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을 찾아 헤매는 우리들
항상 부모님은 내 편을 들어주신 적이 없었다. 아빠와 논쟁을 해도 엄마는 아빠 옆에서 내 화에 불을 지피셨고 내가 엄마와 말다툼을 해도 아빠는 가만히 계셨다.
그런 일들이 나의 청소년기와 대학생 시절에 빈번했기 때문에 나는 항상 내 반쪽을 만나고 싶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나의 편이 되어주는 나만의 반쪽.
그러다가 중학생 때 영화 헤드윅을 보다가 알게 된 신화 속 이야기를 다룬 노래 'origin of love'는 나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다. 고대 신화에서 나오는 인간은 원래 두 사람이 등을 맞댄 완전한 모습이었고 눈은 앞뒤로 네 개에다가 손발도 각각 네 개씩인 그들은 천하무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했다. 그 완전함을 시기한 신이 벼락을 떨어뜨려 이어진 등짝을 찢어놓았다는 이야기는 그당시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등을 맞댄 태초의 인간들은 서로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까지도 헤어진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맨다는 이야기가 그때부터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로 각인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 중 한 분이 아이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게 부부 사이를 더 돈독히 하는 현명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 서럽게 느꼈던 날들을 생각하면 약간은 억울하지만 부부가 사이좋은 게 결과적으로는 아이에게 좋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빠가 하신 행동이 현명하셨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서러웠다. 나는 부모님도 계시고 여동생도 있었지만 나의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항상 나의 '진짜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인생 목표 중에 꽤 많은 부분이 나의 반쪽을 찾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항상 하고 싶었던 게 많았던 나는 그 어떤 것을 해도 계속해서 무엇인가에 목말랐다. 그것은 참 슬픈 일이다. 그 무엇에도 나의 갈증이 해소가 안 되는 기분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이상하리만치 대학교 다닐 때 자신의 짝이 있는 친구들 대부분은 그 많은 과제들이며 밤샘 스트레스에 꽤나 잘 버티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들은 주어진 일은 완벽하진 않아도 해냈었고 곧잘 다음 일을 찾아 하곤 했었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대학교에 잘 가서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말해주었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의 반쪽을 잘 찾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하는 연애는 선생님과 부모님 눈에는 안 좋아 보이기만 했을 테니 그런 것 자체가 금기시된 얘기를 하는 것 같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친구를 잘 사귀는 것만큼 자신의 반쪽을 잘 찾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꽤 오랫동안 연애고자로 지낸 날들이며 땅굴을 파던 옛날에 대해 안타까움을 항상 느끼기 때문이다. 연애를 많이 한다고 해서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말은 아니지만 나의 반쪽을 찾아내는 눈을 기를 수 있게 노력을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 노력이란 자신을 외적으로 가꾼다는 것보다도 나는 어떤 사람과 있을 때 즐겁고 행복한지 알아내는 힘을 기르는 노력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나에 대해 잘 알아야 내 반쪽이 누구일까 알아챌 수도 있겠다는 얘기가 되어버리는데 나는 이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하지만 참 쉽지 않고 나만의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한다.
너무나도 뻔한 '자신을 잘 아는 게 인생을 잘 사는 것'이라는 결론이 되어 버렸지만 우린 뻔한 것일수록 잊고 지내기 쉽다. 그리고 그 뻔함이 생경하게 다가올 때 우리는 그 진짜 의미를 알게 된 것이겠지.