른 지역을 점령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총, 균, 쇠로 대표되는 무기, 병원균, 금속은 유럽인들이 전 세계를 상대로 식민지화에 성공한 결정적인 이유들이다. 그러면 다시 한 가지 질문이 더 생기게 된다. '왜 유럽인들은 더 우수한 총, 균, 쇠가 있게 되었는가'이다. 인류 역사의 발전은 여러 기준들이 갖춰지면 발생했다. 농경사회로 가면서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었고 인구가 늘었다. 동서로 뻗어있는 유라시아 대륙은 비슷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남북으로 뻗어있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보다 인구 이동과 문화, 기술의 전파가 빠르게 진행됐다. 가축화 가능한 동물도 유라시아에 더 많았다.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인구가 늘어나니 정부가 생기고 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질병도 많이 생기면서 결국 안정화된다. 그렇게 유라시아 대륙이 다른 대륙보다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거기서 얻은 총, 균, 쇠로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사람 숫자에 비해 그 관계는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회가 아니라 어쩌면 한 개인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중보건의사 1년 차 때, 코로나가 가장 심하게 유행했다. 타지, 그 것도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면에서 근무를 하는데 서울은커녕 시내조차 나가는 것이 어려웠다. 만나는 사람은 보건지소에 내원한 환자와 같이 일하는 공무원 선생님 밖에 없었다. 물론 QR코드를 찍으면서 마스크 쓰고 차로 편도 1시간 거리의 시내로 나가도 됐지만, 귀찮았다. 무료하고 반복적인 삶을 살다 보니 점점 더 활력을 잃어갔다. 나름 뭐라도 해보고자 계획을 짰다.
아침에 독서와 성경 읽기, 오후엔 드라마 및 게임, 저녁엔 LCK. 그렇게만 무자극적으로 살다 보니 흥미를 어떤 것에도 가질 수가 없었다. 그 때, 글 쓰기를 다짐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봄이 되자 찾아온 제비, 24절기,
주민들의 농사 등등 내 주변에 있었지만 몰랐던 것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동네 할머니의 지나가는 말, 그리고 힘을 내서 지인들에게 보내는 카톡 등 나의 삶의 관계가 다시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