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빠르게 흐릅니다
그 위에 놓인 삶도 빠르게 흐릅니다
그래서 나도 빠르게 걷습니다
빠르게 걷는 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기에
다음 발을 디딜 앞으로의 길에만 집중하면 되었고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는 그런 점이 좋았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시간이 빠르게 흐르길 바랐고
그래서 그 위에 놓인 삶도 빠르게 흐르길 바랐고
그래서 내가 머무는 지금이 빠르게 흘러가길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바쁘게 흐르지 않으면
그 위에 놓인 삶 역시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내가 머무는 지금의 모습이
하나의 더해짐과 빠짐 없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멈춰진 지금의 모습에서 무엇보다 크게 다가오는 건..
기억의 빈자리.. 당신이 사라지면서 생겨난 커다란 상실의 구멍입니다
불현듯 나타나 삶의 많은 부분을 공허하다 느끼게 만들어 놓은
이 커다란 구멍을 메워보려.. 많은 세상의 방법들을 써보지만
상실의 아픔으로 허기가 졌었는지.. 메우려 하던 모든 것들을 먹어 치운 채..
여전히 크고 검은 구멍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애써 메우려 해도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상실의 구멍을 그대로 마주하고 있기가 힘들어서요
빠르게 흐르는 삶 속에서는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가는 선처럼 보여졌고
상실의 구멍도.. 기억의 빈자리도.. 그리 느껴졌기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다시 속도를 늦추면.. 다시 지금에 머물면..
상실의 구멍이.. 기억의 빈자리가.. 아직은 크게 느껴지리란 걸 알기에..
빠르게 흐르는 시간과 그 위에 놓인 삶 속에서
당분간은 바쁘게 걸어보려 합니다
시간이 상실의 구멍을 메워줄 때까지..
시간이 기억의 빈자리를 채워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