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졸업하자마자 공중보건의사로 지원하게 됐다. 사실 대부분의 남성 의사들은 인턴, 레지던트를 끝내고 전문의가 된 이후에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사로 군복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졸업하자마자 군복무를 하는 경우는 꼭 의무적으로 가야 되는 나이가 아니면 드물다. 강제로 갈 나이가 아닌데도 내가 공중보건의사로 먼저 복무를 하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의과대학 입학하게 되면 6년 후에 졸업,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그리고 군복무 38개월까지 앞만 보고 달리게 된다. 주변의 친구들이 대부분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나 또한 그렇게 못하면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기가 쉬운 구조이다. 그런 것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솔직히 교정시설에 근무를 지원할까 고민했었다. 어차피 한번 꼭 가야 되는 군 복무라면,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공중보건의사는 자기가 원하는 지역(도) 혹은 중앙(법무부 등)을 1 지망부터 5 지망까지 작성하여 제출하게 된다. 보통 많은 지역이 1 지망에서 경쟁률 1이 넘기 때문에 2 지망부터는 큰 의미가 없지만, 중앙은 경쟁률이 1이 안 되는 해도 있다고 들어 1 지망 강원도, 2 지망 중앙 시절을 적어 냈다. 결국 나는 강원도로 배치받게 됐다.
이 책은 교정시설에서 3년간 근무한 공중보건의사가 쓴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술술 잘 읽혔다. 내가 질문한 것처럼 궁금한 점들이 상세하게적혀있었다. 교도소 내 다른 직원과의 관계라던가, 교도소 내부의 생활 등
의료적이지 않은 내용도 많이 있어 오히려 더 내용이 풍부해졌다. 또한, 그곳에서 환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들과 느끼는 여러 감정들은 내가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것과 비슷한 부분들도 많았다. 특히, 의료취약 계층을 바라보는 시선은 일치하는 지점들이 많았다.
의사라면 환자의 마음을 헤아려 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책에 언급된 한 환자의 호소였다. 그 문장을 보고 내가 만났던 환자 한 명이 떠올랐다.
한동안 비가 엄청나게 오는 장마철이 지속된 나날이 있었다. 안 그래도 교통이 불편한 시골에 비까지 오게 되면 당연스럽게도 보건지소에 내원하는 환자의 숫자가 매우 감소한다. 혹시 혈압 약이나 당뇨 약을 다 드셨는데 오시지 못하는 분이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 장마가 빠르게 지나가길 바랐다. 혹여나 환자분들이 늦게라도 오시면 날씨 미리미리 보시고 약 떨어지기 전에 꼭 오셔야 된다는 잔소리라도더 해줄 뿐이었다.
지소에 근무하면서 환자 기록을 보고 있으면 가끔 약을 영양제처럼 매일 드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그렇기에 약을 좀 줄여보고 설명을 많이 해드리려고 애를 썼다.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약을 뺀다던가, 약을 줄인다고 하면 괜히 불안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 충분한 설명을 하면서 안심시키면서 진행을 하려고 한다.
'증상이 있으실 때만 약을 드셔야 돼요.'
'매일 같이 드시다가 간이나 위가 상해요.'
라고 하면
'30년째 매일 먹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었어."
라며 받아치신다.
그래도
'약 다 떨어지거나 다시 증상이 심해지면
약 다시 처방해 드릴 테니 이번에는 조금씩만 가져가 보세요'
'오히려 증상 조절하는 약 때문에 큰 병 놓칠 수도 있으니,
증상이 이렇게 오래되셨으면 꼭 한번 병원 가보세요.'
그렇게라도 약의 양과 종류를 조금씩 조절하려고 했다.
계속 받던 약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하니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또한, 검사를 자꾸 해보라고 하니 막연하게 불안하셔서 초반에는 이러한 진료에 불만들이 있으셨다. 그러나 한 명 한 명 충분하게 이야기를 하고 설명을 하면 협조적인 분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면서 점점 더 꼭 필요하실 때 약을 드시고 약을 그전보다는 적게 가져가시게 되었다. 내시경 같은 검사도 받으시는 분들도 종종 생겼다.
어느 날, 보통의 날처럼 진료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 환자가 들어왔는데 대뜸 전에 처방받은 약이 자기랑 안 맞는다는 것이었다. 매번 받아가시는 약을 보고 해당 증상들이 계속되시는지 확인을 했다. 그중 한 증상은 없으시다고 하셔서 약을 하나 뺐던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환자의 증상을 물어보았고, 달라진 것이 없어 이전에 처방해 드린 약이면 충분하다고 말씀을 다시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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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환자를 안 아프게 해야 되는 거 아냐? 왜 내가 불편하다는데 약을 더 안 주는 것이야!'
'환자 분 증상에 필요한 약을 다 드렸고, 그 약은 환자분 증상하고 아무 상관없어요. 갑자기 약이 안 들으면 더 큰 병원 가보셔서 추가적인 검사...'
환자 분 귀가 잘 안 들리셔인지, 내가 점점 더 짜증 났는지 나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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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그러고도 의사야. 의사면 환자의 말을 들어 안 아프게 해야지.'
이 말을 끝으로, 결국 그 환자 분은 증상에 따른 약을 처방해 드린다고 했지만 아무 약도 원치 않다며 화를 내면서 그냥 가셨다.
환자의 마지막 말은 한동안 나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때는 의사가 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스스로 떳떳하게 의사라고 생각한 적은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의사는 환자의 말을 들어 안 아프게 해야 되는 직업이라는 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도 그 생각이 크게 변하진 않았다. 계속 받아 드시던 내가 약을 안 드려서 답답하셨을까. 혹은 증상이 다시 나타날 까봐 무서우셨을까.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도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이다. 환자의 말을 최대한 듣고 혹시나 내가 놓친 부분이 없는지 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만큼 환자도 의사의 말을 듣고 믿어야 한다. 진료라는 대화는 신뢰를 바탕으로 성립을 한다. 반대로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대화는 절대 되지 않는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런 전문지식을 이용하는 전문가든 아니든 다 조심해야 되는 부분이다. 자신이 틀린 것이 없나 스스로도 돌아보면서,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전문적인소견을 환자한테 권유하는 그런 의사가 되고 싶다.
그 당시에 약을 더 처방하던,덜 처방하던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환자한테 신경을 끄고, 그저 계속 달라는 약을 주는 것이 어쩌면 나와 환자 모두에게 편한 방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약들을 한 번이라도 더 검색해 보고, 환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듣고 물어보고 싶다. 이는 당시 잉크조차 마르지 않은 나의 면허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은, 벌써부터 이런 진료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1년 차 의사의 발악일 수도 있었다. 그 이후로 바뀐 것이라고는 아직 인턴을 마무리하는 4년 차 의사라는 점이다. 아직도 달라진 것은 없다. 모르는 것은 바로 물어보거나 찾아보는 것이 아직도 일상이다. 그렇기에 더욱 나의 진료 초년에 그분을 뵌 것은 어찌 보면 나에게 온 큰 행운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